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의 목표가 바뀐다 : 물가안정에서 실업률 낮추기로

교과서에서 말하는 국가의 단기 경제 정책 목표는 3가지입니다.
첫째, 완전 고용 즉 실업률 제로.
둘째, 물가 안정 즉 인플레이션 제로.
셋째, 무역 균형 즉 국제수지 제로.

이 중에서 물가 안정을 맡은 기관이 바로 중앙은행이지요.

화폐를 발행하는 중앙은행은 화폐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물가를 안정시키는 것을 최우선 가치로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연방준비은행에 물가안정과 함께 고용율 촉진을 의무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한국은행법에도 1제1조 제1항에서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통하여 물가안정을 도모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해 놓았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이런 교과서적인 내용까지도 바꿔 쓰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만큼 급하다는 것이기도 하고, 아주 심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습니다.

로이터통신이 20일 중앙은행의 역할이 물가 안정에서 경제 살리기로 바뀌고 있다는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다 아시겠지만 배경을 조금 설명드리자면 이렇습니다.

금융 위기 이후 금융업체를 살리기 위해 미국과 유럽에서는 15년전 한국처럼 엄청난 공적 자금을 투입했습니다.

그런데 시민들이 보기에는 뭔가 이상한 광경이 있습니다.

금융 위기로 금융업체를 살리려고 하는데, 국가의 중앙 금융기관인 중앙은행에서는 이런 자금 투입을 최소화하라고 자꾸만 제동을 거는 겁니다.

중앙은행이 제동을 거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금융회사를 살리려고 돈을 투입하려고 하는데 정작 금융회사들이 저렇게 엉망이니 돈이 나올 곳이 없잖아요? 결국 돈을 새로 찍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돈이 돈이 아니고 자꾸 돈의 가치가 떨어지게 되는거죠. 돈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은, 예를 들어 볼펜 한자루에 1000원 하던 것이 1200원으로 오른다는 것, 즉 물가 상승을 의미합니다.

 물가 상승을 막아야 하는 중앙은행으로서는 당연히 반대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그런데, 지금 물가를 살리는 게 중요합니까, 경제를 살리는게 중요합니까?

 평범한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우선순위가 다른데 중앙은행이 자꾸 딴지를 거는 것처럼 보입니다.

유로존의 그리스와 스페인에서 저렇게 폭동이 일어나는 것도 결국엔 그런 이유입니다.

 지금 나라가 꼴딱꼴딱 하는데 유럽중앙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IMF)에선 자꾸만 이자를 높여라, 채권을 최소한만 발행해라, 이렇게 요구합니다.

 (이자를 높여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사람들이 돈을 아껴 쓰게 되고 그 영향으로 물가가 오르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교과서에 나오는 거죠. ‘물가안정을 위해선 이자율을 높여라.’)

최근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조금 더 설명 드리자면, 중앙은행 입장에서는 화들짝 놀랄 일이 계속 터지고 있습니다.

일본의 차기 총리 아베 신지는 “물가 억제 목표를 1%에서 2%로 높여서 인플레이션을 만들겠다!”“엔화 돈을 무제한으로 찍어서라도 경제를 살리겠다”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당연히 일본은행은 반대했는데, 아베 신지의 자민당이 의회 과반수를 넘는 의석을 차지할 정도로 선거에서 압승했으니 조용히 따르기로 했습니다.

미국, 유럽도 마찬가지 상황이구요, 중국도 여기에 가세하고 있습니다.

이런 배경을 조금 생각하면서 아래의 기사를 읽어 보시죠. 블룸버그의 기사를 편역해 보았습니다.


                                                                                                               

“중앙은행장들이 물가 억제라는 목적을 재고하고 있다”


통화 정책 결정에 미묘한 변화가 주요 국가의 중앙은행장 세대교체와 함께 진행중이다. 세계 경제의 회복세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물가상승을 막아야 한다’는 중앙은행의 오래된 원칙에 도전할 준비를 마쳤다.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이면서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의 차기 총재로 지명된 마크 카니는 지난주 의도했든 아니든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에 관한 논쟁을 촉발시켰다.

지난주 토론토에서 캐나다 중앙은행의 물가에 대한 유연한 접근을 설명하는 연설에서 그는 캐나다 중앙은행이 한때 검토하다 포기한 대안에 관한 생각을 밝혔다. 그러자 이틀 뒤 영국 재무장관과 영란은행의 정책결정자 2명, 그리고 많은 경제학자들이 카니의 언급이 영국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또 중앙은행의 미래에 어떤 의미인지 한마디씩 했다.

 이런 날카로운 반응은 세계의 주요 중앙은행들이 세계 경제 위기 시대에 정책 접근 방식을 바꾸고 있는 점과 이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는 걸 보여준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에서부터 일본은행까지 정책결정자들은 오랫동안 통화 정책의 존재이유였던 물가상승 억제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거나 아주 느슨하게 대응하고 있다. 대신 중앙은행의 존재 이유(raison d'tre)도 아닌 경제성장에 더 강조점을 두고 있다.

Fed에서 일하다 지금은 미국의 자산관리회사 노던 트러스트의 수석이코노미스트로 일하는 칼 타넨바움은 “물가상승률 억제라는 유일한 목표에 노예처럼 메달리던 태도가 많이 완화됐다”고 말했다.

고용을 늘리고 경제성장을 촉진하려고 물가가 급등하는 것을 참아낼 중앙은행은 없다. 정책결정자들 역시 명목 국내총소득(GDP)을 올리기 위해 물가가 오르는 것은 방치하거나 심지어 조장해야 한다는 주장을 대부분 무시해 왔다.

하지만 2008년 닥친 글로벌 금융위기는 중앙은행의 이런 물가 안정 역할만으로는 위험을 막지 못한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정책결정자들, 즉 정부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시장에 쏟아부어야 했고, 이를 위해서는 국민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해야 했다. 금리는 낮추는 것이 더 급했기 때문에, 물가 상승은 금기(anathema)가 될 수 없었다.

미국의 벤 버냉키 Fed 의장은 2조500억 달러를 최근 몇 년간 쏟아 부었다. 고용을 늘리고 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 중앙은행의 2가지 임무 중 오로지 고용 안정에만 집중한 것이다.

그의 접근법은 선임자 앨런 그리스펀과는 정반대다.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장 클로드 트리세에게서 자리를 물려 받은 마리오 드라기도 마찬가지였다. 영국의 머빈 킹을 대신할 카니도 비슷할 것 같다.

미 연준은 지난주 실업률이 6.5%로 낮아질 때까지 이자율을 동결키로 했다. 지난달 미국의 실업률은 7.7%였다. 대신 물가상승률은 2.5%까지는 용인키로 했다. 즉 물가상승률이 2.5%를 넘지 않고 실업률이 6.5%까지 낮아지지 않으면 이자율을 올리지 않겠다는 새로운 원칙을 천명한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이전 그린스펀 의장이나 폴 볼커가 추구한 물가 중심 모델에서 떠났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변화의 정점이었다. 미국인이 일터로 돌아갈 수 있다면 2% 위쪽의 물가도 용인하겠다는 분명한 신호였다. TD증권의 에릭 그린(전 뉴욕 연준 이코노미스트)은 “버냉키가 인플레이션 통제를 느슨하게 했다”며 물가상승률 억제 목표를 1.75%에서 2.5%로 올려 잡은 것이라고 했다.

미국 북쪽 캐나다의 캐나다은행은 오랫동안 2%의 물가상승률 억제 목표를 유지해 왔다. 실제 캐나다의 물가상승률은 연1~3% 안팎이었다. 그러나 올해 47세의 카니는 이전의 캐나다은행 총재들과 달리 ‘유연한 타켓팅’이라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금융 시장과 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물가가 목표치를 벗어나더라도 용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카니는 내년 7월 영국 영란은행 총재로 취임할 예정이다. 파격적인 발탁이다. 이를 위해 카니는 국적을 바꿀 계획이기도 하다.

영란은행의 시장 국장 폴 피셔는 영국이 2% 물가 억제 목표를 바꾸는 데에는 경계심을 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자율에 대한 북미의 장기적 관점을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란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스펜서 데일도 “공짜 점심은 없다”며 중앙은행의 목표에 변화를 주는 것에 경고했다.

하지만 영국 재무장관 조지 오스본은 카니가 논쟁을 시작한 것을 환영한다고 밝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기존 체제를 바꾸려고 한다면, 그래야하는 꽤 강력한 사안을 제기해야 한다”고 그는 의회에 말했다.

오는 7월 카니는 킹을 대신해 영란은행 총재가 된다. 인플레이션 억제의 오랜 중앙은행 임무를 끝가지 지키고 있는 곳 중 하나다. 물론, 인플레이션 억제에서도 성공여부는 엇갈렸지만. 일본은행 시라카와 마사아키 총재, 유럽중앙은행의 트리세 전 총재도 여기에 속한다.


지난해 트리셰 총재의 뒤를 이은 드라기는 ECB의 물가 안정 주문에 집착하는데 조심스러웠다. ECB의 물가 안정 임무는 유럽 연합 협약에 명기돼 있고 독일이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독일은 1920년대 하이퍼 인플레이션의 악몽을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드라기는 올해만 금융분야에 1조 유로 이상을 쏟아 부었다. 게다가 유로존을 지키기 위해선 이 통화권 국가의 채권을 무제한 사들이겠다고 약속했다.

ECB의 강경파였던 악셀 베버와 유에르겐 슈타르크는 채권매입 방침에 반대해 지난해 이미 사임했다. 이들은 재정 정책의 광기 속에 빠져들어 결국 인플레이션 위험을 노출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시라카와가 차기 총재 아베 신조에게서 이전에 없었던 강력한 압력을 받고 있다. 아베는 일본은행의 물가상승률 목표를 1%에서 2%로 높여서 지난 15년간 겪어온 디플레이션과의 싸움에 도움을 받길 원하고 있다.

아베의 자민당은 지난 일요일 선거에서 ‘무제한’ 통화공급 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을 만들겠다고 약속하면서 과반석을 얻었다. 화요일만해도 시라카와 총재는 사석에서 아베의 인플레이션 요구에 침묵을 지켰다고 한다. 일본은행은 목요일 지난 4개월 내 3번째 통화 공급 정책을 실행했다.

일본은행에서 시라카와와 같이 근무했던 칸노 마사아키(JP모건 일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돈 찍어내는 것을 걱정하는 시라카와가 일본은행의 마지막 ‘정상적인’ 총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디플레이션이 없어지길 원하는 사람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고, 일본은행이 물가를 올리기 위해 마술봉이라도 쓰길 바라는 이들도 많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일본에게 남은 마지막 선택은 일본은행이 채권을 더 사들이도록 돈을 찍어내게 하는 것 뿐이다. 대중이 원하는 것이 이것이라면 후임자는 아마도 그 길로 가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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