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009의 게시물 표시

내가 보는 박정희

이미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룬 경제성장. 이것 때문에 그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그런데 나는 근래들어 그를 칭송하는 목소리가 왜인지 역겨워졌다.
 그가 죽은지 30년주기가 되면서, 그의 '리더십'과 '비전'을 돌아봐야 한다는 주장이 도하 각 신문에 대서특필되고 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전두환이가 박정희를 "부정축재자"로 내몰았던 사실은 애써 외면하고 "좌파 정권 10년이 그를 폄하했다"고 외치면서 박정희의 이미지를 개선하려고 한다.
빤히 속이 보이는 정치놀음이다.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이뤄져야 할텐데, 이미지 조작을 통한 정치적 감성의 확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무려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게 박정희의 이미지는 아버지였다. 답답한 점도 있고 고리타분하기도 하지만 우리를 '멕여' 살리며 험한 시절을 함께 견뎠다는 것으로 미워할 수 없는.  
조선일보에 자주 글을 쓰시는 박완서 선생님께서 언젠가 박정희에 대해 말씀한 적이 있다. 그 분은 박정희 시대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는데, 가난에서 벗어난 시대이긴 했지만 사람을 고문하고 납치하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정권이기에 그렇다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반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박정희 재평가의 결정판이었던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국방부가 이 책을 불온도서로 지정한 것은 여러모로 나쁜 선택이었다)도 그같은 맥락에서 박정희의 유산을 적극적으로 평가했다.
2차대전 이후 출발한 아시아와 중남미, 아프리카의 신생독립국들 중에 여러모로 최악의 환경에 있었던 한국이 선발주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선진국이나 국제기구의 제안과 다르게 중공업과 산업인프라에 투자하고 수출 위주의 보호무역 정책을 선택했기 때문이라며 지금도 그같은 경제정책이 필요하다고 장하준 교수는 주장했다.
박정희에 대한 나의 감성은 박완서보다는 장하준에 가까웠다. 아무래도 내가 유신시절의 엄혹함을 겪지는 못했고 경제성장의 단열매만 따먹은 세…

불고기도 일본에 뺏기나?

"日 야키니쿠, 불고기보다 세계화 앞서"미디어다음 2009.10.13 (화) 오전 7:21 젊은 사람들은 야키니쿠가 원래 한국 음식이라는 것을 잘 모를 정도"라면서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고 가정이나...아사쿠라 교수에 따르면 일본에서 야키니쿠의 시작은 2차대전 후였다. 재일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이 먹지 않던 내장을 구워..http://media.daum.net/culture/others/view.html?cateid=1026&newsid=20091013072103824&p=yonhap일본 학자가, 불고기라는 말도 야키니쿠에서 왔다고 주장한다.이노무 자슥들!!

이것이 선진금융기법?

오늘 아침 한 경제신문의 기사 :
ELS투자자들, 1분만에 천당서 지옥으로http://media.daum.net/economic/stock/others/view.html?cateid=100035&newsid=20091012094010345&p=ned&t__nil_economy=uptxt&nil_id=1


10년전, IMF사태가 터지고 은행이 왕창 무너지던 그 때.
이른바 '경제 전문가'라는 사람들, '외국인 투자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선진 금융기법을 도입하면 외국 자본이 들어오고 한국 경제는 안정될 것이다."
코스닥 버블로 뛰어올랐던 주가가 다시 폭락에 폭락을 거듭하자, 이런 주장은 매일 신문 1면과 경제면을 장식했다.
"대마불사의 신화를 버려라. 가망 없는 기업은 과감히 문을 닫아라. 선진 금융기법을 도입하라."
많은 은행들이 외국계 자본에 팔려갔고, 더 많은 은행들이 문을 닫았다. 모두가, '경제 안정'을 위해 '선진 금융기법'을 도입하기 위한 고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선진금융기법이란 것이, 기업 대출은 안 하고 이자 비싸게 무는 소비자 신용대출 왕창 늘려 신용불량자 양산하고, '수익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고수익을 약속한다'는 이상한 상품을 팔아제끼고는 이렇게 '눈 뜨고 코 베어 가는' 짓을 하는 것이었나?
여유자금을 모아 생산자본으로 투입해 수익을 골고루 나눠준다는 금융기관의 기본 원칙은 사라지고, 이제는 은행도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투전판이 되어버린 것이 선진금융기법인가?
에휴..

남아공 도시 빈민 연구 - 케이프타운의 사례

이미지
세계가 100명의 마을이라면, 51명은 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도시 인구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중 3분의1은 과거 우리의 판자집과 같은 빈민촌에 살고 있습니다.
 아프리카나 남미, 아시아에서는 도시빈민의 비율이 3분의2로 역전됩니다. 도시에 따라서는 90% 이상이 빈민인 지역도 있습니다.
 이같은 문제는 2006년 UN-HABITAT의 보고서 ‘Challenge of Slum’을 통해 알려졌으며, UN-HABITAT는 2020년까지 도시빈민 1억명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고자하는  ‘UN 새천년 개발 목표(the Millennium Development Goal)’를 정하고 추진중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1994년 역사적인 선거를 통해 인종차별정책(Apartheid 아프리칸스어로 분리,격리를 의미)을 철폐했지만, 대부분의 흑인들은 여전히 도시 외곽의 슬럼가에서 가난하게 살아갑니다.
 남아공에서 슬럼이 형성되고 확산된 역사는 아파르트헤이트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1913년 백인정부는 토지법을 도입해 흑인을 자신들이 거주지에서 추방했습니다. 쫓겨난 이들은 도시 외곽에 판자와 양철, 심지어 종이상자로 집을 지었습니다.
 아파르트헤이트 정부의 수도였던 케이프타운에서도 ‘공공질서와 보건’을 이유로 이같은 조치사 시행됐습니다. 쫓겨난 사람들은 해변가 모래밭 위에 판자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슬럼은 시간이 갈수록 더 커졌습니다. 농촌과 이웃 나라에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 도시로 도시로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에겐 슬럼 외에 다른 대안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곳을 ‘타운십(Township)’이라고 불렀습니다.
 백인들은 1924년 슬럼법을 제정해 정부가 마음대로 슬럼 지역을 쓸어내고 개발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 타운십을 도시와 분리하기 위해 철길과 도로를 놓았습니다. 타운십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한가운데로 도로를 놓기도 했습니다.
 1950년대에 제정된 ‘불법 이주 노동자 체포법’ ‘불법 점유 금지법’ 등이 시행되면서 타운십 철거가 시작됐습니다…

브라질 도시 빈민 연구 - 상파울루의 사례

이미지
19세기중반까지만해도 상파울로는 브라질의 커피를 배에 실어 보내는 작은 무역 도시였다. 20세기 들어와 도시는 사회계층적으로 분리됐다. 부유층은 중심지의 고지대에 살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철길을 따라 강변에 살았다. 비가 오면 빗물이 넘치는 지역이었다.
 193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도시화가 급격히 이뤄졌다. 농촌 지역에서 온 사람들은 빈터라면 아무 곳에나 판자집을 짓고 살았다. 1960년대에는 군부정권이 리우데자네이루에서 14만명을 내쫓는 등 판자촌을 강제철거하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1971년에는 상파울로 도시 마스터플랜이 처음으로 시행됐지만 파벨라가 형성된 도시 주변부는 계획에서 제외됐다.
 ‘부유한 도심-가난한 주변부’라는 패턴은 1970년대 말에 변화하기 시작했다. 도시 전역에서 가난한 이주민이 늘어났다. 1980년대의 ‘잃어버린 10년’ 동안 도시 주변부에는 파벨라(favelas)라는 판자촌이 커졌고, 도심에서는 코르티수(corticos)라는 단칸 셋방이 등장했다.

 파벨라 : 판자 깡통 심지어는 종이상자로 만들어진 판자집. 불법 점유지에 자기 집을 지은 형태다. 사회 경제 위생 교육 등 복잡한 도시 문제의 집합체.
코르티수 : 다가족 집단 거주지로, 도시 공터에 지어진 건물들이다. 주로 도심에 있으며 세입자들이 좁은 공간을 나눠쓴다. 한 집을 여러명이 임대해 시간대별로 거주하는 경우도 있다.

 코르티수는 1980년대 초 파벨라가 급속도로 증가하기 전까지 상파울로의 대표적인 슬럼 형태였다. 코르티수 가운데 절반은 애초부터 임대용으로 지어진 것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도시 중산층이 쓰다 버린 건물이었다.
 80년대 브라질에서는 거대도시 중심부의 인구가 줄어들면서 공동화 현상이 벌어졌다. 도시 주변부는 전체 도시성장률의 2배가 넘게 성장했지만, 상파울로의 경우 공업도시에서 서비스 상업 도시로 변모하면서 사회계층이 분화됐고 빈부격차가 급격하게 벌어졌다. 이런 과정 속에서 파벨라는 계속 늘어나고 있고, 소유형태도 변화하고 있다. 파벨라는 도시 주변부를 넘어 도시 전역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