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신학생, 병역거부 선언

연세대 신학생이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연세대 신학과 03학번인 하동기씨는 7일 병무청에 병역거부를 통지하고, 13일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의 소견을 밝힐 예정이다.

그는 2006년 평택 대추리에서 미군기지 이전 반대 활동을 하면서 군인과 전경이 자신의 터전을 지키려는 주민과 학생에게 너무도 당연하게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고 병역거부를 결심했다고 한다.

국방부는 병역거부자들을 위해 대체복무 도입을 추진하다 지난해 연말 여론조사 결과를 이유로 무기한 연기한 상태다. 하씨의 병역거부 선언으로 대체복무 도입 논의가 다시 이뤄질지 주목된다.

현재 우리나라의 병역거부자는 450명을 넘었다.

 

하씨의 병역거부 소견과, 주변인들의 지지글, 병역거부연대회의의 성명을 차례로 소개한다.

 

<병역거부 소견서 - 예수의 걸음을 따라>

선언

어떠한 전쟁도 사람을 살릴 수 없습니다. 어떤 목적을 가진 전쟁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사랑의 표현이 될 수 없습니다. 누군가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전쟁을, 혹은 평화를 얻기 위한 전쟁을 주장하지만 어떠한 전쟁도 모든 사람을 지킬 수 없으며, 어떠한 전쟁도 진정한 평화를 보장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전쟁에 반대합니다.

만남

2005년에 인권위원회에서 국방부와 국회에 대체복무제를 인정하라고 권고했을 때, 가장 크게 반발한 단체 중 하나가 ‘한국기독교총연합회’라는 개신교 조직이었습니다. 저는 이 단체의 주장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만난 예수께서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을 원하셨는데, 이 단체는 적을 상정하고 그들을 찌르고 쏘는 훈련을 통해 이웃 사랑이 아닌 이웃 파괴를 자행하는 군대에 갈 수 없다는 사람들의 신념을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전 이 이야기가 예수의 삶을 따르노라고 목이 터져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하고 나서야 ‘양심적 병역거부자’라고 불리는 이들의 주장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입장을 지지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현실

그때부터 시작된 병역거부에 대한 고민은 2006년 미군기지 확장을 위해서 주민들의 토지를 강제로 수용하던 평택에 갔을 때 제게도 현실화되었습니다. 고통 받는 현실 속에 놓인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것이라고 믿으며 찾았던 평택의 땅에서 만난 것은 국가의 권력이라는 것, 그리고 군사력이라는 것이 사람들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하는지 알게 한 사건이었습니다. 그곳에 있던 군인들과 경찰들의 눈빛은 분노와 증오의 감정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그 자리를 지키고자 했던 나를 분노의 눈길로 쳐다보던 몇몇 경찰들이 꼭 내 친구인 것 같았고, 내 선후배인 것 같았습니다. 그들이 내뿜는 분노의 기운은 결코 그들의 성품에서 기인하지 않았습니다. 국가라는 이름, 혹은 권력이라는 이름은 그들을 강제로 자신들의 세력에 편입시켜 그들로 하여금 폭력을 행사하게 하고 그 폭력이 정당하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스무 살 남짓의 청년들을 일선에 내세우고 그들의 뒤에 선 간부급의 사람은 “X소대, 너희 동료가 맞고 있다. 가만히 보고만 있을 건가!” 라며 폭력을 선동했습니다. 그들에게 맞선 사람들은 총칼도 들고 있지 않은, 그저 여기에 사는 주민들이 쫓겨나야 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 주민들을 쫓아내지 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일 뿐인데도 이들을 때려잡지 못해 안달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흥분한 전경들은 돌을 던져 창문을 깼고, 그 돌은 제 머리 바로 위에 날아와 벽을 때렸습니다. 누군가는 방패에 맞아서, 누군가는 돌에 맞아서, 누군가는 곤봉에 맞아서 피를 흘리며 그 자리를 벗어났습니다. 내 친구와 같은, 내 선후배와 같은 전경들도 흥분한 시위대의 폭력에 피를 흘리며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 작은 전쟁을 경험하면서 폭력의 사용을 강제하는 국가의 요구에 응답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고백

교회라는 공간에서 목사님의 설교를 이해할 수 있게 된 초등학교 4학년 시절부터 저의 꿈은 ‘목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에 더욱 열심히 출석했고, 성경도 열심히 읽었으며, 예수님과 닮은 삶을 살 수 있기를 항상 기도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신학’을 공부하는 곳에 입학을 했고, 신학을 배우면서 예수님을 닮아가려면 ‘어떻게’ 살아야할까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신학을 공부하면서, 성경을 읽으면서 만난 예수님께서 제게 항상 하셨던 말씀은 ‘이웃을 사랑하라’ 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웃에 대한 사랑은 그저 곁에 다가가 사랑한다고 속삭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헐벗고 고통 받는 이웃에게 다가가 그와 함께 있으면서 그 아픔을 함께 나누라는 의미였습니다. 또한 누구도 이러한 아픔과 고통에 내몰리지 않도록 세상을 바꾸어나가라는 이야기였습니다. 더욱 이 말씀이 와 닿았던 것은 내게 말씀하신 ‘이웃’이라는 존재가 내가 알고 있는, 혹은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원수’라고 불리는 존재들까지 포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서는, 이 세상의 군대에서는 그 사랑을 말하기보다는 분쟁과 폭력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적으로 상정하고 그들의 목숨을 뺏는 방법과 효과적으로 그들을 타격하는 법을 가르칩니다. 제가 신앙하는 예수님은 제가 그런 자리에 가도록 허락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그러하셨듯이 국가와 권력의 폭력에 휩쓸려 죽음의 자리에 이를지언정 묵묵히 자신의 길을, 평화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셨던 기도문에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위에 이루어지도록 이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말입니다.

믿음

인생의 한 걸음이라도 예수께서 가셨던 길을 따라서, 내게 보여주셨던 평화와 사랑의 걸음을 걷는 것이야말로 저의 인생에 있어 최고의 가치입니다. 그리고 그 걸음에 언제나 예수께서 함께 하실 것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동기

2003년 3월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입학

2005년 신과대 학생회장 역임

2006년~2009년 종교극예술연구회 활동

2009년 7월 7일 입영일, 병무청에 병역거부의사 밝힘

2009년 7월 13일 병역거부선언 기자회견

 

 

 

<지지글1>

안녕하세요 저는 하동기 선배의 병역거부 활동을 돕고 있는 한 후배입니다.

솔직히 저는 처음에 하동기 선배의 병역거부 의사를 들었을 때는 그 뜻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그 뜻에는 많은 부분 공감하고 이해하였지만 병역거부 선언과 그 이후 받게될 정신적 고통, 감옥에서의 생활 등은 너무 힘들고 고통이 클 것을 잘 알고 있기에 하동기 선배의 선택을 지극히 평범한(대다수의 사람들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평범하다고 하겠습니다)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저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제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하동기 선배가 그런 고통을 겪기를 원하지 않고(하동기 선배는 그것을 고통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지만), 그저 1년 10개월이라는 시간동안 잠시 자신의 양심은 묻어둘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하동기 선배를 설득해보았지만, 워낙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선배는 오히려 저를 이해할 수 없어하였습니다. 제가 더 충격을 받았던 일은 제가 선배에게 만약 공익근무 판정을 받았다면 그것은 하겠냐고 물어보았을 때입니다. 그런 저의 물음에도 하동기 선배는 공익근무 조차도 하지 않겠다는 대답을 하였습니다. 바로 1개월간의 훈련과정 때문이었습니다. 그 1개월 동안 자신의 양심이나 생각을 포기하고 총을 집어 들고 누군가를 죽이기 위한 기술을 훈련받을 수는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동기 선배는 무슨 일이든 열정적으로 나서서 하고, 항상 많은 고민을 하며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기에 만약 선배가 평범하게 군대만 갔다 오면 사회에서 매우 성공할 사람이라고 저는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선배의 대답을 듣고 저는 선배를 설득하기 보다는 함께 선배를 돕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저는 하동기 선배의 뜻과 의견에 대해서 공감하고 그 뜻을 이해하지만 약간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국가’라는 개념이 없어지지 않는 이상 국가에 군대는 필요하며, 침략하는 전쟁이 아닌 우리나라를 방어하기 위한 군대는 필요하다고 아직도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군대가 없어지기 위해서는 나라 사이의 국경과 차별이 모두 사라지고 하나의 지구 속에서 인류 공동체 전부가 화합하는 것이 선결 조건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라는 개념이 없어지길 바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실현되기에는 너무 어려운 일이기에, 우리나라에 어서 대체 복무제, 더 나아가 모병제가 도입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군대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습니다만 자신의 양심에 의해 총을 들기를 거부하는 여러 사람들의 뜻은 존중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하동기 선배의 병역 거부 활동을 돕고 있는 여러 사람들의 생각일거라고 생각하는 바이구요. 양심의 자유 또한 대한민국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엄연한 국민의 권리이며,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양심이 존중받기를 원하고 이와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양심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하동기 선배의 병역 거부 활동에 대해 자신만 자신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서 군대에 가지 않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동기 선배의 이러한 조그마한 일련의 노력이나 행동 하나하나가 많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그것이 국가의 정책에 까지 반영될 수 있음을 생각할 때 이는 결코 작은 움직임으로만 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하동기 선배의 이러한 병역 거부 활동은 저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저는 솔직히 하동기 선배의 이러한 뜻을 듣기 전까지는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이 멋있게 보이고, 특히 최전방이나 특수부대, 해병대 출신 사람들을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보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TV광고에서 군대를 가겠다는 사람이나 군대를 안가도 되는 상황에서 자원입대하는 사람들의 뉴스를 보면 대단하다, 멋있다는 생각만을 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동기 선배의 생각이나 활동은 이러한 제 생각을 바꾸어놓았습니다. 요즘도 TV에서 군대 가는 사람들을 내세워 광고를 하고, 자원입대하는 사람들의 소식이 뉴스에 보도 되곤 합니다만 요새 저는 그런 광고를 보면 그 사람들이 멋있다는 생각이 들기에 앞서 하동기 선배를 떠올리곤 합니다. 이렇게 하동기 선배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조그마한 움직임 하나하나가 언젠가는 큰 뜻으로 모여 새로운 정책을 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대체 복무제가 인정되었을 때 그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이러한 하동기 선배와 같은 활동을 한 사람들의 노력과 땀방울 위에서 그 혜택을 누리게 될 것이구요.

 

  저는 선배와 종교가 다릅니다. 크게 보면 기독교라는 같은 종교이지만 선배는 개신교이고, 저는 저희 과에서 얼마 되지 않는 천주교 신자입니다. 그러나 같은 기독교 내에서 바라보아도 개신교에서 공식적으로 양심적 병역 거부를 하는 종교 단체를 이단으로 규정해 버리는 처사는 잘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저는 제가 양심적 병역 거부자가 아니기에 천주교는 이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자세히 알아본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여러 단체로 나뉘어져 세력 다툼을 하고 있는 개신교가 여러 다양한 사람들과 종파의 뜻을 이해하고 화합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양심에 의한 병역 거부 하는 단체의 뜻을 묵살해버리고 이들을 이단으로 규정하는 처사는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고 감히 말해봅니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개신교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 활동을 하는 하동기 선배를 적극적으로 도와줄 수 있다면 하동기 선배의 뜻을 존중해주고 최대한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지글2>

 요즘 우리 사회는 평화가 자꾸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양극화는 심화되고, 국민과 정부 간의 갈등은 끊이지 않습니다. 폭력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이듭니다. 그 중에 우리가 인지했든지 인지하지 못했든지 전쟁 역시 우리의 삶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폭력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이러한 폭력의 중심에는 종교인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물론 기독교도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오직 '기복적인 신앙'으로 오해한 사람들이 있어서 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의 상당부분이 기독교인들의 몫이 되어버렸습니다. 자신의 믿음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기독교인들의 모습을 우리는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신앙과 다른 모습의 사람이 있다면 배타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기독교인들의 모습도 보게 됩니다. 이런 기독교인들의 태도는 불신자 뿐 아니라 기독교 내에 '특별한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도 상처를 주곤 합니다.

 

 제가 지금 지지하고 있는 사람은 방금 말한 '특별한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남이 보았을 때 특별한 신앙이지 정작 본인에게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예수는 사랑을 가르쳤고 평화를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전쟁은 그런 예수의 모습에 반대되는 행동이지요. 그는 자신의 신앙에 따라 예수의 모습을 닮아 살려고 노력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사회가 이를 범죄자로 낙인 찍고 교회 단체가 그를 이단적 신앙을 가졌다고 몰고 가고 있는 것입니다.

 평화를 가슴에 담고 실천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이 사회가 너무나 폭력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평화를 위해 자신의 신념을 지킨다는 것은 용기입니다. 자신의 신앙과 신념을 지킴으로 자신에게 다가올 불이익이나 차별을 모두 감수할 수 있을 때 신념은 행동으로 옮겨집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이 사람을 지지합니다. 저도 같은 기독교인으로서 예수를 닮아서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용기가 없습니다. 제가 비겁한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을 때 그는 달랐습니다. 자신이 믿고 신앙하는 바를 행동으로 옮겼지요. 내 스스로 실천할 용기가 없었지만 이제 그를 지원하고 응원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당장 저로서는 그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대학생 몇 명이 모여서 대체복무제 시행을 바라고 평화를 위해서 활동을 하는 것이 아주 미미한 움직임일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일을 함께 하는 것은 몇 몇 사람에게라도 생각의 기회를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리며, 대한민국의 남자로 태어나면 누구나 한번 경험해야 하는 그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를 생각해볼 기회를 주고 싶은 것입니다. 병역을 이행하는 것은 비양심적이고 병역을 거부하는 것만이 양심적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도 아닙니다. 단지 이런 사람들이 있고 평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습니다. 이 사람의 병역거부가 그 좋은 선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연대회의 성명 - 국방부는 병역거부자들이 처한 현실을 직시하고 중단된 대체복무를 즉각 도입하라>

작년 말 국방부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대체복무 도입을 유보하겠다는 발표를 내린 뒤 우려했던 바대로 그동안 대체복무 시행을 기다리던 젊은이들의 감옥행이 이어지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이던 2007년 9월, 국방부는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대체복무를 허용하고 2009년 1월부터 제도를 시행할 것이라는 발표를 한 바 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면서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더니 결국 작년 12월 말 국방부가 대체복무 도입을 유보하겠다는 발표를 하였다. 국가인권위에서 지속적으로 대체복무 도입을 권고해왔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병역거부권이 인정되지 않는 한국 현실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마당에 현 정부는 케케묵은 시기상조론과 국민여론 수렴이라는 수사로 병역거부자들의 인권을 존중해야하는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병역거부를 선언한 하동기씨는 “사랑을 행했던 예수의 길을 따라 병역거부를 결심”하게 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자 신학을 공부하는 학생이다. 그는 병역거부 소견서에서 밝히기를, 2006년 평택에서 미군기지 확장이전에 반대하던 주민을 비롯한 자국의 국민을 상대로 버젓이 자행된 군․경의 폭력에 큰 충격을 받았고 그 이후로 징집된 군인들에게 폭력의 사용을 명령하는 국가의 요구에 응하지 않기로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처럼 병역에 대한 그의 진지한 성찰은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내면의 목소리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인 결과이다. 따라서 병역을 거부하기로 결심한 그의 양심은 충분히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지 비난이나 처벌이 대상이 될 수는 없다.

기독교 신자의 병역거부 선언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6년에 박경수씨가 기독교 신자로서 병역거부를 공개적으로 선언한 바 있으며, 천주교나 불교 신자로서 병역거부를 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병역거부자들에게 대체복무의 기회를 주는 것이 일부 종교에 대한 특혜라는 주장은 따라서 정확한 지적도 아니며, 오히려 적극적인 평화를 이야기하는 병역거부의 논점을 흐리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사회에서 병역거부 운동이 대외적으로 시작된 2001년부터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을 비롯한 보수집단의 반대 목소리가 있어왔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수많은 젊은이들이 감옥행을 선택했으며 그 숫자는 2000년대에만 5000명을 넘어서고 있다.

이제는 벌써 먼 과거처럼 느껴지지만 국가인권위는 이미 4년 전인 2005년에 대체복무 도입을 권고한 바 있고, 2006년에는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Human Rights Committee)에서 한국 정부에 대체복무 도입을 권고한 바 있다. 2006년 11월에 유엔에 개인통보를 접수한 두 명의 병역거부자들과 관련하여 자유권위원회는 한국 정부가 양심 및 종교의 자유를 명백히 침해했으며 병역거부권을 인정할 것을 권고하였지만 이후에도 정부는 유엔에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변명을 대기에 급급했다. 그리하여 현재는 새로운 499명의 개인통보가 다시 제출되어 자유권위원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올 초에 병역거부를 선언한 은국씨가 바로 얼마 전인 7월 3일 1심에서 1년 6월을 선고받고 수감이 되었다. 국가가 대체복무제도 도입을 철회하고 병역거부 사안을 방기하는 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지금도 병역거부자들이 계속해서 수감되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전과자라는 낙인을 기꺼이 감수한 병역거부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받아온 그리고 앞으로도 받아갈 고통을 국가는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 국방부는 이제 근 10년째 지긋지긋 끌어오고 있는 병역거부 이슈가 지겹지도 않은가? OECD 가입국 중 유일하게 대체복무가 허용되지 않는 인권후진국이라는 꼬리표가 싫다면 국방부는 지금이라도 당장 병역거부자들이 처한 현실을 직시하고 상황 개선의 의지를 보여야 할 것이다. 우리 연대회의는 정부가 남북간 무력충돌을 운운하며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킬 것이 아니라 평화를 외치는 병역거부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진정한 평화 정착을 위해 노력할 것을 촉구한다.

2009. 7. 13.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국제민주연대/ 군의문사 진상규명과 군폭력 근절을 위한 가족협의회/ 기독사회시민연대/ 녹색연합/ 동성애자인권연대/ 문화연대/ 민주노동당/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불교인권위원회/ 사회당/ 성공회대학교 인권평화센터/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오태양 지지모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유호근 지지모임 평화사랑/ 여성해방연대/ 원불교사회개벽교무단/ 인권운동사랑방/ 장애인 인권운동을 위한 열린네트워크/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전국불교운동연합/ 전쟁없는세상/ 좋은벗들/ 참여불교재가연대/ 참여연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평화네트워크/ 평화를만드는여성회/ 평화인권연대/ 학술단체협의회/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함께가는사람들/ 환경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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