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테러를 저지른 형제 스토리

지난 4월15일에 미국 보스턴에서 벌어진 테러 사건은 19일 체첸 혈통의 젊은 두 형제가 저지른 사건으로 드러났습니다. 경찰에 쫓기던 두 형제 중 형은 총격전을 벌이다 죽었고, 동생은 한 주택가의 요트에 숨어 있다가 체포됐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왜 미국 사회에서 자라고 공부한 두 젊은이가 그런 폭력을 저질렀는지, 어떻게 이런 공격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는지"라며 의문을 표시했습니다.

비록 러시아에서 이민을 오긴 했지만, 두 형제는 당시 8살과 15살이었고 10년을 미국에서 살았습니다. 왜 이들이 테러리스트가 됐을까요.

도대체 어떤 어둠이 이 형제들을 무고한 시민을 공격하는 폭탄을 장치하게 만들었을까요.

 FBI의 조사가 나오면 더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겠지만, 두 형제의 대략적인 스토리를 뉴욕타임스가 취재해서 소개한 내용을 우선 번역해서 올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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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은 복서, 한명은 레슬러. 한명은 악어신발과 예쁜 셔츠를 좋아했고 다른 한명은 청바지와 단추 달린 셔츠, 티셔츠를 입었다.
아버지가 천사 같은 아이라고 한 동생은 주변에 늘 친구가 있었다. 이 친구들은 동생을 위해 증언할수도 있다고 할 정도로 절친하다.
친구와 가족은, 동생들은 형을 아주 잘 따랐다고 한다. 한 삼촌은 형이 동생에게 (테러를) 강요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 형은 사진가에게 내겐 미국인 친구가 한명도 없어요. 걔들은 도통 모르겠어요라고 말한 적도 있다.
 이미지, 형용사, 일화가 주마등처럼 흐르며 26살의 타멀란 차르나예프와 19살의 조하르 차르나예프를 묘사했다. 이 두 형제는 지난 월요일 보스턴 마라톤대회에 폭발물을 설치해 수백명을 다치고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는 용의자다.
이 형제를 알고 있던 사람이라면 체첸 혈통의 이민자인 이 젊은이들이 왜 무고한 사람들 틈에 폭탄을 장치했는지 차마 물을 수 없다차르나예프 가족은 10여년 전 키르기스스탄에서 미국으로 왔다. 그 과정에 러시아 다게스탄에 잠깐 머물기도 했다. 지난 금요일 아침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다 숨진 형 타멀란은 미국에 올 때 15살이었다. 금요일 밤 체포된 동생 조하르는 그때 겨우 8.
 미국에서 이들은 모든 이민자들에게 익숙한 일을 겪었다. 새로운 문화, 새로운 언어, 새로운 학교와 새로운 친구에 서서히 적응하는 일 말이다.
졸업앨범에서 입술 한쪽을 올린 웃음을 짓고 있는 잘생긴 10대 소년 조하르는 캠브리지 린지&라틴 고교에서 급우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이 학교는 벤 애플렉, 맷 데이먼 같은 이들이 다녔던 명문이다. 한 급우는 댄스파티 때 조하르가 얼마나 우쭐댔는지 기억했다. 검은 턱시도와 붉은 나비넥타이 차림의 조하르는 댄스파티에 참석하기 전에 한 친구 집에서 40명과 사진을 찍었다고 20살의 시에라 슈워르츠는 기억했다.
 “걔도 거기 있어서 행복했고, 사람들도 걔가 거기 있어서 행복했죠. 걔는 괜찮은 아이였고 다들 좋아했어요.”
 레슬링에도 재능이 있어서 보스턴 일대 겨울철 레슬링 리그에 올스타로 선출되기도 했다. 학교의 레슬링 보조교사였넌 피터 패이백(63)씨는 똑똑한 아이였다고 말했다. 2011년 고교를 졸업할 때 조하르는 캠브리지(보스턴 바로 옆의 도시)시청에서 주는 2500달러의 장학금을 받았다. 매년 25~30명만 받는 혜택이었다.
 형 타멀란은 사는게 조금 힘겨웠다. 권투선수가 되고 싶었던 그는 2009년 전국 황금글로브대회에 출전해 젊은 사진가 조하네스 힌의 눈에 띄었다. 힌은 보스턴대학의 보도사진 수업 과제물로 타멀란을 찍어 포토에세이를 제출했다. 이 에세이는 포스턴대학의 잡지 더코멘트에 실렸다. 이 때 타멀란은 가치관이란 것은 없다사람은 자기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존재라고 말한 것으로 에세이는 기록하고 있다.
 두 형제의 아버지 안조르 차르나예프는 1년전쯤 러시아로 돌아갔다. 전화인터뷰에서 그는 형 타멀란이 미국인으로 귀화하고 싶어했다고 말했다. 동생 조하르는 지난해 미국 국적을 취득했지만, 타멀란은 영주권자 신분이었다. 2009년에 있었던 폭력 사건 때문에 국적을 얻지 못했다.
 “여자친구를 살짝 때렸는데, 30분 동안 구금됐다고 아버지는 얘기했다. “사람들이 질투한 것이라고 했다. 타멀란은 나중에 결혼해 아이도 가졌다. 2011년 연방수사국(FBI)가 그를 심문한 적이 있다. 한 외국 정부가 FBI에 타멀란이 극단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지 않은지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라고 한 경찰 관계자는 전했다.
 그래도 조하르는 형을 존경했고 따랐다.
 고교에서 같이 레슬링을 했던 피터 틴(21)은 조하르가 격렬한 운동을 좋아한 것도 형을 닮고 싶어 했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형이 권투선수였기 때문에 자기도 이런 격렬한 운동을 한거죠. 걔는 정말 형을 사랑했고 존경했어요.”
 매사추세츠 주립대 다트머스 캠퍼스에 진학한 조하르는 학업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가 그의 대학성적표를 조사해보니, 많은 수업에서 낙제했다. 3학기 동안 7개 과목에서 낙제했다. 근대화학 원론, 미국정치 입문, 화학, 환경 과목에서 F를 받았다. 조하르는 비판적 글쓰기 과목에서 B, 또 다른 2개 과목에서 D D+를 받았다.
 대학 친구였던 샌(22)은 조하르가 몇몇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다고 말했다고 했다.
 “생각보다 공부가 쉽지 않다고 말했어요. 걔는 정말 똑똑한 얘였지만, 고등학교와 대학은 완전히 달라 적응하는데 어려워했어요.”
 샌은 조하르를 위해 증언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아마 조하르의 친구들은 모두 그럴걸요요.”
 캠브리지에서 조하르는 노르포크 거리의 밝은 갈색의 목재로 만든 3층 집에서 살았다. 형도 자주 보였다. 이 지역은 여러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다. 철물점과 정육점이 브라질 식당과 포르투갈 레스토랑, 카페와 나란히 있다. 이웃 사람들은 그의 아파트에 늘 사람들이 드나들어 누가 거기 살고 누가 단순히 놀러 온 것인지 알기도 어려웠다고 말했다. 가끔 뒤뜰에 단체 모임이 열리기도 했다고 한다. 타멀란은 거기서 윗몸일으키기하는 것을 즐겼다고 이웃들은 전했다.
 워싱턴DC외곽 매릴랜드 몽고메리 빌리지에 살고 있는 삼촌 루슬란 차르니(42)씨는 타멀란이 목요일 큰 삼촌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말했다. “타멀란이 제 형에게 평범함 얘길 하다가 자기가 신을 위해서 어떤 잘못을 저질렀든 용서 받길 바란다고 말했어요. 제 생각엔, 자기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알았던 것 같아요.”
 형제는 소셜미디어를 즐겨 사용했다. 러시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셜미디어인 ‘V콘탁테(In Contact)’에 조하르는 그의 세계관이 이슬람이라고 적었다. 인생에 중요한 것은 직업과 돈이라고도 했다. 좋아하는 그룹에는 체첸과 관련된 모임이 있었다. 체첸은 소련 붕괴 후 독립을 위해 2차례 러시아와 전쟁을 치른 곳이다. 또 코란의 한 구절도 적혀 있었다. “선을 행하라. 알라는 선을 행하는 자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형제의 아버지는 타멀란이 동생을 금요 기도모임에 데려가곤 했다고 말했지만, 동생 조하르가 독실한 무슬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담배를 피다가 몇번 들켰기 때문이다.
 “조하르는 물론 형의 말을 잘 들었죠. 걔는 우리 말도 잘 들었어요.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그래도 걔에겐 걔의 생각이 있죠. 아주 재능이 많았어요. 친절하고 과묵하고 공평하고, 착했어요. 그런 아이가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 건걔가 그럴 얘가 아니에요.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절대로.”
 키르기스스탄에서 차르네예프 가족은 체첸 사람들의 공동체에 속했다. 그 곳의 체첸 공동체는 1943년 스탈린이 체첸 민족이 나치와 협력할까 우려해 강제이주시키면서 형성됐다. 1950년대 스탈린이 사망한 뒤 대부분 체첸으로 돌아갔지만, 남은 사람도 있었다. 타향 살이는 힘들었고 때로는 극단적인 일도 있었다.
 키르기스스탄의 체첸 이주민 대표인 아드넌 자르브라일로프씨는 전화인터뷰에서 차르네예프 가족이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쉬케크에서 40마일 떨어진 토크목의 작은 마을에서 설탕 공장 근처에 살았다고 말했다. 차르네예프 일족은 1년전에 완전히 다 떠났는데, 조르하와 타멀란의 숙모가 변호사일 정도로 인텔리겐차집안이었다고 전했다.
이 형제가 어떻게 끔찍한 테러 행위를 자청했는지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흑백의 폐쇄회로 카메라에 잡힌 영상은 미국 전역에 방송됐다.
소머빌에서 자동차 부품점을 하는 길베르토 주니어씨는 두 형제가 비싼 차를 좋아하긴 했지만 평범한 아이들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보스턴 마라톤 테러가 일어난 다음날인 화요일 조하르가 급하게 찾아와 즉시 몰고 갈 차가 필요하다고 했을 때도 별다르게 여기지 않았다. 흰색 메르세데스 웨건이 아직 수리가 끝나지 않아 범퍼도 미등도 달려있지 않았는데도 상관 없다고 했다.
 조하르는 뭔가에 쫓기는 것 같아 보였다. 손톱을 깨물며 무릎을 떨었다. 주니어씨는 마약에 취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땐 다른 생각은 못했죠. 어떻게 알겠어요. 그냥 좀 초조해하는 것만 알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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