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을 버리자 ② 내가 실망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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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통령 노무현에게 실망한 이유

 

최초로 그에대한 '믿음'을 포기한 것은, 임기2년째였던 2004년말이었다.

 

탄핵에서 돌아온 노무현은 열린우리당이라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최대의석의 여당(민자당 빼고)을 갖게 되었다. 거대여권이 처음으로 추진한 것이4대 개혁입법이었다.

 

국가보안법 폐지 -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독소조항 폐지 내지 개정

사립학교법 개정 - 사립학교 운영에 개방형 이사 참여 의무화

과거사진상규명법 제정 - 일제하 폭력, 한국전쟁 전후 불법적 희생, 공권력의 남용 재조사

언론관계법 개정 - 언론 독과점과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규제

 

이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있었던 것은 국가보안법 문제였다. 개인적인 계기가 있었다. 당시 통일부를 담당하고 있던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2004년 9월 "국가보안법이란 칼은 칼집에 넣어 창고에 보관해야 한다"는 발언 직후 북한의 형법과 우리의 국가보안법을 비교해 보았다.

 

남북한 안보 관련 법규 비교 표

국민일보 쿠키뉴스

 

차근차근 살펴보니 그전까지 막연히 국가보안법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던 내가 보기에도 국가보안법은 국가권력의 안위를 위해 국민을 억압하는 내용만 가득할 뿐 국가안보와는 거의 관련이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국가보안법의 실상을 잘 모르는데, 간첩을 잡는 조항, 내란-폭동을 막는 조항, 외세를 끌어들여 국가를 전복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은 모두 형법에 있다. 국가보안법은 잠입 탈출 조직 선동 허위사실유포 등의 죄를 규정하고 있는데 너무나 포괄적이고 광범위해서 법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다. 이런 규제가 꼭 필요하다면, 좀더 세밀하게 규정헤서 형법에 삽입하면 되지 굳이 국가보안법이 있을 필요가 없다.

 

어쨌든 4대개혁입법은 거센 반발에 밀려 법안이 하나 둘 좌초되고 나서도 2004년 12월31일까지 남아있던 것은 국가보안법 문제였다. 열린우리당은 청와대에서 "밀어부쳐도 좋다"고 말하길 기다렸다. 국회 앞에서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는 시민단체들이 지지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청와대는 끝내 침묵했다.

당시 열린우리당에서 4대개혁입법을 추진했던 신계륜 전 의원은 "청와대에서 한마디만 하면 밀어부치려고 했다. 노 대통령을 만나 설득 했는데 끝까지 침묵했다. 이후에 청와대는 '아직 때가 이른 것 같다'는 답변이 왔다"고 말했다.

물론 국가를 통치하는 사람으로서 국론분열과 대립을 우려했을 것이란 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나 같이 평범한 사람도 조금만 뜯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문제점을, 대통령이 국민을 설득하려는 노력도 제대로 하지 않고 쉽게 포기하는 것이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내가 '노사모를 탈퇴하길 잘 했구나' 생각하기 시작한게 그때부터였다.

 

또 하나의 문제는 행정수도 이전 문제였다.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 그래서 끝내 무산되는 결과를 보면서 "이 정권이 나라를 바꾸어가기에는 처리 능력도 부족하고 자신감도 부족하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생각하기에 행정수도 이전 문제는 국민투표를 했어야 하는 사안이었다.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봤다. 실제 전국단위 여론조사를 하면 찬성이 더 많았다. 노무현 대통령도 대통령 선거 당시 국민투표를 약속했었다.

 

'행정수도 건설' 노 대통령 국민투표 약속했었다.(2004년6월17일)

'행정수도 건설 어떻게 추진되나'(2002년 12월20일)

 

그런데도 청와대는 약속한 적이 없었다면서 여야합의 처리로 강행했다. 이유는 짐작이 갔다. 첫째는 국민투표를 치르기까지 국론분열이 우려됐을 것이고 둘째는 야당도 충청도 등 지방 유권자를 의식해 반대할 수 없는 형편이니 국회 합의로 법을 제정하면 충분히 통과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행정수도 문제는 국회에서 법이 만들어진 뒤에도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관습헌법 위헌'이 돼 버려 날라갔다.

헌법재판소의 판결 자체도 말이 안되는 코미디라고 생각하지만, 헌법과 같은 위력을 가진 국민투표를 피해가려 했던 청와대의 꼼수가 이런 결과를 불러왔다고 생각했다. 정면돌파를 하지 못한 것이 정말 아쉬웠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내 마음은 참여정부에게서 점점 멀어져 갔다. 부동산 폭등에 대해서도 내가 실망한 과정을 차근차근 설명하고 싶긴 한데, 이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문제점을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생략하겠다. 참여정부 언론정책의 문제에 대해선 이전에 글을 쓴 적이 있다.

 

 이라크 파병, 한미FTA 등등 그가 내놓는 정치적 의제도 점점 내 생각과는 멀어져 갔다. 물론 여전히 인간 노무현에 대한 마지막 애정만은 갖고 있었다. 위에 쓴대로 오해받고 무시받는 대통령의 모습이 안쓰러웠고, '그래도 사람은 참 순수하고 소탈한데..'라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그를 향해서는 애증이 교차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때 좀더 적극적으로 평가를 받았어야 하는 부분도 있었는데, 그래도 내가 좋아했던 정치인이었고 그렇게 대통령이 됐으니 끝까지 애정을 가져야했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아쉽기도 하고,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 그랬다면... 어땠을까?

 

 역설적으로, 노 대통령에게 가장 관심이 컸던 것이 조중동이었던 것 같다. 끝까지 그의 스타일과 언행으로 시비를 걸고 그의 정책 성과는 모조리 뒤집어서 헛점만 공격했으니... 그런 집중포화 속에 대통령 노무현은 조금씩 침몰하고 있었고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은 그를 잊어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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