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는 가짜다


499145b3d6a58

이미지출처 : danbisw.tistory.com


맞다. 바로 그 책 얘기다.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책 ‘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내가 이 책을 읽은 것은 대학시절 누나의 리포트를 대신 써주기 위해서였다. 나도 이 책에 호감을 가지고 있었고, 읽고 싶었던 차였다. 누나가 책값을 대주기로 하고 내가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주기로 했다.

 

책을 읽고 나서 내 느낌은..

 

"이건 얼치기, 가짜다."

 

였다.

 

왜 내가 그런 생각을 했는지 그 얘기는 좀 뒤에 하기로 하고, 먼저 얘기하고 싶은 건 2007년 겨울에 배달돼 온 교보문고의 ‘사람과 책’이란 잡지에 실린 최성일 출판칼럼리스트의 글을 읽으면서 10여년 전 나의 판단이 맞았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유감스런 <<오래된 미래>>'라는 제목의 글은, 환경 분야의 고전이 된 이 책이 최근 녹색평론사에서 중앙북스로 판권이 넘어가 다시 출간됐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헬레나 노르베리-호지가 '진보와 운동을 가장한 떠벌이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이건 정말이지 배은망덩이 유분수다.

 

 앞으로 잡지 '녹색평론'의 원활한 간행에 해를 끼칠 지 모른다는 얘기를 듣고선 화가 치밀었다.

 

 누구 덕에 우리나라에 알려졌는데, 곱게 만들어진 책이 잘 팔리는데, 칙사 대접 받아가며 강연까지 했는데 말이다."

 

 

최성일씨는, 헬레나 노르베리-호지가 신의를 저버리고 출판사를 옮긴 것이, 표면적으로는 번역의 문제 때문이었지만 이 책의 번역은 아주 훌륭하고, 숨은 이유는 금전 문제인게 유력하다고 전하고 있다.

 

"나는 목돈을 들일만한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어떤 '구매'에 관해 들었으나 인신공격이 될 수 있으므로 그 용처는 밝히지 않겠다.

 

 그래도 그녀가 백인 유한마담의 속성을 지녔다는, 내가 그녀를 직접 본 느낌은 숨기지 않으련다."

 

 

이 책 '오래된 미래'는 녹색평론사에서 출간돼 아주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 환경분야의 고전으로 읽혔다. 내가 아는 한 후배는 이 책을 읽고 반해서 녹색평론의 독자가 되었을 정도였다.

이 책이 처음 나온 것은 90년대 초반이었다. 처음 나왔을 때부터 센세이셔널했다. 당시만해도 아직 환경문제나 문명의 한계 같은 문제에 대해선 진보진영에서도 크게 문제의식을 갖지 못했을 때였다. (환경운동의 시조 격인 책 `침묵의 봄'이 한국에 번역된게 언제인지 아는가?)

 

자본주의의 대안은 사회주의,라고만 생각했던 이들이 이 책을 통해 새로운 대안에 눈떴다. 라다크라는 작은 나라의 사례를 소설처럼 술술 풀어놓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은, 새로운 대안은 아마도 사회 구조를 바꾸는 거창한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을 뒤바꾸는 일에서부터 시작돼야할 것 같다는 생각을 불어넣어줬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처음 읽으면서 '이건 아닌데'하는 느낌을 받았다.

 

이 책은 인도 북부의 라다크라는 작은 마을이 서구식 개발 속에서 환경이 파괴되고 사회적으로 분열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과연 경제적 합리성과 물질적 풍요가 전부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거기까지는 좋다. 그런데 저자인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결론이 아주 엉뚱하다.

 

그녀의 결론은, 지금 이 책이 없어서 직접 인용하긴 어렵지만, 기억을 더듬으면 대충 이렇다 : 만약 라다크 사람들에게도 전등과 같은 문명의 혜택이 필요하다면,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을 정도로, 전등만 겨우 킬 정도의 개발에 머물러야한다. 차가 씽씽 달릴 도로를 닦기보다 자전거가 다니기 좋은 길을 내는 정도로 만족해야한다. 라다크가 수천년동안 유지해온 마을의 풍경과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그대로 유지해나가야한다."

 

아스팔트 도로가 없는 마을에서 살아본 사람이라면, 전기가 없는 마을에서 살아본 사람이라면, 이 사람의 말이 얼마나 허구적인지 단박에 알수 있다. 그녀가 얘기하는 라다크의 대안은, 서구 환경운동가들의 눈과 마음을 만족시키기 위해 라다크의 주민들을 저개발과 낮은 생활수준에 묶어둬야한다는 말일 뿐이다.

 

만약 한국의 시골 마을을,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말대로 만들어보자. 환경을 지키는 전통적인 생활방식 - 아마도 소를 두고 논농사를 짓는 마을로 상정하면 좋겠다 - 을 지키기 위해 그 집엔 냉장고도 세탁기도 두지 말아야한다. 텔레비전은 가끔 '환경친화적인 최신 영농방식'을 배우기 위해 켜야할 뿐이다. 가끔 전등불을 키는 것으로 만족해야한다. 상수도 하수도의 개념도 생각하지 말아야한다. 상수도관을 깔기 위해, 저수지부터 시작해서 얼마나 많은 환경이 파괴되는가. 우물을 파라.

 

외부세계와의 교류? 가능하다. 자전거를 타고 2시간쯤 걸려 읍내로 나가면 작은 시장이 있고, 거기서 하루에 두번쯤 운행하는 시외버스를 타면 공항이 있는 더 큰 도시로 갈 수 있다.

 

그러나 결코, 전통적인 삶의 방식이 그대로 살아 숨쉬는 당신의 마을을 떠나선 안된다. 아무리 불편해도 그곳에 현대문명을 마구 들여와선 안된다. 왜? 그것이 환경친화적인 삶이니까. 미래에는 모든 인류가 그런 방식 속에 녹아있는 지혜를 구하게 될테니까.

 

그렇다며 헬레나 노르베리-호지는 어디에 사는가?

 

그녀는 "스웨덴과 독일, 오스트리아, 영국, 미국을 오가며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인터넷 교보의 저자 소개) 라다크 관련 재단을 만들고, 관련 영화를 만들고, 강연을 하러 다닌다.

 

자신은 현대문명의 이기를 확실히 이용할 뿐만 아니라, 라다크의 경험을 팔아서 자신의 삶을 꾸리고 있다.

 

왜 자신은 문명의 혜택을 거부하고 제한적으로 이용하면서 환경친화적인 삶을 사는 지혜로운 인생을 선택하지 않았는가?

 

라다크의 불쌍한 주민들에게는 그걸 강요하면서.

 

나는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결론에 결코 동의할수 없었다.

 

환경친화적인 라이프 스타일이 필요하고, 자본주의 이전의 오래된 생활 방식 속에서 그 지혜를 빌려와야한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그것이 결코 헬레나 스러운 허황되고 박제화되고 남에게 고통을 강요하는 방식이 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어떤 점에서 그건 서구 환경운동가의 지적인 허영일 뿐이었다.

 

내 결론이 틀리지 않았음을, 최성일씨의 글을 읽으면서 다시 확인할수 있었다.

 

노르베리-호지씨는, 자신의 책을 국내에 알리고 초청해준 출판사, 환경관련 무크지를 펴내면서 오랫동안 환경운동을 펼쳐온 그 출판사를 저버리고 자신이 그토록 비판했던 최첨단 자본주의 문명의 혜택을 받은 재벌 계열의 출판사로 말을 옮겨탔다. 출판사를 옮기는 일 정도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녀는 겉으론 번역의 문제를 제기했지만 속내는 돈이었다. 그의 정체는 결국 '탐욕스런 환경운동가'였던 것이다.  

 

최성일씨는 그의 글을 이렇게 끝맺었다.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오래된 미래>>는 '우리시대의 환경고전' 목록에서 퇴출시켜야 마땅합니다."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세월호 7시간, 박근혜 청와대의 거짓말

아래한글로 전자책 만들기 hwp2epub

“저도 노래 잘하는 사람이 부러워요” 테너 박현재 서울대 교수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