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제와 포용 -강영안 교수님 해설 강연

배제와 포용 - 8점
미로슬라브 볼프 지음, 박세혁 옮김, 강영안 해설/IVP


미로슬라브 볼프의 '배제와 포용'이 올 여름 IVP에서 나왔다.

이 책은, 크로아티아 출신인 볼프 교수가 스승인 몰트만에게서 "크로아티아인을 학살한 자들을 용서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 답을 찾아가는 신학적 여정이다.

책은 참 재미있는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우리 시대의 고전'이라 할 만 하다. ㅠㅠ

어쨌든 진도가 잘 안 나간다. 한달 넘게 들고 다니며 절반 정도 읽었다.

(번역의 잘못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정말 번역이 잘 돼 있다. 특히 참고도서의 경우 일일이 한국어 번역판이 있는지 확인해 한국어판의 제목과 출판사를 따로 달아주고 있다. 번역 자체도 매우 매끄럽다. 신학 서적 중에 이렇게 말끔한 번역을 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다.)

이 책의 주제에 대해 내가 왜 관심이 있는지는 9월달에 영화 '피에타'를 보고 쓴 나의 포스팅을 참고하시면, 제가 정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읽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우리말 해설을 쓰신 강영안 서강대 교수님이 이 책을 주제로 강연회를 한다고 해서, 갔다. 지난 목요일, 명동 청어람. 주최는 IVP. 신청자가 너무 많아 조기 마감되고 인터넷 생중계를 했을 정도로 미리부터 열기가 뜨거웠다.

가보니... 과연 사람이 꽉 찼는데 대부분 학부생 정도의 젊은이들이었다. 신학자나 적어도 신대원생 정도가 있을 줄 알았는데 뜻밖이었다. 내가 아는 IVF 간사도 와 있었는데 강연을 듣는다기보다는 참석한 학생을 지도한다는 분위기였다...

아마도 참석자들 중 IVF 학생들이 다수였던 것 같다. 이렇게 어려운 신학책을, 그것도 주제 자체가 좀 뭐랄까 화끈하다기보다는 성숙함이 필요한 그런 것인데 젊은 학생들이 몰려왔다는게 뜻밖이었다.

 어쩌면 IVF 학생들이나 이 시대 교회의 젊은이들이 내 편견보다 훨씬 더 성숙하고 진지하고 신학적으로도 굉장한 탐구열을 가지고 있다는 뜻일 수 있겠고, 아니면 이 모임이 IVP의 기획과 IVF의 동원 능력이 합쳐진 이벤트에 더 가깝다는 증거일수도 있겠다는 두가지 생각이 들었다. 기대와 우려가 엇갈렸달까.



강영안 교수님의 강연을 현장에서 듣는 것도 처음이었다. 국민일보에 칼럼을 쓰셨을 때 참 감탄하며 읽었던 기억이 있다. 스스로 국민일보 칼럼니스트와 자문단에서 물러나셨을 때 안타까움이 컸었다.


어쨌든...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날의 행사는 유익하긴 했으나 기대에는 다소 못미쳤다.

강 교수님의 강연은, 이 책의 내용을 요약정리하는 강의였다. 이를테면 학부 수업 강의였다. 그게 나쁘다는게 아니고 내가 기대했던 좀 더 세미나에 가까운 논의가 아니어서 아쉬웠다.

책 내용을 요약해서 전달하시는 능력은 탁월했다. 다양한 신학적 배경 지식을 곁들여 풍부하게 설명하면서도 핵심을 간략하게 정리해 제시하시는 것이 쪽집게 과외 수준이었다.

먼저 미로슬라브의 신학하는 방법은 '모더니즘-포스터모더니즘-성경의 내러티브'로 이어진다고 설명하셨다. 이 것이 미로슬라브의 뛰어난 점이기도 하다. 책을 읽다보면 정의, 권력, 역사 등등 다양한 개념에 대해 모던의 기획자들이 제시했던 개념과 이를 비판한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시각을 적확하게 제시하는데 감탄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양측의 문제의식을 잘 추스려 다시 성경으로 우리의 시선을 되돌린다. 근대와 탈근대의 철학에 매몰되지 않고 이를 다시 성경을 풍부하고 깊게 해석하는 모티브로 활용하면서도 원래 성경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지 찾는 자세를 잃지 않는다. 강영안 교수님을 이를 '대화'-'대결'-'대안'의 신학적 사고라고 정리하셨다.

강영안 교수님은 또 미로슬라브가 '십자가의 자기 비움'을 신학적 사고의 중심에 놓고 있고, 용서와 포용에 대한 성경적 대안과 십자가적 완성의 실현은 종말론적으로 가능한 것이라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요약했다.

미로슬라브는 이런 신학적 태도로 이 책에서 6가지 주제를 다룬다. 배제, 포용, 성정체성의 3가지 개념이 책의 1부를 이루고, 정의, 진실, 평화의 좀 더 실천적인 주제가 책의 2부를 구성한다.

책을 읽지 않은 분들은 이 6가지 주제에 대한 강 교수님의 요약이 제일 궁금할텐데...

서비스로 강 교수님이 요약해주신 내용 중 일부를 다시 정리하자면,

우선 배제는 근대적 개념에서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태도다. 좋은 예가 바로 유엔 혹은 유럽연합이다. 유엔이라는 아이디어는 칸트에게서 나왔는데, 전세계의 연합체를 만든다는 것은 바로 연합체 안에 들어오는 이와 안 들어오는 이의 경계를 만든다는 점에서 배제가 된다. 또 연합체 안에 들어오더라도 그 질서에 들어가는 이와 들어가지 않는 이를 나누게 된다. 한국인이라면, 일제가 '내선일체'라는 이름을 내걸면서 조선인의 정체성을 배제시켰던 일을 생각하면 아주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이를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이를 폭로하고 고발한 것이 바로 파놉티콘의 개념이나 차이-다양성을 그대로 두기를 요구하는 포스트모더니스트의 태도다.

 볼프는 성경이 배제에 대해 이를 인정하거나 방관하지 않고 껴안는 차원으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어차피 배제의 기준이 되는 '정체성'-개인이나 집단의- 자체가 고유하게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을 통해 변하는 가운데 이뤄지는 것이니 정체성을 더 열어 놓고 상대방이 들어오게 하는 것이 근대나 탈근대의 개념과 대립하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요약하다고 쓰고 있는데 어찌 더 어렵게 정리하는 듯하네..ㅠㅠ)

포용은 이 책의 핵심 주제이자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가장 관심이 높은 사안일텐데, 미로슬라브는 '회개-용서-포옹-망각'의 순서로 참다운 포용의 실현 과정을 설명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권력 관계에서 발생한 가해자-피해자의 역사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권력 문제를 빼고 회개 망각 등으로 포용이 가능하다고 하는 것은 현실에서 오히려 부조리를 방관하는 보수적 태도를 합리화시키는 것 아닐까'라는 취지의 질문을 했는데, 나 말고도 그 자리에 참석한 많은 이들이 이 점을 궁금해하고 이 대목에 집중적으로 질문을 했다.

돌아온 답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강 교수님은 '회개가 먼저 이뤄져야 그 뒤의 용서 - 포옹 - 망각 이 가능하다는 것이 볼프의 시각'이라고 설명했다.  내가 읽은 볼프와는 다른 설명이었다. 볼프는 이 책 189쪽의 주석에서 "회개와 용서 사이에 반드시 시간적인 순서가 존재한다는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먼저 회개를 하고 나서 용서해주거나 용서를 받는다는 말이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이 책 전체(아니, 아직 다 읽지 않았으니까 적어도 전반부)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이유는 볼프 자신이 회개 없는 용서가 가능한지, 혹은 가해자만 회개와 용서의 대상이 아니라 피해자까지도 회개하고 용서 받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계속 질문하며 그 답을 찾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어려운 문제에 신학적 답을 내리기 위해 그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세계를 여행하고 성경 속을 순례하며 고뇌한다. 그러면서 조심스레 자신의 생각을 차근차근 늘어놓는다.

그런데 강 교수님의 설명은 그런 긴장을 깨버리고 애초의 문제의식 - 가해자를 어떻게 용서할 것인가-을 다시 평범한 도식-용서를 빌면 용서한다-으로 되돌려 버렸다.

사실은 여기에서부터 다양한 논의가 시작되고 볼프의 진술을 다각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것인데, 이 지점을 간단한 도식으로 정리해버리니 긴장은 사라지고 안개는 걷히고 밝은 태양 아래 회개와 용서의 도식이 촤르륵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으로 끝나버렸다.

그래서 이 강연은, 이 책을 더 읽고 싶은 마음마저 식어버리게 만들었다.

ㅠㅠ

슬픈 결론이다.

그래도 기쁜 것은, 한국 교회 안에(어쩌면 IVF 안에?) 이 책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고, 이는 당연히 이 책이 말하는 용서와 포옹(껴안기)을 바라는 종말론적 열망도 그만큼 우리 안에 달아오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용서와 화해에 관한 몇권의 책을 찾아 (구비해) 놓았는데, 그 중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투투주교가 쓴 '용서 없이 미래 없다'는 책이 가장 현실감 있는 책이었고 '용서'라는 제목으로 나온 일련의 다른 책들은 조금은 지루했다. 아나뱁티스트 쪽에서 나온 평화에 관한 책이 이 주제를 아주 진지하게 다루는데, 읽어볼만하지만 뚜렷한 답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미로슬라브 볼프는 용서와 화해가 결국엔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것이어서 종말론적인 자세로 하나님께 맡겨두어야 한다고 하면서, 지금 이 시간을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하나님께 맡기면서도 이를 실현해가는 '미완의 포용', 어찌보면 시지프스의 형벌과 같은 그런 태도로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내가 읽기로는.

그런 것이, 종교적 구도적 태도를 먼저 가진 사람 외에 대중-심지어 기독교인들 대다수를 포함해-에게 설득력이 있을까?

원래, 용서란 것은 그렇게 매력이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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