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번역] 오바마 대통령의 추모사 - 찰스턴의 임마누엘교회 인종테러 희생자 클레멘타 핀크니 목사 장례식

2015년 6월 26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칼리지에서 치러진 찰스턴의 임마누엘 교회 목사 장례식에서 추모사를 전했다.

백인의 손에 학살당한 흑인 목사와 그 성도들을 향한 깊은 추모와, 용서를 베푼 이들을 향한 경외의 마음이 잘 담겨 있다.

동영상을 보면서 특별히 인상깊어던 것은, 오바마의 연설을 들으면서 미소를 짓고 추임새를 넣는 흑인 목사와 성도들이다. 진심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용서의 기쁨을 표현하는 그 모습이 감동적이다. 반면 오바마 대통령 역시 감동적이다. 전혀 웃지도 않고 미소 짓지도 않지만 깊은 존경과 미국을 향한 애타는 호소가 담겨 있다.

그 감동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 부족한 실력이지만 추모사 전문을 번역해 보았다. 의역에 가깝게 번역하려고 했지만, 원문을 따라가다보니 우리말로는 이해가 어려운 대목도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뒤에 보라색 옷을 입고 계신 분들은 미국 흑인교단인 AME의 감독들이라고 한다. A.M.E.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독립 흑인 교단으로, 그 기원이 1787년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흑민 민권 운동에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왼쪽의 여자분은 미국 최초의 흑인 여성 감독이다.
 큰 슬픔을 당했지만 의연하게 용서한 분들 답게, 오랜 세월 탄압과 차별을 견뎌온 분들 답게 오히려 미소와 찬양과 박수로 화답하는 모습이 마치 성령의 춤을 추는 듯 하다.

(페북 친구들이 도움을 주셨습니다. 메릴린 로빈슨의 '선의의 저수지~' 대목의 번역은 전계도님께서, AME 교회와 Underground Railroad에 대한 설명은 Won Jae LEE님께서 알려주셔서 덧붙였습니다. 몇몇 오타를 수정하고 몇개 단어의 번역을 바꿨습니다.-2015년 7월1일)





하나님께 모든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Giving all praise and honor to God.  (Applause.)

성경은 우리에게 소망을 품으라 합니다. 인내하라 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으라 합니다. (신약성경 고린도전서 13장 7절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The Bible calls us to hope.  To persevere, and have faith in things not seen.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성경(히브리서 11장 13절)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They were still living by faith when they died,” Scripture tells us. “They did not receive the things promised; they only saw them and welcomed them from a distance, admitting that they were foreigners and strangers on Earth.”

믿음으로 살았던 하나님의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 우리는 오늘 여기 모였습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은 사람이었습니다.(히브리서 11장 1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더 좋은 앞날이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저 멀리에. 그는 인내하며 섬겼습니다. 그가 약속한 모든 것을 그가 누리지는 못할 것을 잘 알면서도 그러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노력으로 그의 후손들이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We are here today to remember a man of God who lived by faith.  A man who believed in things not seen.  A man who believed there were better days ahead, off in the distance.  A man of service who persevered, knowing full well he would not receive all those things he was promised, because he believed his efforts would deliver a better life for those who followed.

제니퍼, 그가 사랑한 부인, 엘레나와 말라나, 아릅답고 놀라운 따님, 이 임마누엘교회의 가족과 찰스톤의 주민들, 사우스캘로라이나의 주민 여러분,
To Jennifer, his beloved wife; to Eliana and Malana, his beautiful, wonderful daughters; to the Mother Emanuel family and the people of Charleston, the people of South Carolina.

저는 핀크니 목사를 잘 아는 사이였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를 알고 여기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만났습니다. 우리 둘 다 좀 더 젊었던 때였습니다. (웃음) 이렇게 흰머리가 눈에 띄지 않을 때였지요. (더 큰 웃음) 내게 그의 첫인상은 너그러움, 미소,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바리톤의 목소리, 짓궂은 유머였습니다. 이 모든 것 때문에 그는 기대감이라는 무거운 짐을 끊임 없이 감당했습니다.
I cannot claim to have the good fortune to know Reverend Pinckney well.  But I did have the pleasure of knowing him and meeting him here in South Carolina, back when we were both a little bit younger.  (Laughter.)  Back when I didn’t have visible grey hair.  (Laughter.)  The first thing I noticed was his graciousness, his smile, his reassuring baritone, his deceptive sense of humor -- all qualities that helped him wear so effortlessly a heavy burden of expectation.

그의 친구들은 이번주에 말하길, 클레멘타 핀크니 (목사)가 방에 들어서면 마치 미래가 당도하는 듯했다고 합니다. 젊었을 때부터 그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인물로 여겨졌습니다. 지명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신앙의 긴 역사를 이어갈 후계자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의 계보이자, 투표권을 (흑인에게) 확대하고 남부의 인종차별을 극복하는 변화의 씨앗을 뿌린 저항자의 계보를 이었습니다. 고인은 그들의 가르침을 들었고 그 교훈을 내버리지 않았습니다.
Friends of his remarked this week that when Clementa Pinckney entered a room, it was like the future arrived; that even from a young age, folks knew he was special.  Anointed.  He was the progeny of a long line of the faithful -- a family of preachers who spread God’s word, a family of protesters who sowed change to expand voting rights and desegregate the South.  Clem heard their instruction, and he did not forsake their teaching.

고인은 13살 때 설교단에 섰고, 18살에 목회자가 되었고, 23세에 공직자가 되었습니다. 젊은이의 자만은 조금도 비치지 않았고, 젊음의 불안도 내보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고인은 그의 연설과 행동과 사랑과 믿음과 순결함을 통해 그의 지위에 덕이 되는 모범을 보였고 나이를 뛰어넘는 지혜를 발휘했습니다.
He was in the pulpit by 13, pastor by 18, public servant by 23.  He did not exhibit any of the cockiness of youth, nor youth’s insecurities; instead, he set an example worthy of his position, wise beyond his years, in his speech, in his conduct, in his love, faith, and purity.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상원의원으로서 그는 로우컨트리의 다양한 이들을 대표했습니다. 이 곳은 미국에서 가장 천대 받아 온 곳 중 하나였습니다. 이 곳은 여전히 가난으로 점철돼 있습니다. 학교는 열악합니다. 이 곳에서는 아이들이 여전히 굶주리고 아픈 사람들이 치료를 받지 못합니다. 바로 클렘(핀크니 목사) 같은 사람이 필요한 곳입니다. (박수)
As a senator, he represented a sprawling swath of the Lowcountry, a place that has long been one of the most neglected in America.  A place still wracked by poverty and inadequate schools; a place where children can still go hungry and the sick can go without treatment.  A place that needed somebody like Clem.  (Applause.)

소수정당에 속했기에 그의 공동체에 필요한 지원을 이끌어내기에는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더 큰 평등을 요구하는 그의 목소리는 너무나 자주 무시 당했습니다. (의회에서) 그의 표는 때때로 외로웠습니다. 그러나 고인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확신에 진실했습니다. 용기를 잃지 않았습니다. 의회에서 하루 종일 보낸 뒤에도 차에 올라 교회로 향해 그의 성도들과 목회 사역을 통해 힘을 얻었습니다. 그를 사랑하고 그를 필요로 했던 공동체가 그에게는 힘이 되었습니다. 거기서 그는 신앙을 다지고 앞날의 일을 상상했습니다.
His position in the minority party meant the odds of winning more resources for his constituents were often long.  His calls for greater equity were too often unheeded, the votes he cast were sometimes lonely.  But he never gave up.  He stayed true to his convictions.  He would not grow discouraged.  After a full day at the capitol, he’d climb into his car and head to the church to draw sustenance from his family, from his ministry, from the community that loved and needed him.  There he would fortify his faith, and imagine what might be.

핀크니 목사는 졸렬하지도 초라하지도 않은 정치를 구현했습니다. 조용히 친절하게 그리고 부지런히 움직였습니다. 자기 주장을 밀어붙이기보다는 상대의 생각을 구하고 상대와 협력해 진보를 이끌어 냈습니다. 그는 공감과 동정심이 충만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헤아리고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볼 줄 알았습니다. 그의 주 상원의회 동료가 고인을 ‘우리 46명 중 가장 신사적이었던 최고의 인물’이라고 회고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Reverend Pinckney embodied a politics that was neither mean, nor small.  He conducted himself quietly, and kindly, and diligently.  He encouraged progress not by pushing his ideas alone, but by seeking out your ideas, partnering with you to make things happen.  He was full of empathy and fellow feeling, able to walk in somebody else’s shoes and see through their eyes.  No wonder one of his senate colleagues remembered Senator Pinckney as “the most gentle of the 46 of us -- the best of the 46 of us.”

고인은 ‘왜 목사가 공직자가 되었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습니다. 그 질문을 한 사람은 아마도 이 교회의 역사를 몰랐을 겁니다.(박수) 아프리칸 감리회(AME church)의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이런 예외를 만든게 아닙니다. 고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교회 성도의 벽 안에 머무르라고 부르신게 아니라 우리 성도들이 살아가는 삶과 공동체를 위해 부르셨습니다.” (박수)
Clem was often asked why he chose to be a pastor and a public servant.  But the person who asked probably didn’t know the history of the AME church.  (Applause.)  As our brothers and sisters in the AME church know, we don't make those distinctions. “Our calling,” Clem once said, “is not just within the walls of the congregation, but…the life and community in which our congregation resides.”  (Applause.)

고인은 우리 기독교 신앙이 말로만 떠들지 않고 몸으로 실천하라는 그 지식을 몸으로 실현했습니다. ‘기도하는 귀한 시간’은 실제로 (주일만이 아니라) 일주일 내내 이어졌습니다. (박수) 우리의 믿음을 실천하는 것은 개인적인 구원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굶주린 이를 먹이고 헐벗은 이를 입히며 집 없는 이에게 집을 내어주라는 말씀은 단순한 자선만을 요구하는게 아니라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He embodied the idea that our Christian faith demands deeds and not just words; that the “sweet hour of prayer” actually lasts the whole week long -- (applause) -- that to put our faith in action is more than individual salvation, it's about our collective salvation; that to feed the hungry and clothe the naked and house the homeless is not just a call for isolated charity but the imperative of a just society.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지. 가끔 저는 최고의 추모사는 모든 말과 인용과 경력을 읊는 것보다 그저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박수)
What a good man.  Sometimes I think that's the best thing to hope for when you're eulogized -- after all the words and recitations and resumes are read, to just say someone was a good man.  (Applause.)

꼭 높은 지위에 올라야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아닙니다. 13살에 설교자가 되고 18살에 목사가 되고 23살에 공직자가 되었습니다. 클레멘타 핀크니의 인생이여! 그가 보여준 모범이여! 그 신앙의 본보기여! 그리고 그의 나이 41살에 우리는 그를 잃었습니다. 그의 성전에서 8명의 멋진 성도들과 함께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인생의 각기 다른 경지에 있었지만 하나님을 향한 헌신으로 함께 묶여 있었습니다.
You don’t have to be of high station to be a good man.  Preacher by 13.  Pastor by 18.  Public servant by 23.  What a life Clementa Pinckney lived.  What an example he set.  What a model for his faith.  And then to lose him at 41 -- slain in his sanctuary with eight wonderful members of his flock, each at different stages in life but bound together by a common commitment to God.

신씨아 허드, 수지 잭슨, 에델 랜스, 디패인 미들턴 닥터, 티완자 샌더스, 데니얼 시몬스, 샤론다 콜먼싱글턴, 미라 톰슨. 좋은 사람들이었고, 멋진 사람들이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박수) 생명으로 충만해 친절이 넘치는 이들이었습니다. 인내하며 (신앙의) 경주를 달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위대한 신앙의 인물이었습니다.
Cynthia Hurd.  Susie Jackson.  Ethel Lance.  DePayne Middleton-Doctor.  Tywanza Sanders.  Daniel L. Simmons.  Sharonda Coleman-Singleton.  Myra Thompson.  Good people.  Decent people. God-fearing people.  (Applause.)  People so full of life and so full of kindness.  People who ran the race, who persevered.  People of great faith.

숨진 이들의 가족 여러분, 온 국민이 여러분과 함께 슬퍼하고 있습니다. 이 교회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기에 아픔이 더 깊습니다. 이 교회는 지금껏 흑인들의 삶에 중심이었습니다. (박수) 수시로 적대적인 이 세상에서 우리만의 장소라 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수많은 고난으로부터의 피신처였습니다.
To the families of the fallen, the nation shares in your grief.  Our pain cuts that much deeper because it happened in a church.  The church is and always has been the center of African-American life -- (applause) -- a place to call our own in a too often hostile world, a sanctuary from so many hardships.

수세기를 거쳐 오는 동안 흑인 교회는 노예들이 안전하게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조용한 항구였습니다. 그들의 자유로운 후손들이 모여 할렐루야를 외칠 수 있는 찬양의 집이었습니다. (박수) 지하철도(Underground Railroad는 19세기 도망친 노예들을 북부나 캐나다로 피신시키는 비밀조직이었음)를 따라가며 지친 이들에게 휴게소가 되어주었습니다. 흑인 인권 운동의 보병들을 위한 진지(벙커)였습니다. 교회는 우리가 일자리를 만들고 정의를 구현하는 커뮤니티센터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장학금을 마련하고 상부상조하는 곳이었으며, 아이들이 사랑을 받고 밥을 먹고 위험한 길에서 보호 받는 장소였습니다. 아이들이 ‘너는 아름답고 지혜롭다’는 소리를 듣는 곳이었습니다. (박수) 그들 자신이 소중하다는 걸 배우는 장소였습니다. (박수) 이런 일들이 교회에서 일어났습니다.
Over the course of centuries, black churches served as “hush harbors” where slaves could worship in safety; praise houses where their free descendants could gather and shout hallelujah -- (applause) -- rest stops for the weary along the Underground Railroad; bunkers for the foot soldiers of the Civil Rights Movement.  They have been, and continue to be, community centers where we organize for jobs and justice; places of scholarship and network; places where children are loved and fed and kept out of harm’s way, and told that they are beautiful and smart -- (applause) -- and taught that they matter.  (Applause.)  That’s what happens in church.

흑인 교회는 이런 곳입니다. 우리의 박동하는 심장입니다. 인간으로서 우리의 존엄이 손상되지 않는 장소입니다. 이런 전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바로 마더 임마누엘 (교회)입니다. 자유를 찾던 흑인들이 세운 교회, 설립자들이 노예제도의 폐지를 요구했다는 이유로 불타버린 교회, 다시 일어나, 잿더미에서 일어난 불사조입니다. (박수)
That’s what the black church means.  Our beating heart.  The place where our dignity as a people is inviolate.  When there’s no better example of this tradition than Mother Emanuel -- (applause) -- a church built by blacks seeking liberty, burned to the ground because its founder sought to end slavery, only to rise up again, a Phoenix from these ashes.  (Applause.)

흑인 교회를 금지하는 법이 있었을 때에도 여기에선 예배를 드렸습니다. 불의한 법에 대항한 저항이었습니다. 짐 크로우 법(인종차별을 합법화한 법과 제도)을 반대하는 인권 운동이 벌어졌을 때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는 이 강단에서 설교했습니다. 그 행진이 이 계단에서 시작됐습니다. 거룩한 곳입니다, 이 교회는. 흑인에게만이 아니라, 기독교인에게만이 아니라, 인권과 인간의 존엄이 이 나라에서 조금씩 확장되길 소망하는 모든 미국인에게, 모든 사람의 자유와 정의를 위한 주춧돌입니다. 이 교회는 그런 의미였습니다. (박수)
When there were laws banning all-black church gatherings, services happened here anyway, in defiance of unjust laws.  When there was a righteous movement to dismantle Jim Crow, Dr. Martin Luther King, Jr. preached from its pulpit, and marches began from its steps.  A sacred place, this church.  Not just for blacks, not just for Christians, but for every American who cares about the steady expansion -- (applause) -- of human rights and human dignity in this country; a foundation stone for liberty and justice for all.  That’s what the church meant.  (Applause.)

핀크니 목사와 다른 8명을 살해한 자가 이 모든 역사를 알고 있었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분명 그 폭력행위가 어떤 의미인지 알았습니다. 폭탄과 방화, 교회를 향한 총격의 긴 역사를 잇는 행동이었습니다. 우연이 아니라, 지배의 수단이었고, 겁 주고 억압하는 방법이었습니다. (박수) 그는 이런 행동이 두려움을 일으키고 보복을 불러올거라 여겼을겁니다. 폭력과 회의를 일으키려 했을 겁니다. 분열을 더 깊게 하고 우리 나라의 원죄를 다시 불러오는 행동이 될 것으로 짐작했을 겁니다.
We do not know whether the killer of Reverend Pinckney and eight others knew all of this history.  But he surely sensed the meaning of his violent act.  It was an act that drew on a long history of bombs and arson and shots fired at churches, not random, but as a means of control, a way to terrorize and oppress.  (Applause.)  An act that he imagined would incite fear and recrimination; violence and suspicion.  An act that he presumed would deepen divisions that trace back to our nation’s original sin.
 
오, 그러나 하나님은 신비로운 방법으로 일하십니다. (박수)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박수)
Oh, but God works in mysterious ways.  (Applause.)  God has different ideas.  (Applause.)

그는 자기가 하나님에게 쓰임 받고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박수) 미움에 눈이 멀어 그 살인 용의자는 핀크니 목사와 성경공부모임을 둘러싼 그 은혜를 보지 못했습니다. 이 분들이 교회의 문을 열어 이 낯선 사람을 기도 모임에 초대했을 때 빛나던 그 사랑의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살인 용의자는 희생자의 가족이 법정에서 자신과 대면했을 때 그런 태도를 보일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못했을 겁니다. 말할 수 없는 슬픔의 한가운데에서 용서의 언어라니. 상상도 못했겠지요. (박수)
He didn’t know he was being used by God.  (Applause.)  Blinded by hatred, the alleged killer could not see the grace surrounding Reverend Pinckney and that Bible study group -- the light of love that shone as they opened the church doors and invited a stranger to join in their prayer circle.  The alleged killer could have never anticipated the way the families of the fallen would respond when they saw him in court -- in the midst of unspeakable grief, with words of forgiveness.  He couldn’t imagine that.  (Applause.)

살인 용의자는 찰스톤이라는 도시가 릴리 시장의 선하고 지혜로운 리더십 아래에서, 사우스캐롤라이나가, 미국이 이렇게 대응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겁니다. 그의 악행에 그저 벌벌 떠는게 아니라 온 마음으로 관대하게, 더 중요하게는 사려 깊은 성찰과 자기 반성으로 우리가 공적 생활에서 보기 어려운 대응을 했습니다.
The alleged killer could not imagine how the city of Charleston, under the good and wise leadership of Mayor Riley -- (applause) -- how the state of South Carolina, how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would respond -- not merely with revulsion at his evil act, but with big-hearted generosity and, more importantly, with a thoughtful introspection and self-examination that we so rarely see in public life.

증오에 눈이 먼 그는 핀크니 목사가 깊이 이해하고 있던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Blinded by hatred, he failed to comprehend what Reverend Pinckney so well understood -- the power of God’s grace.  (Applause.)

이번주 내내 저는 은혜라는 지혜를 묵상했습니다. (박수)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가족의 은혜. 핀크니 목사가 설교에서 선포했을 은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찬송가에 묘사된 그 은혜 - 우리 모두가 아는, 어메이징 그레이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박수)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박수)
This whole week, I’ve been reflecting on this idea of grace. (Applause.)  The grace of the families who lost loved ones.  The grace that Reverend Pinckney would preach about in his sermons.  The grace described in one of my favorite hymnals -- the one we all know:  Amazing grace, how sweet the sound that saved a wretch like me.  (Applause.)  I once was lost, but now I’m found; was blind but now I see.  (Applause.)

기독교의 전통에 따르면, 은혜는 우리 힘으로 얻는게 아닙니다. 은혜는 우리가 쌓는 공덕이 아닙니다. 우리가 감당할만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의 자유롭고 자비로운 뜻으로 은혜는 주어집니다. 죄인의 구원을 선포하고 축복을 내리듯이. 그것이 은혜입니다.
According to the Christian tradition, grace is not earned.  Grace is not merited.  It’s not something we deserve.  Rather, grace is the free and benevolent favor of God -- (applause) -- as manifested in the salvation of sinners and the bestowal of blessings.  Grace.

우리 나라에, 이 끔찍한 비극 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주셨습니다. 우리가 눈멀었던 곳을 보게 하셨습니다. (박수) 우리가 잃어버린 우리의 최선의 모습을 되찾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박수) 우리로서는 이런 은혜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원한과 자기만족에 빠졌고 멀리 보지 못하고, 서로를 두려워 합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 같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저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분은 또 한번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다만 우리는 결정해야 합니다. 이 은혜를 살릴 것인지, 거저 받을 것인지, 우리가 이 선물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As a nation, out of this terrible tragedy, God has visited grace upon us, for he has allowed us to see where we’ve been blind.  (Applause.)  He has given us the chance, where we’ve been lost, to find our best selves.  (Applause.)  We may not have earned it, this grace, with our rancor and complacency, and short-sightedness and fear of each other -- but we got it all the same.  He gave it to us anyway.  He’s once more given us grace.  But it is up to us now to make the most of it, to receive it with gratitude, and to prove ourselves worthy of this gift.

너무나 오랫동안, 우리는 남부연합깃발이 많은 시민들을 뒤흔들어온 아픔에 눈감아 왔습니다. (박수) 맞습니다. 이 깃발이 살인을 불러온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공화당원이나 민주당원이나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이 문제에 대해 찬양 받을 만한 언급을 한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니키) 헤일리 주지사를 포함해 (박수)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합니다. 이 깃발은 지금껏 선조에대한 자부심만 상징해온게 아닙니다. (박수) 많은 이들에게, 흑인에게나 백인에게나, 이 깃발은 구조적인 억압과 인종 공격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그 것을 목격합니다.
For too long, we were blind to the pain that the Confederate flag stirred in too many of our citizens.  (Applause.)  It’s true, a flag did not cause these murders.  But as people from all walks of life, Republicans and Democrats, now acknowledge -- including Governor Haley, whose recent eloquence on the subject is worthy of praise -- (applause) -- as we all have to acknowledge, the flag has always represented more than just ancestral pride.  (Applause.)  For many, black and white, that flag was a reminder of systemic oppression and racial subjugation.  We see that now.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회에서 이 깃발을 내리는 것은 정치적인 교정(PC) 행동이 아닙니다. 남부연합 군인들의 용맹을 모욕하는게 아닙니다. 단순히 그들이 싸웠던 이유, 노예제도라는 그 이유가 틀렸다는 것을 알리는 일입니다. (박수) 남북전쟁 이후 (인종차별을 제도화 한) 짐 크로우 법을 제정한 것, 모든 이들의 시민 권리를 반대한 것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박수) 미국 역사를 정직하게 설명하는 데 한 걸음 진전을 이루는 것입니다. 치유되지 못한 저 많은 상처에 미약하나 의미 있는 치료제가 될 것입니다. 이 주와 이 나라를 뒤바꿔놓은 놀라운 변화를 드러내 보여주는 행동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선한 뜻을 가진 저 많은 이들, 더 완벽한 통일을 위해 애써온 모든 인종의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깃발을 내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게 됩니다. (박수)
Removing the flag from this state’s capitol would not be an act of political correctness; it would not be an insult to the valor of Confederate soldiers.  It would simply be an acknowledgment that the cause for which they fought -- the cause of slavery -- was wrong -- (applause) -- the imposition of Jim Crow after the Civil War, the resistance to civil rights for all people was wrong.  (Applause.) It would be one step in an honest accounting of America’s history; a modest but meaningful balm for so many unhealed wounds.  It would be an expression of the amazing changes that have transformed this state and this country for the better, because of the work of so many people of goodwill, people of all races striving to form a more perfect union.  By taking down that flag, we express God’s grace.  (Applause.)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여기서 멈추길 원하지 않으십니다. (박수) 너무나 오랫동안, 우리는 과거의 불의가 현재를 규정해온 방식에 눈멀어 있었습니다. 아마도 우리는 지금에야 보게 된 듯 합니다. 아마도 이 비극이 우리에게 어려운 질문을 던지게 한 듯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가난에 고통 받는 것을, 황폐한 학교에 출석하는 것을, 직업을 기대할 수 없는 처지에서 자라는 것을 용인해왔다는 것을 말입니다. (박수)
But I don't think God wants us to stop there.  (Applause.)  For too long, we’ve been blind to the way past injustices continue to shape the present.  Perhaps we see that now.  Perhaps this tragedy causes us to ask some tough questions about how we can permit so many of our children to languish in poverty, or attend dilapidated schools, or grow up without prospects for a job or for a career.  (Applause.)

아마도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이 미움을 품게 했던 우리의 행동을 살펴보게 될 듯 합니다. (박수) 아마도 잃어버린 젊은이들을 향한 우리의 마음이 좀 더 누그러질 것 같습니다. 형사범죄의 덫에 빠진 수만, 수십만의 젊은이들 말입니다. (박수) 그래서 이 경찰 체계가 편견에 물들지 않도록 하고 우리의 경찰을 훈련시키는 과정에도 변화를 일으켜, 경찰이 봉사하는 지역사회가 법집행을 신뢰하도록 만들어, 우리 모두를 더 안전하게 지켜주도록 할 것입니다.
Perhaps it causes us to examine what we’re doing to cause some of our children to hate.  (Applause.)  Perhaps it softens hearts towards those lost young men, tens and tens of thousands caught up in the criminal justice system -- (applause) -- and leads us to make sure that that system is not infected with bias; that we embrace changes in how we train and equip our police so that the bonds of trust between law enforcement and the communities they serve make us all safer and more secure.  (Applause.)  

인종적인 편견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할 때에도 우리에게 영향을 끼쳐 왔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인종적인 비방에만 주의하는게 아니라, 우리 안의 미묘한 충동에도 주의해야 합니다. 일자리 면접에 (백인) 쟈니만 부르고 (유색인종인) 자말은 부르지 않고 싶은게 아닌지. (박수) 우리의 양심을 살펴야 합니다. 우리의 시민 중 어떤 이들이 투표하기 더 어렵게 만드는 법을 만들려 하는게 아닌지. (박수) 모든 아이들을 소중하게 다루면서 우리가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피부색에 상관 없이 태어난 신분에 상관 없이 모든 미국인이 기회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일을 실천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박수)
Maybe we now realize the way racial bias can infect us even when we don't realize it, so that we're guarding against not just racial slurs, but we're also guarding against the subtle impulse to call Johnny back for a job interview but not Jamal.  (Applause.)  So that we search our hearts when we consider laws to make it harder for some of our fellow citizens to vote.  (Applause.)  By recognizing our common humanity by treating every child as important, regardless of the color of their skin or the station into which they were born, and to do what’s necessary to make opportunity real for every American -- by doing that, we express God’s grace.  (Applause.)

너무나 오랫동안
For too long --

청중: 너무나 오랫동안
AUDIENCE:  For too long!

대통령: 너무나 오랫동안 우리는 총기 폭력이 이 나라에 행해온 고유의 범죄에 눈감아 왔습니다. (박수) 갑자기 우리가 눈을 떴습니다. 우리 형제 자매 8명이 교회 지하실에 쓰러졌을 때, 극장에서 12명이, 초등학교에서 26명이 쓰러질 때 말입니다. 저는 이 나라에서 매일 30명의 고귀한 생명이 총기 폭력으로 숨진다는 사실을 우리가 보길 원합니다. 셀수 없이 많은 이들의 삶이 영원히 바뀌었습니다. 생존자들은 불구가 되고, 어린이들은 정신적 충격을 받고 매일 학교로 걸어가면서 두려워합니다. 남편은 아내의 부드러운 손길을 다시는 느낄 수 없고, 공동체 전체가 그들에게 벌어진, 또 다른 곳에서 벌어진 일들을 목격할 때마다 슬픔에 잠깁니다.
THE PRESIDENT:  For too long, we’ve been blind to the unique mayhem that gun violence inflicts upon this nation.  (Applause.) Sporadically, our eyes are open:  When eight of our brothers and sisters are cut down in a church basement, 12 in a movie theater, 26 in an elementary school.  But I hope we also see the 30 precious lives cut short by gun violence in this country every single day; the countless more whose lives are forever changed -- the survivors crippled, the children traumatized and fearful every day as they walk to school, the husband who will never feel his wife’s warm touch, the entire communities whose grief overflows every time they have to watch what happened to them happen to some other place.

대다수의 미국인들, 총기를 소지한 사람의 다수도 이런 상황에 뭔가 행해지길 바랍니다. 우리는 지금 그것을 봅니다. (박수) 타인의 아픔과 상실을 깨달을 때에, 우리는 이 사랑하는 나라를 만들어 온 전통과 삶의 방식을 존중하면서도, 변화를 위한 도덕적인 선택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낼 수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박수)
The vast majority of Americans -- the majority of gun owners -- want to do something about this.  We see that now.  (Applause.)  And I'm convinced that by acknowledging the pain and loss of others, even as we respect the traditions and ways of life that make up this beloved country -- by making the moral choice to change, we express God’s grace.  (Applause.)

우리는 은혜를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우리는 자격이 없습니다. (박수)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저 주셨습니다. (박수) 어떻게 이 은혜를 받을지는 우리가 결정합니다. 그 은혜에 어떻게 답할지 우리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We don’t earn grace.  We're all sinners.  We don't deserve it.  (Applause.)  But God gives it to us anyway.  (Applause.)  And we choose how to receive it.  It's our decision how to honor it.

누구도 인종 관계를 하룻밤에 변화시킬수 없습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날 때마다 누군가 나서서 인종에 대해 대화를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인종 문제를 정말 많이 얘기했습니다. 지름길은 없습니다. 말은 이제 더 필요 없습니다. (박수) 한줌의 총기 규제 조치로 모든 비극을 막을 수 있을거라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막을 수 없습니다. 선한 뜻을 가진 많은 이들이 다양한 정책의 잇점을 두고 토론을 계속할겁니다. 우리 민주주의가 그것을 요구합니다. 여기 미국은 크고 시끌벅적한 곳입니다. 이 토론의 양쪽에는 다 좋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대안을 찾든, 불완전할 수 밖에 없습니다.
None of us can or should expect a transformation in race relations overnight.  Every time something like this happens, somebody says we have to have a conversation about race.  We talk a lot about race.  There’s no shortcut.  And we don’t need more talk.  (Applause.)  None of us should believe that a handful of gun safety measures will prevent every tragedy.  It will not.  People of goodwill will continue to debate the merits of various policies, as our democracy requires -- this is a big, raucous place, America is.  And there are good people on both sides of these debates.  Whatever solutions we find will necessarily be incomplete.

그러나 우리가 또다시 편리한 침묵 속으로 숨는다면 핀크니 목사가 역설해온 모든 가치를 배반하는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박수) 추모사가 끝나면, TV카메라가 자리를 옮기면, 우리는 우리 사회에 물든 편견의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매번 일상의 일로 돌아갔습니다. (박수) 변화를 더 오래 지속시키기 위해 고된 작업을 함께 하기보다는 상징적인 몸짓에만 머물렀기에 우리는 매번 길을 잃었습니다.
But it would be a betrayal of everything Reverend Pinckney stood for, I believe, if we allowed ourselves to slip into a comfortable silence again.  (Applause.)  Once the eulogies have been delivered, once the TV cameras move on, to go back to business as usual -- that’s what we so often do to avoid uncomfortable truths about the prejudice that still infects our society.  (Applause.)  To settle for symbolic gestures without following up with the hard work of more lasting change -- that’s how we lose our way again.

우리가 다시 오래된 습관에 빠져든다면, 이 가족들이 행한 용서가 헛되게 됩니다. 우리와 의견이 다른 이들이 단지 틀리지만 않고 악하게 됩니다. 우리는 듣는 대신 외치게 됩니다. 우리 자신을 편견과 오래된 냉소 뒤에 숨게 만듭니다.
It would be a refutation of the forgiveness expressed by those families if we merely slipped into old habits, whereby those who disagree with us are not merely wrong but bad; where we shout instead of listen; where we barricade ourselves behind preconceived notions or well-practiced cynicism.

핀크니 목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부에는 역사에 대한 깊은 감사가 있다. 그러나 서로의 역사를 항상 깊이 감사하지는 않았다.” (박수) 남부에서 진실인 것은 미국에도 진실입니다. 고인은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게 될 때 정의가 힘을 얻게 된다고 했습니다. 당신이 자유로울 때 나도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박수) 역사는 불의를 정당화하는 칼이 될 수 없습니다. 진보를 막는 방패도 아닙니다.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 방법을 알려주는 설명서가 되어야 합니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방법 말입니다. 더 나은 세상으로 가는 길입니다. 은혜의 길에는 열린 생각이 필요하다는 것, 더 중요한 것은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고인은 알고 있었습니다.
Reverend Pinckney once said, “Across the South, we have a deep appreciation of history -- we haven’t always had a deep appreciation of each other’s history.”  (Applause.)  What is true in the South is true for America.  Clem understood that justice grows out of recognition of ourselves in each other.  That my liberty depends on you being free, too.  (Applause.)  That history can’t be a sword to justify injustice, or a shield against progress, but must be a manual for how to avoid repeating the mistakes of the past -- how to break the cycle.  A roadway toward a better world.  He knew that the path of grace involves an open mind -- but, more importantly, an open heart.

이것이 제가 이번 주 느낀 것입니다. 열린 마음. 어떤 특별한 정책이나 분석보다도 바로 이것이 지금 필요합니다. 내 친구인 매릴린 로빈슨 작가가 ‘선의의 저수지, 우리가 서로에게 하는 평범한 일들을 넘어서는 다른 종류(의 선의)’라 한 것이 바로 이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That’s what I’ve felt this week -- an open heart.  That, more than any particular policy or analysis, is what’s called upon right now, I think -- what a friend of mine, the writer Marilyn Robinson, calls “that reservoir of goodness, beyond, and of another kind, that we are able to do each other in the ordinary cause of things.”

이 선의의 저수지. 우리가 이 은혜를 찾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가능합니다. (박수) 우리가 이 은혜를 마실 수 있다면, 모든 것이 바뀔 수 있습니다. (박수)
That reservoir of goodness.  If we can find that grace, anything is possible.  (Applause.)  If we can tap that grace, everything can change.  (Applause.)

놀라운 은혜, 어메이징 그레이스.
Amazing grace.  Amazing grace.

(노래)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Begins to sing) -- Amazing grace -- (applause) -- how sweet the sound, that saved a wretch like me; I once was lost, but now I’m found; was blind but now I see.  (Applause.)

클레멘타 핀크니는 그 은혜를 보았습니다.
Clementa Pinckney found that grace.

신씨아 허드는 그 은혜를 보았습니다.
Cynthia Hurd found that grace.

수지 잭슨은 그 은혜를 보았습니다.
Susie Jackson found that grace.

에텔 랜스는 그 은혜를 보았습니다.
Ethel Lance found that grace.

디페인 미들턴닥커는 그 은혜를 보았습니다.
DePayne Middleton-Doctor found that grace.

티완자 샌더스는 그 은혜를 보았습니다.
Tywanza Sanders found that grace.

데니얼 시몬스는 그 은혜를 보았습니다.
Daniel L. Simmons, Sr. found that grace.

셰론다 콜먼싱글톤은 그 은혜를 보았습니다.
Sharonda Coleman-Singleton found that grace.

미라 톰슨은 그 은혜를 보았습니다.
Myra Thompson found that grace.

그들은 자신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이 은혜를 전해주었습니다. 우리 또한 이 고귀하고 특별한 선물의 가치를 보게 되길, 우리의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은혜가 그들을 본향으로 인도하기를. 하나님이 그의 은혜를 미국에 계속 드리우시기를 기도합니다. (박수)
Through the example of their lives, they’ve now passed it on to us.  May we find ourselves worthy of that precious and extraordinary gift, as long as our lives endure.  May grace now lead them home.  May God continue to shed His grace o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pplaus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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