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을 버리자 ③ 아직도 뜨거운 감자

한겨레21표지

한겨레21 756호 (2009년 4월17일자) 표지

 

노무현, 뜨거운 감자

그리고 2007년 대선이 왔다. 나는 쿠키방송팀에서 대학생 기자단을 움직이는 일을 맡게 됐다. 대학생들이 대선 현장에서 기사를 쓰면 내가 정리해서 인터넷으로 보도하는 일이었다. 그때는 노무현 대통령의 인기가 바닥이었다. 정치권도 서로 멀리하려고 했다. 고, 인기도는 바닥이었다.

대학생 기자들과 기획회의를 하다가 '노무현'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유권자들의 마음이 도대체 여권을 향하지 않는 이유를 토론하다가 이명박이나 정동영의 문제가 아니라 노무현에 대한 실망감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란 분석이었다.

 

그렇다면, 대학생 기자들이 본 노무현은 어땠을까? 나는 대학생 기자들에게 자신들이 생각하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글을 쓰라고 했고, 그 글을 묶어서 보도했다([Talk Play Vote] “문제는 노무현이야, 멍청아!”). 특히 동국대 김영은 학생(현재 KBS기자)이 쓴 글이 당시의 민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깜짝 놀란 것은, 이 글의 조회수가 엄청났다는 것이다. 대학생 기자들이 쓴 글은 물론, 정치부 기자들이 쓴 글보다 10배내지 100배더 많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노무현'이라는 화두가 우리 정치사에 큰 의미를 가지고 있고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그가 퇴임 뒤 어떤 행보를 보일지가 상당히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의 퇴임 뒤 행보에 기대를 가졌다. 개인적으로는 이듬해 초 블로그에 [나는 노사모였다]는 글을 쓰는 계기가 됐다. 이 글도 많은 조회수를 기록했고 댓글도 많이 달렸다.   

 

2007년 대선 결과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헷갈리는게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최대의 표차이'를 가지고 당선됐다고들 하는데 그렇다고 최대로 많은 표를 얻은 것은 아니다.

 

 민주화 이후 치러진 대선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사람은 김영삼도 아니고 김대중도 아니고 2007년 노무현 후보였다. 그는 11201만4077표를 얻어 48.9%의 지지를 받았다. 지지율에서도 노무현은 1위다. 이명박 대통령은 1149만2389표를 얻어 48.7%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니 정동영 후보와 500만표나 차이가 난 것은, 이명박이 그만큼 압도적으로 지지를 받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정동영 후보와 참여정부에 실망한 사람들이 그만큼 떠났다, 그러나 한나라당을 지지하지도 않았다는 것으로 분석해야한다.

 

2007 대선과 관련해, 또 하나 놀라운 장면은 2008년 2월25일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할 때에 몰린 인파였다. 고향으로 내려간 그를 따라 수천명의 사람들이 서울역과 김해를 찾았다. 다 알다시피 봉하마을은 관광지가 되다시피했다. 너무나 인기가 없어 여당조차 선거에서 그를 비난했고, 결국 500만표의 차이를 나게 만들었던 그였는데, 퇴임하는 그에게는 왜 그렇게 많은 인파가 몰렸을까. 그에겐 여전히 많고 강력한 추종자가 있고, 여기에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노무현을 평가하는 국민의 민심은 대통령 노무현을 평가할 때와는 달리 무척 후했다는 증거였을 것이다.

 

퇴임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손녀가 자전거를 타고 가는 모습

하긴.. 이런 모습의 전직 대통령을 보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가 주는 행복에 감염됐었던가.

나는 이제 노무현이 대통령에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 돌아간 것이 기뻤다. 무엇보다 이제 언론과 한나라당과 또 그를 이해하지 못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비로소 그 다운 모습으로 돌아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청와대에 5년간 있으면서 겪었던 일들을 어떻게 소화해서 어떻게 정리해 보여줄지도 기대가 되었다. 사실 참여정부에 국정운영 경험이 더 있었다면, 5년간 있었던 혼란과 시행착오는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그의 경륜과 유산을 후임들이 잘 받아 소화하는게 민주세력의 역량 강화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봉하마을의 측근들이 얘기하는 내용을 보면, 노무현은 퇴임 후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정리해 남기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노무현은 퇴임 후 책을 읽고 토론하고 정리하는 것에 열중했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후 읽은 책들)

 

 그러나 그는 아직 현실정치를 떠나지 못했다. 아니, 사람들이 그를 현실정치에서 떠나보내지 못했다.

 

봉하마을에 늘 사람들이 찾아오고 단체관광을 오고 그의 소탈한 모습이 화제가 되는 것 자체를 정치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같은 (봉하마을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관심과 (그런 풍경을 근심하며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심이, 결국 노무현을 다시 현실정치로 끌어들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미 힘이 없었다. 최고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을 때도 '겸손한 권력'이 되고자 해서 나 같은 사람을 답답하게 만들었던 노무현, 그래서 국회의원에게 조롱받고 검찰에게 조롱받고 어린 아이에게조차 조롱받았던 그가 아니었던가. 더구나 이미 퇴임한 뒤에는 아무런 권력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나마 있던 도덕적 권력조차 벗어버렸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가족이 깨끗하지 않은 돈을 받았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그리고 스스로 서울로 올라가 검찰에 출두했다. 아, 이런 그의 행동마저 '정치적 도박' '승부수' 같은 렌즈를 통해 해석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노무현이 잠잠코 있었다면 검찰도 또 더 위에서 내려다 보던 이들도 그에게까지 창끝을 겨누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의 가족을 부끄럽게하고 사람들이 그를 더 이상 찾지 못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만족하지 않았을까.

 

나는 한편으로는 그의 결벽이 지나치다고 생각하면서도, 노무현이었기에 그렇게 과감하게 고백할 수 있었을거라 생각했다. 어떤 정치적 계산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하는 정치적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엄청나게 실망했다.

 

이미 노무현에게 많은 실망을 했지만 그것은 '대통령'으로서 그가 보여준 능력이,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커녕 그가 스스로 약속했던 것에도 미치지 못했기에 실망했던 것이었지 노무현의 인간성에 실망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청와대에 그가 현직으로 있을  때에 그의 가족이, 아무리 정치적 후원자이자 친구였다고 해도, 돈을 받았다니...

 

한겨레21의 표지에 '굿바이 노무현'이 등장한 것도 바로 이 때였다. 한겨레 21은 이렇게 광고했다.

 

노사모 변천사
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 노사모는
2000년 5월17일 결성되었습니다.
노무현이 사기당한 데 분노하는 모임, 노사모는
2002년 대선 전날 탄생했습니다.
노무현을 사악한 무리에서 구하는 모임, 노사모는
2004년 3월12일 촛불로 타올랐습니다.
노무현이 사실을 실토한 뒤 실망한 모임, 노사모는
2009년 4월7일 급하게 결성되었습니다.
노무현은 사라져야 한다고 믿는 모임, 노사모는
지금 전국적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10년 전 1999년 7월 <한겨레21> 제264호의 표지는 ‘대중이 선호하는 차세대 리더십 1위 노무현’이었습니다. 이 기사는 정치인 노무현의 가능성을 가장 먼저 주목한 기사로 회자됐습니다. 그리고 10년 뒤 <한겨레21>은 ‘굿바이 노무현’을 표지에 올립니다. 여러 가지 ‘그리움’으로 떠오르는 노무현을 이제 가슴에서 지웁니다.

 

과거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아마 1992년 대선에서 떨어지고 정계은퇴를 선언한 뒤 다시 복귀했을 때였을까, DJ가 노태우에게서 돈을 받았다고 고백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냉소적이지 않았다. DJ는 아직 도전자였고, 이루어야할 일이 있었을 때였다. 그의 고백은 그만큼 어려웠을 것이었고, 진솔하였고, 또 돈을 받은 당시 시대 상황을 보면 어쩔 수 없었으리라 생각되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노무현의 경우는 달랐다. 대통령에게는 한달에 1000만원 넘는 돈이 국민의 세금에서 지급되고, 퇴임 후에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으로서 품위를 유지하라고 국민들이 주는 돈이다. 게다가 아들은 대기업에 다니고, 딸은 변호사 남편과 산다. 고향에 큰 집도 마련했다. 그런데 돈이 모자를 것 같아서 뒤에서 돈을 받아 챙겼다고? 국민이 주는 돈으로 만족을 못해서? 게다가, 그걸 먼저 알고 고백한 것도 아니고, 검찰 수사로 더 이상 물러날 곳 없어 보이는 곳까지 몰리자 그 때에야 '몰랐다'고 고백한다고?

 

나도 한겨레21의 '굿바이 노무현' 선언이 적절하다고 생각했고, 공감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

 

노무현 자신이 '정치하지 마라'는 글을 쓴 것도 아마 자신이 이런 정황을 알고 난 뒤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노무현은 이렇게 썼다.

 

 정치를 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정치에 바쳐야 합니다. 정치를 위하여 무엇을 바쳐야 하는지를 헤아리는 것보다, 그가 가진 것 중에서 정치에 바치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를 헤아려 보면, 아닌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사생활, 특히 가족들의 사생활을 보호할 수 없는 것은 참으로 치명적인 고통입니다. 그러나 이 정도까지는 스스로의 선택이니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문제는 정치인이 가는 길에는, 미처 생각하지 않았던, 그리고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난관과 부담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거짓말의 수렁, 정치자금의 수렁, 사생활 검증의 수렁, 이전투구의 수렁, 이런 수렁들을 지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좋은 조건을 가진 정치인이 아니고는 이 길을 회피하기가 어렵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수렁에 빠져서 정치 생명을 마감합니다. 살아남은 사람도 깊은 상처를 입은 사람이 많습니다. 무사히 걸어 나온 사람도 사람들의 비난, 법적인 위험, 양심의 부담, 이런 위험 부담을 안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말년이 가난하고 외롭습니다.

 

그는 스스로 가난하고 외롭다고 느꼈을까. 그 벽을 넘었다고 생각했는데, 끝내 넘지 못했다고 느낀 것이었을까. 또 이런 구절도 있다. 정치인들, 특히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진 사람들이 일부 돈 많은 집 자제를 제외하고는 얼마나 궁핍하고 어려운지 설명하면서 이렇게 썼다.

 

정치가 달라지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이 먼저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정치인의 처지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도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이 이야기를 합니다. 주인이 알아주지 않는 머슴들은 결코 훌륭한 일꾼이 될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와서 다시 읽으니 가슴이 아프다. 정치인의 고독과 가난에 대해 그는 이렇게 구구절절하게 썼는데, 이 내용을 별로 공유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을 추모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죽음 앞에서 조차 그를 외면하는데, 진정으로 그가 남겼던 말들을 기억하고 또 개선하려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노무현의 죽음을 슬퍼하는 500만명의 사람들을 보고는 이를 '정치적 자원'으로 보고 '동원'하고 싶어한다. 슬픈 감정을 더 부추기고 더 오래 슬퍼하라고 한다. 슬퍼하고 분노하고 그것으로 한을 푸는 정치를 하자고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노무현이 남긴 많고 많은 말 중에 '원망하지 마라'고 한 말만 똑 따와서 '다 잊어버려라'고 한다. 좀 더 노골적으로 '지 죄 때문에 자살한 사람, 뭐가 그리 불쌍하냐'고도 한다. 그게 더 사람들을 화나게 만들고 분노하게 만든다는 것을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직도 노무현을 버리지 못했다. 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싶은 사람들, 그런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리고 싶은 사람들이 뒤엉켜 노무현을 아직도 정치인으로 남겨두고 있다.

 

그냥 우리는, 소탈하고 정의롭고 잘 웃던 대통령을 우리가 가졌음을 추억하고, 그가 더 이상 이 땅에서 숨쉬지 않는 것을 슬퍼하는 것인데...

 

노무현이 죽었다고 해서, 그의 모든 것을 미화하고 '참여정부가 얼마나 잘한게 많은데!'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지금의 정부는 얼마든지 비판 받을 거리가 많고 국민의 기대에 전혀 못미치고 있어 실망스럽다.

 

오히려 분노와 슬픔을 북돋는 몸짓이 우리가 충분히 슬퍼하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노무현은 아직도 뜨거운 감자다.

그를 잊자고 하기에는 잊어선 안될 이유가 너무나 많고, 그를 잊지말자고 하기엔 그가 남긴 뜻이 너무나 이해되지 않고 있어 오히려 오해가 더 많아질 것만 같다.

 

그냥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제는 차분하게, 노무현을 보내드리자. 그 분이 죽어서라도 편히 쉬게 하자.

 

그가 대통령으로서 했던 일들은, 차갑게 살펴보고 따져보자. 그가 잘한 것을 우리가 미쳐 몰랐다면 그건 감사한 일이고, 그래도 여전히 부족하고 아쉬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제 '왜 그렇게 착하고 슬기로운 대통령도 이 일은 해내지 못했을까. 왜 거기서 이런 판단을 했을까. 무엇 때문일까. 무엇이 한계였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조금씩 조금씩 바꿔나가자. 그가 그의 고민을 더 많이 털어놓고 우리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한 채 떠나간 것은 가슴 아프지만, 아픈 가슴만 부여잡고 있을 수는 없지 않는가. 오히려 그가 다 읽지 못한 책을 우리가 읽고 그가 답하지 못했던 질문에 답을 찾아가야하지 않겠나.

 

그러면 되는 것 아닌가?

 

한때 노사모였던 사람으로서 감히 말하자면, 노무현도 바로 이 것을 원하고 있을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노무현의 죽음을 통해 '용서와 화해는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하게 됐다.

 

그의 죽음 앞에서 더 대립하고 분열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면서, 노무현이 부엉이 바위에서 허공을 디디며, 참으로 간절히 염원했던 세상은, 용서하고 화해하는 세상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검찰의 기소포기처럼 이제 다 잊어버리자는 식의 용서와 화해는 진정한 화해가 아닐 것이다.

 

누가, 무엇을, 용서하고 누구와, 어떻게, 화해해야하는 것인지. 주어와 목적어와 부사어와 관형어를 찾아가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을 찾아가는 일을 하고 싶다.

 

노무현, 그를 편히 보내드리기 위해서라도. 

 

한겨레21표지

한겨레21 762호 (2009.05.29) 표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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