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는 박정희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룬 경제성장. 이것 때문에 그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그런데 나는 근래들어 그를 칭송하는 목소리가 왜인지 역겨워졌다.

 그가 죽은지 30년주기가 되면서, 그의 '리더십'과 '비전'을 돌아봐야 한다는 주장이 도하 각 신문에 대서특필되고 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전두환이가 박정희를 "부정축재자"로 내몰았던 사실은 애써 외면하고 "좌파 정권 10년이 그를 폄하했다"고 외치면서 박정희의 이미지를 개선하려고 한다.

빤히 속이 보이는 정치놀음이다.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이뤄져야 할텐데, 이미지 조작을 통한 정치적 감성의 확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무려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게 박정희의 이미지는 아버지였다. 답답한 점도 있고 고리타분하기도 하지만 우리를 '멕여' 살리며 험한 시절을 함께 견뎠다는 것으로 미워할 수 없는.  

조선일보에 자주 글을 쓰시는 박완서 선생님께서 언젠가 박정희에 대해 말씀한 적이 있다. 그 분은 박정희 시대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는데, 가난에서 벗어난 시대이긴 했지만 사람을 고문하고 납치하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정권이기에 그렇다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반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박정희 재평가의 결정판이었던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국방부가 이 책을 불온도서로 지정한 것은 여러모로 나쁜 선택이었다)도 그같은 맥락에서 박정희의 유산을 적극적으로 평가했다.

2차대전 이후 출발한 아시아와 중남미, 아프리카의 신생독립국들 중에 여러모로 최악의 환경에 있었던 한국이 선발주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선진국이나 국제기구의 제안과 다르게 중공업과 산업인프라에 투자하고 수출 위주의 보호무역 정책을 선택했기 때문이라며 지금도 그같은 경제정책이 필요하다고 장하준 교수는 주장했다.

박정희에 대한 나의 감성은 박완서보다는 장하준에 가까웠다. 아무래도 내가 유신시절의 엄혹함을 겪지는 못했고 경제성장의 단열매만 따먹은 세대이다보니 그랬을 것이다.

박정희에 대한 이런 감성이 조금 바뀐 것은, 유재현이란 분이 쓴 책 '아시아의 오늘을 걷다'와 '아시아의 기억을 걷다'라는 두권의 책 때문이다.


여행서적인 줄 알고 집어들었는데 뜻밖으로 진지한 아시아 현대사 르포물이었다.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일본 등을 돌며 2차대전 이후 아시아가 걸어온 길을 현장감 있게 서술하고 있다.

이분은 특히 아시아의 독재자들과 그런 독재를 용인한 아시아의 풍토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정권 유지를 위해 정치적 선동과 부정부패는 물론이고, 납치 살해 폭동선동까지 서슴지 않은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한 것이 바로 박정희였다. 납치... 살해... 선동... 이런 일을 마치 코풀듯 해치운 정권이 바로 유신 정권 아니었던가? 그런 세상에서 우리의 진짜 아버지와 어머니, 형과 누나들은 얼마나 숨죽여 살았왔는가.

심지어 일본에서 김대중을 납치하고, 파리에서 김형욱을 살해했다. 그 시절에 이뤄진 조작과 억지재판은 아직도 실체가 다 밝혀지지 않았을 정도다. 그뿐인가. 훨씬 더 많은 수의 학생들은 어둠컴컴한 지하실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막걸리 마시며 나랏님 탓하다 끌려간 경우도 부지기수였다고 하지 않는가. 박정희 정권은 그렇게 유지된 권력이었다.

필리핀 국민들이 만약 마르코스와 이멜다를 "화려하고 멋진 필리핀을 만들어 오늘날 관광산업의 기초를 놓은 지도자"라고 칭송하며 그의 부정축재와 국민들의 항거를 망각하고 있다면 얼마나 우습겠나.

캄보디아 신문들이 자본주의화 이후 겪고 있는 빈곤에 지쳐 폴포트 시절이 좋았다는 사설을 쓴다면 얼만나 한심하겠나.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박정희를 그토록 미워하고 비난했던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가 됐다.

물론, 그 시절을 다 부정할 수는 없다.

 새마을운동만해도, 유재현씨 같은 분은 국민을 동원하기 위한 선동으로 평가했고, 어떤 이들은 무분별한 전통문화 파괴행위였다고 쓰기도 했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모든 사람들이 초가집에 아궁이 불 때며 우물물 퍼먹고 사는 것보다는 비록 좀 삭막해보이긴해도 시멘트 '보로꾸'로 만든 슬레이트집에서 수돗물로 밥짓는게 더 낫지 않겠는가.

미국 일본에서 온 돈을 중공업에 투자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고, 수출 주도 성장을 이끈 것도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은 돼지가 아니지 않은가. 더더욱이, 그 시절의 경제적 성과라는 것도 우리 부모님, 삼촌, 형과 누나들이 불빛 깜박이는 공장에서, 총알 날리는 월남 전장에서, 독일의 지하 10km 탄광에서 퍼올린 것이 아닌가.

이런 일들을 신화화하고 일방적으로 미화하는 것은 '재평가'가 아니라 지극히 후진국적인 '정치적 선동'일 뿐이다. 그 시절의 부정적인 유산 중 극복해야할 것을 극복하지 못한 것은 지적하고, 이어받아 살려야 할 것이 있다면 좀 더 후하게 평가해야할 일인데, "박정희를 되찾자"는 식으로 떠드는 것은 정치적 의도가 뻔하지 않은가. 그래서 역겹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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