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세계 역사학자들의 공개 서한 -2015년

이 글은 2015년 4월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가 미국 의회에서 합동연설을 한 내용을 두고 일본의 제국주의 과거사 특히 이른바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것을 두고 바른 인식을 촉구한 세계 학자들의 공개 서한이다.

이 서한은 그러나 단순히 일본을 비난하는 차원의 내용이 아니라, 과거 2차대전을 겪은 나라들이 민족주의적인 관점을 벗어나 인류 보편의 평등 인권 생명이라는 가치관에 입각해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로 나아가자고 촉구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촉구는 일본 뿐만 아니라 일제의 피해국가인 한국 중국 등 아시아 국가와 같은 시기 제국주의적인 전쟁에 가담한 다른 서방 국가들에게도 유효하다.

우리가 종군위안부 문제를 대하는 태도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공개 서한의 내용은 이미 알려져 있지만, 언론을 통해 번역해 전달되는 과정에서 역시 국가주의적인 관점에서 제목이나 내용, 단어의 해석이 취사선택될 수 밖에 없는 점이 아쉬워서 좀 더 정확하게 번역해 공유할 필요가 있단 생각이 들었다.

원문은 영어와 함께 일본어판도 있는데, '제국의 위안부'라는 책을 쓴 박유하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일본어 번역을 부분적으로 옮겨 두고 언론(연합뉴스)의 번역이 원문의 취지를 뒤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포스팅은 그런 비판을 극복하기 위한 한 시도이기도 하다.

영어 원문과 함께 가능한한 직역을 한 한국어 번역문을 남겨둔다. 번역은 내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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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N LETTER IN SUPPORT OF HISTORIANS IN JAPAN
일본 역사가들을 지지하는 공개 서한

The undersigned scholars of Japanese studies express our unity with the many
courageous historians in Japan seeking an accurate and just history of World War II in
Asia. Because Japan is a second home as well as a field of research for many of us, we
write with a shared concern for the way that the history of Japan and East Asia is studied and commemorated.

여기에 서명한 일본 연구자들은, 아시아에서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정확하고 공정한 역사를 추구하는 일본의 수많은 용감한 역사가들에게 연대를 표합니다. 우리 중 많은 이들에게 일본은 연구 대상만이 아니라 제2의 고향이기에, 우리는 일본과 동아시아의 역사를 연구하고 추모하는 방식에 공통의 우려를 담아 이 글을 씁니다.

In this important commemorative year, we also write to celebrate seventy years of peace
between Japan and its neighbors. Postwar Japan’s history of democracy, civilian control
of the military, police restraint, and political tolerance, together with contributions to
science and generous aid to other countries, are all things to celebrate as well.

이 중요한 기념의 해에 우리는 또 (전후) 70년간 일본과 이웃 나라들 간에 (지속된) 평화를 축하하며 이 글을 씁니다. 전후 일본 역사에 나타난 민주주의, 군의 문민통제, 경찰력의 억제, 정치적 인내는 과학 발전의 기여와 다른 나라에 대한 관대한 지원과 함께 모두 축하할 일입니다.

Yet problems of historical interpretation pose an impediment to celebrating these
achievements. One of the most divisive historical issues is the so-called “comfort women”
system. This issue has become so distorted by nationalist invective in Japan as well as in
Korea and China that many scholars, along with journalists and politicians, have lost
sight of the fundamental goal of historical inquiry, which should be to understand the
human condition and aspire to improve it.

 그러나 이런 성취를 축하하는 데에 역사 해석의 문제가 걸림돌로 등장합니다. 가장 첨예한 역사적 이슈 중 하나는 이른바 ‘위안부’ 체제입니다. 이 이슈는 한국과 중국 또 일본의 민족주의적인 매도(invective)로 너무나 왜곡돼 언론인·정치인과 많은 학자들까지 역사 연구의 근본적인 목적을 시야에서 놓치는데 이르렀습니다. 그 목적은 인간의 조건을 이해하고 그것의 향상을 염원하는 것입니다.

Exploitation of the suffering of former “comfort women” for nationalist ends in the
countries of the victims makes an international resolution more difficult and further
insults the dignity of the women themselves. Yet denying or trivializing what happened
to them is equally unacceptable. Among the many instances of wartime sexual violence
and military prostitution in the twentieth century, the “comfort women” system was
distinguished by its large scale and systematic management under the military, and by its
exploitation of young, poor, and vulnerable women in areas colonized or occupied by
Japan.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을 피해 국가에서 민족주의적인 목적으로 착취(악용)하는 일이 국제적인 해결을 더 어렵게 하고 더욱이 그 여성들의 존엄을 모독합니다. 또한 이들에게 있었던 일들을 부인하거나 축소하는 것 역시 동일하게 용납할 수 없습니다. 20세기의 수많은 전쟁 중 성폭력과 군의 성매매 사례 중에서도 이 ‘위안부’ 체제는 그 방대한 규모와 군 주도의 체계적인 관리, 그리고 어리고 가난하고 연약한 여성들을 식민지와 점령지에서 착취했다는 점에서 두드러집니다.

There is no easy path to a “correct history.” Much of the archive of the Japanese imperial
military was destroyed. The actions of local procurers who provided women to the
military may never have been recorded. But historians have unearthed numerous
documents demonstrating the military’s involvement in the transfer of women and
oversight of brothels. Important evidence also comes from the testimony of victims.
Although their stories are diverse and affected by the inconsistencies of memory, the
aggregate record they offer is compelling and supported by official documents as well as
by the accounts of soldiers and others.

‘올바른 역사’로 가는데에 쉬운 길은 없습니다. 일본 제국군의 자료 상당수는 파기됐습니다. 군에 여성을 공급한 현지 포주(procurers)의 행태는 어쩌면 기록된 적도 없겠지요. 그러나 역사가들은 수많은 문서를 발굴해 일본군이 여성의 이송이나 위안소 관리에 관여했다는 걸 드러냈습니다. 피해자들의 증언도 중요한 증거입니다. 비록 이 분들의 이야기가 제각각(diverse)이고 일관성 없는 기억에 영향을 받았더라도, 이 분들이 제시한 총체적인 기록은 부인할 수 없으며(compelling) 공식 문서나 병사 또 다른 이들의 증언과 일치(support)합니다.

Historians disagree over the precise number of “comfort women,” which will probably
never be known for certain. Establishing sound estimates of victims is important. But
ultimately, whether the numbers are judged to have been in the tens of thousands or the
hundreds of thousands will not alter the fact of the exploitation carried out throughout the
Japanese empire and its war zones.

역사가들도 ‘위안부’의 정확한 숫자에 대한 견해가 다르고 아마 앞으로도 확인되지 못하겠지요. 희생자 규모의 타당한 추정치를 만드는 일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 숫자가 수만명이었든 수십만명이었든 그런 (성적) 착취가 일본제국과 그 전장에서 실행됐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Some historians also dispute how directly the Japanese military was involved, and
whether women were coerced to become “comfort women.” Yet the evidence makes
clear that large numbers of women were held against their will and subjected to horrific
brutality. Employing legalistic arguments focused on particular terms or isolated
documents to challenge the victims’ testimony both misses the fundamental issue of their
brutalization and ignores the larger context of the inhumane system that exploited them.

일본군이 얼마나 직접적으로 관여했는지, 또 여성들이 ‘위안부’가 되도록 강요 받았는지 일부 역사가들 사이에 이견이 있습니다. 그래도 많은 수의 여성들이 자기 의사에 반해 붙잡혀 끔찍한 야만을 겪게 되었다는 증거는 명백합니다. 희생자들의 증언을 반박하려고 개별적인 문서나 특정한 용어에 초점을 맞춰 법적인 논쟁을 벌이는 행위는 이 분들이 야만적 행위를 당했다는 근본적인 이슈를 보지 못하고 이 분들을 착취한 비인도적 체제라는 더 큰 맥락을 무시하는 겁니다.

Like our colleagues in Japan, we believe that only careful weighing and contextual
evaluation of every trace of the past can produce a just history. Such work must resist
national and gender bias, and be free from government manipulation, censorship, and
private intimidation. We defend the freedom of historical inquiry, and we call upon all
governments to do the same.

일본에 있는 동료들과 같이 우리는 과거의 모든 흔적을 신중하게 저울질하고 당시 상황에 따라 평가해야만 정당한 역사를 세울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작업은 민족이나 젠더에 따른 편견을 배제하고 정부의 조작이나 검열, 개인의 겁박으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합니다. 우리는 역사적 연구의 자유를 옹호하며 모든 정부가 같은 조치를 취하길 요구합니다.

Many countries still struggle to acknowledge past injustices. It took over forty years for
the United States government to compensate Japanese-Americans for their internment
during World War II. The promise of equality for African Americans was not realized in
US law until a century after the abolition of slavery, and the reality of racism remains
ingrained in American society. None of the imperial powers of the nineteenth and
twentieth centuries, including the United States, the European nations, and Japan, can
claim to have sufficiently reckoned with their histories of racism, colonialism, and war,
or with the suffering they inflicted on countless civilians around the world.

많은 나라들이 여전히 과거의 불의를 인정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가 일본계 미국인들을 2차대전 기간 강제 수용한 것을 보상하기까지 40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 약속한 평등이 미국법으로 실현되기까지는 노예제가 폐지되고도 한 세기가 더 걸렸고, 인종차별의 현실은 미국 사회에 뿌리깊이 남아 있습니다. 19세기와 20세기 제국주의 열강 중 미국 유럽 일본을 포함해 어느 나라도 그들의 인종 차별과 식민지배, 전쟁의 역사를 온전히 인정하거나 전세계 수없이 많은 민간인들에게 가한 고통을 인정했다 할 수 있는 나라는 한 곳도 없습니다.

Japan today values the life and rights of every individual, including the most vulnerable.
The Japanese government would not tolerate the exploitation of women in a system like
the military “comfort stations” now, either overseas or at home. Even at the time, some
officials protested on moral grounds. But the wartime regime compelled absolute
sacrifice of the individual to serve the state, causing great suffering to the Japanese
people themselves as well as to other Asians. No one should have to suffer such
conditions again.
오늘날 일본은 가장 연약한 이들을 포함해 모든 개인의 생명과 권리에 가치를 둡니다. 지금의 일본 정부라면 국내외를 막론하고 군 ‘위안소’ 같은 제도로 여성을 착취하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시에도 일부 관료들은 도덕적인 이유로 반대했었습니다. 그러나 전시 정권은 국가에 봉사하기 위해 개인이 절대적으로 희생하도록 강제했고, 다른 아시아인들과 일본인 자신에게도 크나큰 고통을 초래했습니다. 누구도 이런 일을 다시 겪어선 안됩니다.

This year presents an opportunity for the government of Japan to show leadership by
addressing Japan’s history of colonial rule and wartime aggression in both words and
action. In his April address to the US Congress, Prime Minister Abe spoke of the
universal value of human rights, of the importance of human security, and of facing the
suffering that Japan caused other countries. We applaud these sentiments and urge the
Prime Minister to act boldly on all of them.

올해는 일본 정부가 일본의 식민지배 역사와 전쟁 침략을 말과 행동으로 입장을 밝혀 지도력을 보여줄 기회입니다. 아베 총리는 4월 미 의회 합동연설에서 인권의 보편적 가치와 인간 안보의 중요성, 또 일본이 다른 나라에 가한 고통을 직면하는 일을 언급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태도(sentiments)에 찬사를 보내며 총리가 이 모든 사항에 담대한 행동을 취하길 촉구합니다.

The process of acknowledging past wrongs strengthens a democratic society and fosters
cooperation among nations. Since the equal rights and dignity of women lie at the core of
the “comfort women” issue, its resolution would be a historic step toward the equality of
women and men in Japan, East Asia and the world.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는 과정은 민주적인 사회를 더 강하게 만들고 나라들 사이의 협력을 증진합니다. 평등권과 여성의 존엄이 ‘위안부’ 문제의 핵심에 있는 만큼, 그 해결책은 남녀간 평등을 향한 일본과 동아시아, 그리고 전세계의 역사적인 한 걸음이 될 것입니다.

In our classrooms, students from Japan, Korea, China and elsewhere discuss these
difficult issues with mutual respect and probity. Their generation will live with the record
of the past that we bequeath them. To help them build a world free of sexual violence and
human trafficking, and to promote peace and friendship in Asia, we must leave as full
and unbiased an accounting of past wrongs as possible.

우리의 강의실에서는 일본과 한국, 중국 그리고 다른 나라 출신 학생들이 이런 어려운 문제를 서로 존중하며 진실한 가운데 논의합니다. 이 세대는 우리가 물려주는 과거의 기록과 함께 살아가게 됩니다. 이들이 성폭력이나 인신납치가 없는 세상을 만드는 걸 돕기 위해, 또 아시아에서 평화와 우정을 증진하기 위해, 우리는 과거의 잘못에 대해 가능한한 가장 편견 없고 온전한 기록(accountings)을 남겨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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