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싸울 기회, 한국 자본주의

경제부로 온 뒤로도 경제 관련 책을 읽을 짬을 못내다가, 노유진의 정치카페(응? 팟캐스트는 들을 시간이 있었구나?)에서 '싸울 기회'를 소개해줘서 접하게 되었다. 내친김에 그동안 꽂아만 두었던 '한국 자본주의'도 손을 대게 되었다. 두 책다 아주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싸울 기회 - 10점
엘리자베스 워런 지음, 박산호 옮김/에쎄

미국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 할머니의 자서전 격인데, 미국 가난한 노동자 집안의 책벌레 소녀가 파산법을 연구하는 법학자가 되었다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무책임한 금융자본가들(+연방정부이 관료들)에 맞서 파산하는 중산층을 위해 싸우다 결국 상원의원이 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가 기가 막힌다. 유머와 찡한 비극과 본질을 지적하는 속시원한 비판과 개인의 다사다난한 가정사까지 한데 버무리면서도 속도감있게 최전선을 향해 달려간다.

이 할머니의 개인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특히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경제 정치 사회가 어떻게 굴러갔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벤 버냉키도 당시에 대한 책을 몇권 출간했지만, 이 책을 읽으면 그의 이야기는 듣고 싶어지지 않는다. 버냉키가 가장 핵심적인 사안을 설명해줄지는 모르겠지만 엘리자베스 워런은 싸움의 가장 앞쪽, 최전선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어떻게 투쟁하고 이기고 지고 다시 싸웠는지 보여준다.
공화당 의원이나 재무 관료들의 부도덕한 실태를 실명으로 깐다. 한국 같으면 명예훼손에 판매금지 가처분 소송감이지만 미국에선 표현의 자유가 우선!

재밌고 인사이트가 있는 구절이 많지만, 몇개만 소개하자면..

"금융위기가 일어나기 몇 달, 몇 년 전부터 초대형 은행들이 범죄활동에 관여했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이 것이다. 그걸 확실히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다. 왜 정부는 대대적으로 공개수사를 벌이지 않는가? 은행에 몰려가서 하드드라이브를 압수하고 제표들을 꼼꼼히 읽어봐야 할 회계 감사관들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처음부터 장부들을 확인하고 있어야 할 규제 담당자들은 어디에 있나?"

"이 나라에서 혼자 부자가 된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단 한 명도 없죠. 당신이 저기에 공장을 지었나요? 잘하셨습니다. 하지만 이건 분명히 해두고 싶어요. 당신은 우리 세금으로 지은 도로로 당신이 만든 물건을 시장까지 운반했습니다. 당신은 우리 세금으로 교육시킨 사람들을 고용했습니다. 당신이 당신 공장에서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낸 세금으로 유지하는 경찰과 소방관들 덕분입니다. 우리가 낸 세금이 있기 때문에 비적들이 당신 공장을 약할하러 처들어와 물건을 빼앗을까봐 걱정하면서 그들을 막아줄 누군가를 고용하지 않아도 되는 겁니다. 공장을 지어서 큰 돈을 버셨나요? 참 잘됐습니다! 그 제산의 대부분은 가지세요. 하지만 우리가 맺은 사회적인 계약에 따라 그 일부는 미래에 당신 공장에 일하러 올 아이들을 위해 세금으로 내주세요."

유튜브에서 Elizabeth Warren을 검색하면 이 할머니의 연설이나 토크쇼 대화가 많이 올라와 있다. 미국 대선에서 대통령 후보로 강추하는 팬들도 많고, 실제 힐러리를 견제하고 싶어하는 민주당 내 남자 대선주자들-예를 들면 조 바이든 현 부통령-의 러닝메이트감으로 꼽히기도 한다. 유튜브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아주 똑똑하고 하버드 교수 답게 말도 빠르고 분명하다. 팬이 될만하다. 영상 하나 추천.


"저는 매일 큰 싸움을 싸우고 있어요. 이 나라가 앞으로 어떤 나라가 될지를 두고 싸웁니다. 위험한 게임이죠."
"게임? 무슨 게임이요?"
"우리가 사는 이 나라,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이 나라를 어떻게 운영할지에 관한거죠. 우리의 연방정부는 정말 멋지게 일합니다. 백만장자를 위해 훌륭하게 일하죠. 억만장에게도 훌륭한 나랍니다. 대기업을 위해 훌륭하게 일합니다. 변호사와 로비스트 군단을 동원하고 선거자금을 몰아줄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정말 멋지게 일합니다. 그러나 나머지 미국인들을 위해서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이제 이 정부를 되찾아와야할 때입니다."

책 표지에는 "민주당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 자서전. 어떻게 백전백승의 인생을 살 수 있는가?"라고 씌여있다. 마치 성공한 여성의 비결을 알려주는 자기개발서 같은 문구다. 픽.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으며 이 할머니처럼 한국의 파산자들을 취재해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한국 자본주의 - 10점
장하성 지음/헤이북스
내친김에 읽은 장하성 교수의 '한국 자본주의'.

대학 강의도 워낙에 꼼꼼하게 한다고 들어서, 지루한 경제학 교과서일 줄 알고 각오를 하고 펴들었는데 의외로 술술 잘 읽혔다.

마치 신문 칼럼을 읽는 것처럼 팩트와 정보, 균형 잡힌 비판이 속도감있게 전개된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통계와 연구자료를 아주 풍부하게 제시한다. 오랫동안 스크랩하고 많은 글을 읽어왔음을 알게 해준다. 

그런 저널리스틱한 글들이 체계적으로 엮여 한국 자본주의의 특징을 드러내 보여준다. 경제 평론을 넘어 하나의 한국 자본주의론을 전해한다. 아주 이상적인 경제 서적이다. 

노무현 정부 때 제조업보다 서비스업을 키워야 한다고 정부가 주장하는 것에 아주 학을 뗐었는데, 그 얘기가 맞다는 것을 이 책을 보고 알게 되었다. 또 한국 대기업의 실제 조세부담률이 월급쟁이들보다 더 낮은 수준이라는 수치나, WEF  국가경쟁력 순위를 한국에서 얘기할 때 언급되지 않는 부분들까지 집어내 얘기해준다. 어찌나 꼼꼼하게 수치와 팩트를 제시하는지 내가 기자로서 부끄러움을 느낄 정도다.

그러나 장하성 교수의 지론인 '주주 자본주의'에 대한 얘기에는 완전 동의할 수는 없었다. 책의 2부에서 많은 부분을 할애해 주주 자본주의를 옹호하고 설명하는데, 원론적으로는 맞는 얘기지만 주주의 역할은 이론적인 이상을 얘기하고 협동조합이나 당자사주의는 현실적인 한계를 거론하며 비판하는게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한국 경제의 현실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사람, 그리고 대안이 무엇일지 어떻게 개선해가야할지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할 책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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