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다리를 불태우다.

안철수씨가 출마선언 하면서 "다리를 불살랐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니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돌아갈 길을 막아버린 2가지 이야기가 떠올랐다.

첫째는 그 유명한 '배수진'이 나오는 항우의 이야기다.

진나라를 치기 위해 직접 출병한 항우는 강을 건넌 뒤 배를 가라앉히라고 명령한다. 병사들에겐 3일치의 식량을 나눠주고 솥단지마저 깨버린다.

더 이상 돌아갈 수 없고 앞으로 나갈 수 밖에 없게된 병사들은 목숨을 걸고 싸워 결국 승리한다.

두번째는 배수진 못지 않게 유명한 '파촉 잔도' 이야기다.

항우의 위세에 쫓기다시피 사방이 막힌 서쪽 파촉 땅으로 떠나는 유방은, 파촉으로 가면서 자신이 돌아갈 길인 잔도, 즉 절벽에 놓인 좁은 길을 불태워버린다. '다시 중원으로 나오지 않고 파촉에서 잘먹고 잘살겠다'는 표시였다. 항우는 "유방이 나를 두려워해 잔도를 태워버렸구나"하며 껄껄 웃었다. 유방이 노린 것은 바로 그 것, 항우를 방심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유방은 그러나 험한 진령산맥을 넘어 중원으로 진출해 허를 찔렀다.

안철수가 의미한 '다리를 불살랐다'가 위에 나오는 두 이야기와 관련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중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뜻 '다리를 불살랐다'고 하면 배수진을 치고 싸운다, 즉 단일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대선을 완주하겠다는 의미로 들린다.

하지만 파촉으로 갔던 유방이 그러했듯이 오히려 더욱 강력한 쇼맨십이라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써놓고 보니 아는 채 잔뜩 해놓고선 결론은 참 평범하네.

어쨌든, 출마선언을 하면서 SF작가 윌리엄 깁슨까지 인용("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있지 않을 뿐이다")했던 안철수가 사기나 초한지를 모르고 '다리를 불태웠다'는 얘기를 한 것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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