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세월호 참사 보도

세월호 참사 보도, 드러낸 진실과 가로막은 진실



*2015년 여름, 학생신앙운동(SFC)동문회에서 만드는 '개혁신앙'이라는 격월간지에서 청탁을 받아 쓴 글. 그렇지 않아도 한번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는데 좋은 계기가 되었다. 만연체나 구구절절한 부연설명이 붙은 글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 글을 쓸 때는 이리저리 설명을 많이 붙였다. 오해도 많고 감정도 많은 주제여서 그랬다. 나도 글을 쓰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원고료는 사양했다.


장황할지 모르겠지만, 단테의 신곡을 인용하면서 시작하겠습니다. 단테는 저승으로 가는 입구에서 한 무리의 영혼이 고통에 시달리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이들은 천국과 지옥에서 모두 거절당한 영혼입니다. 영원히 지옥의 변방을 떠도는 운명을 떠안은 이들이었습니다. 단테를 저승으로 안내하는 스승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늘은 아름다움을 지키려고 그들을 내쫓았고, 깊은 지옥도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데, 그들에게는 사악함의 명예도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죄는 무엇이었을까요. 단테는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곧바로 분명히 깨달았다. 그들은 하나님도 싫어하고 하나님의 적들도 싫어하는 사악한 자들의 무리라는 것을. 제대로 살아 본 적이 없는 그 비열한 자들은 벌거벗은 채, 거기 있는 말벌과 왕파리들에게 무척이나 찔리고 있었다.’

이들은 살아생전 하나님의 편도, 사탄의 편도 아닌 자들이었습니다. 어느 한쪽 편에 서지 않고 방관했기에 저승에서도 심판을 거부당하는 불청객이 된 거죠.

단테가 살던 시대에는 지금과 같은 저널리스트라는 직업이 없었지만, 신곡에 등장하는 이 저승의 불청객들은 마치 21세기의 언론인과 같아 보입니다. 저를 포함한 현대의 기자들은 스스로의 입장을 밝히고 어느 한쪽 편에 서는 것을 터부로 여깁니다. 직업윤리입니다. 저도 동료기자가 쓴 기사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았는지 지켜보고, 제 동료들도 그럴겁니다. 그러니 신의 편도 악마의 편도 아니었다고 한다면 저널리스트에게는 명예로운 훈장인 셈이죠. 저승을 떠도는 영원한 유목민이 될 운명이라면 아마 대부분은 오히려 자랑스러워할 겁니다.
그래도 저널리스트를 저승의 문 안으로 이끌 수 있는 가치가 있다면, ‘진실’이 아닐까 합니다. 저희는 직업적으로 ‘진실’을 신봉합니다. 드러난 사실을 모아, 알아차리지 못했던 앞뒤의 이야기를 엮어내고, 드러나지 않은 진실을 밝혀내 널리 알리는 일이 우리의 역할이라 여깁니다.



오보들의 배경

진실은 찾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진실이 껄끄러운 누군가 숨기기도 하고, 거짓된 말들이 너무 많아 거기 파묻혀버리기도 하고, 우리의 눈이 어두워 찾지 못한 채 지나치기도 합니다. 때때로 수많은 주장과 비판 속에서 진실을 잃어버리거나 포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예 ‘진실은 없다, 해석만 있을 뿐’이라는 외침을 들을 때면 더더욱 헷갈립니다.

재판정의 판사는 사법적 진실을 알기 전까지 판결을 계속 미룰 수 있지만, 직업적 저널리스트들에게는 마감시간이 말 그대로 데드라인입니다. 쓰고 찍고 전달하는 것을 유예하거나 포기할 수 없습니다. 마감시간은 다가오고, 사람들은 취재보도를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진실을 확신하지 못해도, 진실과 가장 가까워 보이는 것을 써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저널리스트들은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빠른 시간 안에 취사선택해 기사를 쓰면서도 진실에 대한 책임은 최소화하는 몇가지 직업적 기술을 익혀둡니다.

이런 직업적 기술은 거짓을 배제하고 진실을 찾아가는 길라잡이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때론 진실의 가치를 유보하면서도 저널리스트라는 직업을 유지할 수 있는 밥벌이의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의 한 시민으로서 참담함을 느끼는 사건이기도 하지만, 언론인으로서 더더욱 부끄럽고 당혹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저희가 직업적으로 익혀온 기술들이 철저히 진실을 기만하는데 동원되었다는 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에 부끄러웠고, 그런 부끄러움을 되풀이하지 않으려 하나하나 되짚어보면 직업인으로서 저희가 처해 있는 이 현실이 당최 우리 직업의 가치인 진실에 가닿기가 너무나 까마득하게 보여 당혹스럽습니다.

더욱이 “너는 왜 진실을 찾지 못하느냐”는 질책이 “너는 왜 우리편에 서지 않느냐”는 비난으로 이어지면 더 당혹스럽습니다. 한쪽에서는 언론이 유족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데, 다른 쪽에서는 유족의 목소리를 너무 여과 없이 보도했다고 지적합니다. 권력을 비판하는데 주저하고 소극적이었다고 하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정부와 대통령을 동네북처럼 두들겨 오히려 사태 수습을 방해했다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떤 비판을 받아 새기고 반성해야할지 갈피를 잡기 어렵습니다. 결국 저널리스트들은 구천을 떠도는 저주를 받아들일지 말지 심판의 문 앞에 서성거리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일에 언론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동시대의 기자로서 제대로 반성문을 적어가기가 참 어렵습니다. 더욱이 총체적 진실이 무엇이었고 무엇이 거짓이었는지 여전히 가려져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저 저승의 문을 열고 들어서고 싶은 유목민의 심정으로 지난 1년여 저희 언론인, 언론의 행태를 되짚어보겠습니다.



아마 전세계 언론의 역사에서 ‘희대의 오보’를 정리하는 챕터가 있다면 대한민국 언론이 2014년 4월 16일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승선자 전원이 구조됐다고 타전한 내용이 가장 첫머리에 적히겠지요. 참으로 답답한 것은, 다시 똑같은 상황이 와도 지금 저희 언론의 현실에서는 똑같은 오보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감사원 감사결과, 당시 진도군청 담당과장이 구조된 인원을 190명으로 보고했는데, 이 보고가 전파체계를 거치면서 ‘전원구조’로 둔갑했다 합니다. 언론계에서는, 단원고 학생들의 승선 사실을 알고 노심초사하던 경기도교육청에서 이를 기자들에게 전달하면서 잘못된 보도가 나온 것으로 지금까지는 확인하고 있습니다.

당시 상황으로 돌아가, 경기도교육청이나 행정차지부에서 “전원 구조”라고 알려왔는데 기자들이 “현장에서 확인되지 않았다”며 보도하지 않고 참을 수 있었을까요? 아니, 그래야 할까요? 만약 기자들이 이를 보도하지 않고 “현장을 확인해야 겠다”며 구조현장에 배와 헬기를 띄웠다면 아마 “취재경쟁을 하느라 구조 활동을 방해했다”는 더 큰 비난이 쏟아졌을겁니다. “정부에서는 전원구조라고 발표했다”고 보도하면서, “아직 현장에서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궁색하게 덧붙이는 정도가 최선일겁니다.

오보의 책임은 언론과 언론인들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비슷한 사건이 또 터진다면 언론은 이번에도 구조책임을 맡은 정부 당국의 입만 바라볼 수 밖에 없습니다. 책임은 있지만, 진실에 접근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지금 우리 언론의 현실입니다.

결정적인 오보가 한번 뿐이었다면 책임을 면할 순 없어도 이해는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희 언론인들은 그러나 줄줄이 오보를 내놓았습니다. 사고 당일 오후부터 밤늦게까지, 그 다음날까지도 언론은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구조 활동이 진행중이다” “잠수부를 투입해 배 안을 뒤지고 있다”는 정부의 발표를 그대로 되풀이했습니다.

이미 현장에서는 일부 유족들이 배를 빌려 타고 현장에 다녀온 뒤 “잠수부가 한명도 들어가지 않았고 주변만 맴돈다”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었습니다. 긴급히 현장에 내려간 기자들도“정부가 우왕좌왕하고 있다” “유족들이 심상치 않다”는 보고를 보내오고 있었습니다.

언론은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정부의 발표만 되풀이 전했습니다. 언론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바로 권력을 견제하는 임무인데, 아예 그쪽만 바라보고 그 말대로만 보도했다는 사실이 벌써 분명해집니다.

국제적인 논란 거리가 됐던 이른바 ‘박근혜 대통령의 잃어버린 7시간’ 보도를 살펴보면, 권력의 눈치를 보는 모습이 더 두드러집니다. 박 대통령이 사고 발생 후 7시간이 지나서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나왔고, 김기춘 당시 대통령실장은 “7시간 동안 대통령은 청와대 경내에 있었지만 어디에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고 국회에서 답했습니다.

이 사안에서 언론은 “청와대는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는 정부 해명을 그대로 옮겨쓰기만 했을 뿐, 국가안전보장회의(NSC)나 재난안전대책본부의 역할과 대통령의 책임을 적극적으로 규명하지 않았습니다.

저널리스트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모습은 이해가 안되면서도 한편으론 또 이해가 됩니다. 무슨 말이냐면, 이런 참사가 터지면 책임 소재를 가리고 추궁하는 것이 언론의 중요한 역할인데 이를 방기하고 권력의 일방적인 해명만 전달하는 소극적인 자세를 줄곧 유지하는 모습은 도무지 이해가 안됩니다.

반대로 그동안 언론은 대형 참사가 터졌을 때마다 인재(人災)라고 비판하면서 책임자를 가려내고 비난하는데 열중해 왔기에, 이제는 화풀이 대상을 찾는데 열중하기보다는 좀 더 차분하게 참사의 원인을 짚어보고 근본적인 대책을 논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대통령과 정부의 한심한 대응을 비난하기보다는 수습에 더 주력하는게 맞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지요.

실제로 일본 NHK는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 당시 도쿄전력이 폭발하는 장면이나 주민들이 긴급대피하는 모습 등은 영상으로 방송하지 않았고 자막으로만 보도를 했습니다. 언론학자들은 NHK의 사례를 들면서 “우리 언론도 자극적인 보도를 삼가야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신문과 방송이 정부를 비판하기보다 가급적 차분하게 사실 위주로 전달하려 한 점은 충분히 이해가 되고, 어떤 면에선 이전보다 더 나아졌다고 할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KBS의 김시곤 당시 보도국장이 이런 ‘차분한 보도’의 배경을 폭로했습니다. 지난해 5월 9일 김 국장은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열고는 “정부가 세월호 참사 보도와 관련해 해양경찰을 비난하지 말라고 여러 번 요청했고 길환영 사장도 지시했다”고 말했습니다. 정부가 노골적으로 세월호 보도에 개입했다는 중요한 폭로였습니다. KBS보도국장과 사장에게 이정도로 요구할 수 있는 정부의 권력자는 청와대 최고위층이 아니면 상상할 수 없지요. 한마디로 권력이 ‘조용한 보도’를 요구했고, 언론은 거기에 자발적으로 순응했다는 겁니다.

언론은 또 반대로 냉철한 보도가 필요한 대목에서는 쉽게 흥분했습니다. 바로 세월호 선주인 유병언 추적 보도입니다. 언론은 권력이 경찰력을 대대적으로 동원해 유병언의 은신처로 진입해 가는 장면을 생중계하고, 그가 붙잡히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듯 보도했습니다. 선박의 관리와 운항 책임이 있으니 당연히 죄를 추궁 받아야 하겠지만, 규제·감독·구조의 더 큰 책임이 있는 권력을 향해서는 그토록 신중했던 언론이 왜 유병언에게는 범죄자의 딱지를 쉽게 붙였을까요? 이번에는 권력의 요청이 없었거나, 반대로 좀 격앙해 달라는 요구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유족을 어떻게 묘사했는지 저희 언론의 보도 태도도 짚어봐야겠습니다. 여러 비판이 있지만, 공중파 방송과 종합일간지 등 이른바 주류 매체들은 주로 2가지 면에서 지적을 받았다고 봅니다. 첫째는 유족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유족의 요구를 정쟁거리로 취급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도 직업적 언론인들에게는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2008년 10월 배우 최진실씨가 사망했을 때, 수백개의 매체가 장례식장에 진을 치고 어린 유족과 조문객들을 밀착취재했습니다. 더 앞서 1999년 씨랜드 참사 때에는 생떼 같은 아이를 잃은 부모들이 울부짖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도해 지나치게 자극적이었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이번에도 사고 초기 실종자 가족들이 머물던 진도체육관에서 일부 매체들이 너무 가까이 다가갔다가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한 매체는 생존자 학생을 생방송으로 인터뷰하면서 “지금 친구가 숨진 채 발견됐는데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가 큰 비난을 받았습니다. 이후 방송과 신문 카메라는 체육관 2층으로 쫓겨났고, 가급적 실종자 가족이나 유족, 생존자들은 인터뷰를 삼가자는 묵시적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좀 더 성숙한 태도를 보인 듯도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구조 작업이나 정부의 대응에서 언론이 계속 사실을 제대로 보도하지 못하면서 다른 양상이 빚어졌습니다. 유족들은 “정부 발표와 달리 구조 작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진실을 보도해달라고 외쳤는데, 많은 언론이 이런 유족의 목소리까지 소극적으로 보도했습니다. “유족들이 너무 흥분해 정부를 무조건 불신한다”며 측은하게 여기는 시선도 언론계 내에 있었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유족들이 청와대로 향하고 광화문 광장에서 농성을 벌이자 몇몇 신문과 방송은 차가운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보상금이나 특혜를 주장하는 정치권의 목소리를 마치 유족의 입장인 양 보도하기도 했고, 진상규명이나 신속한 구조를 요구하는 것이 정치적인 의도가 깔린 듯 묘사했습니다. 특위 구성과 이를 위한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는 유족과 정부, 양측의 입장을 다 전달하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진실 규명을 위한 대책을 찾기보다는 정쟁거리로 보도했습니다.


소중한 도전들

오보가 왜곡으로 이어진 사례들을 살펴봤습니다만, 세월호 참사에서도 분명 언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문제 제기와 의혹 규명이 있었습니다.

사실 사고가 벌어진 첫날 오후, 구조자 숫자가 정부 발표와 크게 다르다는 점을 먼저 발견한 곳도 언론이었습니다. 선원들이 먼저 배에서 탈출했고, 국가정보원이 먼저 보고를 받았으며, 해양경찰이 선박 운항을 통제하는데 실패했고 사설구조업체와 유착돼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도 언론이었습니다. 진실을 가리고 오보를 만들어내는 거대한 시스템과 비교하면 너무나 초라한 수준일지라도, 저널리스트들은 현실의 한계를 넘어 진실을 찾아 내기 위해 한조각 한조각 사실의 퍼즐들을 발견하고 맞춰 갔습니다. 이런 작은 노력들이 없었다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진실은 훨씬 더 왜소했을겁니다.

특히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독립적인 매체들은 정치적 영향과 상업적 계산에서 자유로운 상태에서 기성 언론이 보도하지 못한 점을 먼저 짚어냈습니다. 유족들의 호소를 외면하는 대통령의 모습, 사설업체에 구조를 맡기고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해경의 모습, 책임회피에 급급한 관료와 정치권의 행태를 적나라하게 밝히며 사건의 주요 대목에서 여론을 환기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하루 24시간 진도체육관의 모습을 생중계하고, 신문·방송에 나오지 않는 모습을 인터넷 동영상으로 전달하고, 때로는 중립지대를 벗어나 시민들과 함께 눈물 흘리고 호통치고 목소리를 높이며 여론을 대변했습니다. 한 신문은 희생자들 한사람 한사람의 얼굴을 그림으로 그려 유족의 편지와 함께 1면에 매일 실었습니다. 숫자와 정치적 언술로 뭉뚱그려져서는 안될 생명의 가치를 차분하게 전달해 오히려 세월호 참사의 비극성을 더 가슴 깊이 전달했습니다.


결론: 보도 가이드라인과 생명의 가치

지금까지 <개혁신앙>에서 요청하신대로, 세월호 참사의 언론 보도를 두서없이 짚어보았습니다. 제 스스로 반성하게 됩니다. 언론과 언론인들은 어떤 면에서는 자발적으로 이러한 실패를 만들어냈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참사가 벌어지고 나흘이 지난 지난해 4월20일, 한국기자협회는 10개 항목의 ‘세월호 참사 보도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보도는 신속함에 앞서 무엇보다 정확해야 한다’‘피해 관련 통계나 명단 등은 반드시 재난구조기관의 공식 발표에 의거해 보도한다’ 등의 내용입니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속보 경쟁이나 선정성 경쟁을 자제하게 만드는 효과는 어느 정도 있었지만, 많은 언론인들이 이걸로는 미흡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뒤 한국기자협회는 모든 재난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재난 보도 준칙’을 제정했습니다. 저도 기자협회 연구조사분과위원장을 맡아 이 준칙의 초안을 만드는데 참여했습니다. 여러 언론인들과 학자, 전문가들이 관심을 가져 모두 10개 언론인 단체가 준칙 제정에 참여했습니다. 지난해 9월 16일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모두 44조항으로 된 ‘재난 보도 준칙’을 발표했습니다.

보도 준칙은 정확한 보도, 인명구조와 수습 우선, 비윤리적 취재 금지, 무리한 보도 경쟁 자제, 유언비어 방지, 피해자 보호, 기자 교육 등 다양한 내용을 폭넓게 담았지만 저는 여전히 입맛이 씁쓸했습니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보도 준칙에 담긴 내용이 대부분 저널리스트들의 취재 테크닉, 즉 기술적인 측면을 이야기하는데 그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글의 앞부분에서 제가 구구절절 설명했듯이, 어떤 면에서 저희 언론인들은 이번 참사에서 과거보다 더 성숙한 태도로 기술적인 중립과 신중함을 지키려 했습니다. 그럼에도 언론은 진실에 다가서는데 총체적으로 실패하였습니다. 권력의 입맛에 맞는 보도에 진력하였고, 희생자와 국민의 심정을 헤아리는 데에는 게을렀습니다. 진실을 찾기위한 보도도 있었지만 상업적인 계산을 넘어서지 못했고 오히려 사실을 오도한 부분도 적지 않습니다. 비록 몇몇 언론인과 매체가 애써 부분적인 보완과 반론 그리고 숨겨진 진실을 파헤쳐보았으나 총체적 진실을 규명하는데에는 크게 실패했습니다.

언론인들은 오히려 자발적으로 실패에 기여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보도에서 저희 언론인들이 실패한 것은,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었고 윤리적 기준을 몰라서가 아니었습니다. 진실을 찾고 보도하기 위한 수단인 언론의 취재 기술과 윤리 기준은 오히려 이런 실패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 하는 알리바이 역할을 하는데 그쳤습니다. 정치적인 희생양을 만들지 않겠다면서 통치자의 책임을 묻지 않았고, 유족의 모습을 자극적으로 보도하지 않겠다면서 그들의 호소를 무시했고, 상업적인 이익을 노리는 센세이셔널한 보도를 자제하겠다면서도 정작 가장 차분해야할 때 가장 흥분했습니다. 정치권력의 노골적인 압력과 요청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언론인들이 자발적으로 권력의 의도에 따랐습니다.

결론을 대신해 조심스럽게 얘기하자면, 저희 언론인들은 세월호 보도를 하면서 정치성과 상업성을 배제하고자 했지만 정작 그 빈자리에 무엇을 채워야 할지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치 경찰병력에 쫓겨 숲으로 달아난 유병언처럼, 언론도 권력이 쫓아내는 방향으로 달아나기만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방향은 진실과는 반대 방향이었습니다.

저희 언론인들이 직업적 가치와 현실 사이에서 생존의 길을 찾느라, 가장 소중한 생명의 가치를 잃어버렸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정치 권력의 눈치를 보거나 상업적인 보도를 하는데 더 열중했지 생명의 소중함을 전달하고 그 비극을 애도하는 데에는 소극적이었습니다.

가라앉는 배에 타고 있던 304명의 생명을 보면서도, 이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몰랐습니다. 그 생명 하나하나가 우주보다 더 소중하다는 것을 명심했다면, 언론은 그 생명의 소중함을 지키기 위해 권력의 토끼몰이를 벗어나 다른 방향으로 달려갈 수 있지 않았을까요.

언론사와 언론인들이 생명의 소중함을 가슴 깊이 새기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정치나 상업성에 더 치우칠 수밖에 없을겁니다. 최근의 메르스 감염 사태를 보도하는 태도를 봐도 그렇습니다. 생명의 문제를 정치적인 이슈로 만들어 편가르기를 하고, 상업적인 이익을 위해 불필요하게 불안감을 자극하는 보도를 합니다. 미디어의 생존이 어려워지고 정치권력이 권위를 앞세우는 상황에서 언론이 언론의 본령을 놓쳐버렸습니다.

상업적인 보도, 정치적인 파장을 우선시하는 보도 태도를 극복하고 생명의 가치, 그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의 변화가 이뤄져야 언론에 대한 불신이 비로소 해소될 수 있을겁니다. 돈 되는 보도, 정치적인 공방을 불러일으키는 보도가 좋은 보도가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보도가 진정 가치 있는 보도라는 태도가 언론인들 사이에 공유되고 그것이 취재보도에 물씬 배어 나올 때 국민들이 비로소 언론을 신뢰하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단테의 신곡은 ‘인생의 어느 한 순간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길을 잃었다’는 자각으로 시작합니다. 지옥과 연옥을 거쳐 천국에 이르러 “인생의 원초적인 힘은 사랑이며, 그 빛 속에 신이 계신다”는 고백으로 끝을 맺습니다. 저희 언론인들도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진실로 가는 길을 잃었다”는 고백을 할 수 있다면, 언젠가는 우리도 사랑의 빛 속에 계신 신을 만날 수 있으리라 소망하며, 영혼의 불청객인 동료 저널리스트들을 위한 변명을 늘어놓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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