늙은 백인 남자들의 복음주의는 죽었다 - NYT 뉴욕타임스 전문 번역

늙은 백인 남자들의 복음주의는 죽었다

NYT 2016년 11.29.


대통령 선거는 바다로 빠져나간 허리케인처럼 끝났다. 먼저 사람들은 대선이 남긴 상처를 살펴보고 있다. 복음주의의 명성은 치명상을 입었다.
복음주의는 도널드 트럼프의 선거운동과 밀접하게 움직였다. 80% 이상의 백인 복음주의자들이 당선인에게 투표했다. 이건 흑인과 라틴계, 아시아계, 젊은 여성 복음주의자들 중 많은 이들이 트럼프의 인종차별, 성차별, 외국인차별과 도덕성을 저버리고 카지노 제국을 건설한 후보의 위선에 필사적을 맞선 와중이었다.
그 결과, 복음주의라는 이름에 따라왔던 많은 덕목이 가려져버렸다. 이제 이를 대체할 새로운 운동이 필요하다.
미국의 종교적 정체성을 논하자면, 가장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집단은 ‘무종교’다. 미국인의 4분의1 이상, 신세대의 35%가 종교에 흥미가 없다고 답했다. 무종교인의 상당수는 복음주의 안에서 자란 이들인데, 여전히 신을 믿는다고 한다. 교회를 떠난 이유는 복음주의 지도자들에게 지쳤기 때문이다.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트럼프를 지지한 사실은 이들이 포기한 이유를 가장 잘 보여준다. 예수가 말했지 않은가. “온유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그리고 “네 원수를 사랑하라.”
선거운동 기간 내내 복음주의의 가장 보수적인 조직 내에서도 논란이 있었다. ‘포커스온더패밀리’ 설립자인 제임스 돕슨 같은 원로들은 트럼프를 열렬히 지지했지만, 복음주의권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맥스 루카도나 남침례교 지도자 러셀 무어 같은 이들은 일찍부터 비판적이었다. 미국 최대의 복음주의 학원인 리버티대학에서는 수천명의 학생들이 제리 파웰 주니어 총장의 트럼프 지지를 반대하는 서명운동에 참여하면서 공화당원이 되는 것보다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크리스채너티투데이의 편집자 앤디 크로치는 두 대선후보를 모두 비판하면서 트럼프에 열광하는 교회의 모습은 “우리가 과연 예수를 주로 믿는지 우리의 이웃이 의심할만한 중요한 근거가 될 것”이라고 썼다. 그는 “우리에게 성스러운 모든 것을 파괴한 이를 벗삼을 정도로 이기적이고 자기방어적인 사람으로 우리가 비칠것”이라고 덧붙였다.
백인 남성 복음주의자로서 우리에겐 미래가 없다는 점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가브리엘 살구에로가 이끄는 전국 라틴계 복음주의 동맹, 윌리엄 바버 2세의 도덕적 월요일 운동 같은 그룹은 미디어가 복음주의를 편협하게 묘사한다고 항의해왔지만 같은 처지다. 우리는 수십년간 복음주의 안에서 이러한 ‘또 하나의 복음주의’의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나님의 운동을 이끄는 자매와 형제들이 여전히 ‘또 하나’로 남아있도록 할 수 없다. 복음주의 공동체 안에서 젊은 유색인들의 목소리가 들려질 수 있다고 자신하지 못한다. 우리의 신앙이 복음주의란 이름과 함께 상처 입도록 할 수 없다.
우리는 분명히 하고 싶다. 우리는 민주당을 지지하는 새로운 종류의 기독교 신앙을 제안하는게 아니다. 예수는 민주당원도 공화당원도 아니다. 비록 윌리엄 스론 코핀 주니어가 얘기했듯 심장은 왼쪽에 있지만. 신실한 기독교인들이 힐러리 클린턴에 투표하지 않은 이유는 낙태에 반대해왔기 때문이다. 참된 신앙은 예수가 아닌 어떤 것에도 결코 충성할 수 없다.
이제 예수 중심의 신앙에 새로운 이름이 필요하다. 기독교인들은 이전에도 낡은 딱지는 떼어버리곤 했다. 19세기 말 과학적 이성주의가 성경에 의문을 더할 때 근본주의가 기독교 신앙의 지적 방어자로 등장했다. 그러나 1930년대에 이르러 근본주의는 반지성적이고 남을 판단하는 모습으로 비쳤다. 이 때 크리스채너티투데이의 첫 편집자였던 칼 헨리가 복음주의라는 말을 내세웠다. 예수를 따르는 이들이 한데 모일 수 있는 넓은 동맹을 가리키는 새로운 깃발이었다.
1980년대의 문화전쟁이 시작되자 기독교 우파는 복음주의를 공화당과 연결지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90년대 중반이 되자 많은 미국인들이 이 말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찾지 못하게 됐다. 그들은 기독교인, 특히 복음주의자들을 여성차별, 동성애차별, 환경주의 반대, 이민반대, 그리고 무기와 전쟁의 주창자로 바라보게 되었다.
트럼프가 이런 문제를 만든 건 아니지만, 그의 승리가 우리가 집으로 삼아온 건물의 지붕을 날려버렸다. 이제 새로운 집을 지어야 할 때다.
내년은 종교개혁이 시작된지 500주년이 된다. 기독교 역사의 가장 중요한 기점이었다. 종교개혁가들은 오늘 우리가 마주한 문제와 같은 사안에 대처했다. 우리는 새로운 종교개혁이 필요하다.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가르침으로 돌아오도록 초청하고, 우리 이웃에게 이 세상을 어떻게 살고 무엇을 해야하는지 비전을 제시하는 개혁.
성경에 붉은 글씨로 적힌 예수의 말씀은 오늘 어느 때보다 분명하다. 지난 2000년간 예수의 이름으로 끔찍한 일들이 행해졌지만 그의 말씀을 지켜온 신앙은 오늘까지 살아있다. 지금은 복음주의자들이 회개하고 붉은 글씨의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야할 우리 역사의 한 순간이다.
토니 캄폴로(빌클린턴 대통령의 영적 조언자이자 이스턴 대학 명예교수)
셰인 클레이본(레드레터 크리스천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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