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계 “존엄사? 돈 없는 사람은 먼저 죽으라는 말!”

기독교생명윤리협회에서 존엄사 문제에 대한 공식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권리에 관한 법률안'에 대해 의견을 밝힌 것인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존엄사 문제에 대해 우리 사회의 인식은 '존엄하게 죽겠다는데 왜 막느냐. 치료비만 많이 드는데!'라는 정도인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 이 문제를 고민하는 크리스천 의료진들이 가장 큰 숙제로 생각하는 것이 바로 '치료비 문제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죽음을 강요당하는 사람이 없어야한다'는 점이라는 것을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존엄사'라는 명칭 자체가 마치 '인간다운 위엄을 갖추고 죽도록 해주겠다'는 걸 말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자연사'를 선택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면서 슬쩍 곁다리로 '더 이상 살아서 뭐하냐는 환자에게 죽음을 앞당길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다'는 개념까지 집어넣은, 좀 괴상한 개념이다.

 

그래서 국회에서 존엄사라는 말이나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이라는 말 대신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권리'라는 긴 표현을 채택했다. 이것부터 골치아픈데, 삶과 죽음의 문제에서 조차 문장 하나 읽고 그게 무슨 의미인지 생각하기를 귀찮아할 정도로 우리가 조급하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하지는 않을까.

 

기독교생명윤리협은 기독교인인 의사와 신학자, 목회자 등으로 이뤄진 모임이다.

 

협회는 일단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권리'라는 표현에 동의하고, '연명치료'라는 말 대신 '생명연장조치'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에는 반대했다. 마치 별 의미 없는 조치인 것 같은 선입견을 준다는 것이다. 이것은 원칙적으로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권리'를 인정하자는 견해를 조심스럽게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

 

협회는 그러나 현실에서는, 의사가 환자에게 이런 내용을 충분히 알려줘야할 의무를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았고, 또 연명치료비를 모두 국가가 부담하는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치료비 부담 때문에 죽음을 선택(사실상 사회적으로 강요당)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연명치료비를 국가가 전액 부담하는 제도와 환자(와 가족)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호스피스제도 등의 활성화가 먼저 이뤄져야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조치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존엄사 운운하는 것은 시기상조에다 사실상 '돈 없는 사람은 먼저 죽어라'는 것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비판이다.

 

그리고 현재의 의료상황에서도 뇌사라든지 말기환자들은 자연스럽게 의료진의 치료를 거부하면서 자연사를 선택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런 경우를 일반화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 협회의 지적이다.

 

인간은 누구나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다. 존엄사(기독교계에서는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이라고 부르는 걸 더 선호한다) 논란이 현실과 동떨어진 논쟁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직면할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라는 점에서 좀더 깊이있고 차분한 논의가 폭넓게 이뤄지면 좋겠다.

 

다음은 기독교생명윤리협회의 의견 전문이다.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권리에 관한 법률안”

에 대한 의견

 

의안번호 : 1805232

발의연월일 : 2009. 6. 22.

발의자 : 김세연 의원 등 28인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는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에 회부되어 있는 위 법률안에 대 하여 다음과 같이 의견을 제시합니다.

 

다 음

 

1.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권리”라는 용어의 사용을 찬성합니다.

 

이 법률안의 제안이유는 ‘안락사(euthanasia)’라는 용어와 안락사를 미화한 용어인 ‘존엄사(death with dignity)’의 사용을 배제하여 적극적 안락사는 물론 수분, 영양공급 중단에 의한 소극적 안락사도 금지시키고자 한다는 것인데, 이러한 취지와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권리”라는 용어의 사용을 찬성합니다.

‘존엄사’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소극적 안락사는 물론 적극적 안락사까지도 교묘하게 허용하려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듯한 최근의 ‘존엄사’ 논쟁의 오류를 이 법률안이 답습하지 아니하고, 특히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에 대한 연명치료의 중단을 금지함으로써(법률안 제4조 제3항), ‘존엄사’를 빌미로 인간 생명의 존엄성이 침해받지 아니하도록 규정한 점을 지지합니다.

 

2. 그러나 죽음의 문제와 관련된 법률의 제정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선결 조건들이 있는데, 그 선결 조건들에 관한 문제들이 충분히 논의되고 사회적 합의를 거쳐 해결되지 아니한 상태인 우리나라에서 성급하게 이 법률안대로 법을 제정하는 것은 반대합니다.

 

2-1. 죽음에 임박하여 연명치료를 받을지 여부에 관한 자기결정권의 행사는, 의사의 충분한 설명의무를 필수적 전제로 할 것인데, 아직 의사의 설명의무 위반에 대한 처벌 규정 등이 의료계의 반대 등으로 의료법상으로도 법제화 되어 있지 아니한 상태이고, 의료 현장에서도 의사의 충분한 설명의무가 이행되고 있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우리나라의 현 실정상, 의사의 설명의무 위반에 대한 처벌 규정 등이 먼저 입법되고, 의료 현장에서도 의사의 충분한 설명의무의 이행 실태가 먼저 자리 잡지 아니하는 한, 생명과 직결된 연명치료 중단 관련 법률의 제정은 아직 시기상조입니다.

환자의 자유 의지에 의한 결정을 강조하다가 역설적으로 자기결정권의 온전한 행사를 침해 받는 경우가 생길 가능성과 위험성에 대한 고려와 안전장치가 먼저 요구됩니다.

2-2. 연명치료를 받을지 여부에 관한 자기결정권의 행사는, 또한 의료비에 대한 재정적 부담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를 전제로 하여야 할 것인데, 환자의 의료비 부담이 없는 스위스, 오스트리아, 영국, 독일 등 선진국의 경우와 달리 우리나라는 연명치료를 받을지 여부에 관한 자기결정권의 행사에 현실적으로 환자의 의료비 부담 문제가 큰 영향을 끼친다고 아니할 수 없고, 따라서 생명이 결코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고귀한 가치임에도 불구하고 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국민의 경우에는 결국 스스로 생명을 포기하도록 하는 법제도로 왜곡되어 운용될 위험이 농후하므로,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연명치료를 선택하더라도 연명치료에 관한 의료비 전액을 국가가 부담하는 정책과 해당 예산의 확보가 먼저 이루어지지 아니하는 한, 생명과 직결된 연명치료 중단 관련 법률의 제정은 이러한 면에서도 아직 시기상조입니다.

2-3. 환자의 자기결정권의 행사는, 생명권과 국가의 생명보호의무 등과의 관계에서 현행법체계상으로도 생명의 포기, 자살 등이 허용되지 아니하는 등 내재적 한계가 있고, 이러한 내재적 한계는 인간의 생명이 지속되는 한 그 생명의 모든 단계에서 차등 없이 지켜져야 할 것이므로, 이를 의료행정적 법률 차원에서만 볼 것이 아니며, 헌법과 형법 등 우리나라의 기존 법체계와의 충돌문제 등과 관련하여 종합적이고 충분한 논의와 법 정비가 선행되지 아니하는 한, 생명과 직결된 연명치료 중단 등 관련 법률의 제정은 이러한 면에서도 아직 시기상조입니다.

 

2-4. 우리나라의 경우 병원에 입원하지 아니한 상태에서 임종하는 경우가 많은 점, 입원하였더라도 의학적으로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보이는 환자 본인이나 가족이 퇴원을 요청하면 병원이 이에 응하는 방법을 이용하는 점 등과 관련하여, 우리나라의 의료현실은 환자의 동의가 없는 연명치료가 애초부터 쉽지 아니한 실정이고, 어떠한 치료를 받다가 갑작스런 의식불명으로 연명치료 거부 의사를 표시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표적으로 문제된다고 할 것인데, 이러한 이례적인 경우를 일반화하여 “모든 말기환자”의 경우를 예상하여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획일적 법제도를 만든다는 것은 일종의 입법과잉이라고 할 수 있고, 더구나 그 법제도가 생명의 포기와 관련된 것이라면 생명을 보호하여야할 국가의 책무에도 도리어 반할 수 있다고 할 것입니다.

더구나 “말기환자”의 개념이나 범위가 모호하거나 부정확한 터에 이를 획일적으로 법제화할 경우, 생명과 직결된 법률의 시행에 있어 많은 부작용과 탈법적 내지 편법적 운용이 우려되므로 이에 대한 고려와 안전장치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2-5. 그 외에도 우리나라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의하여 본인의 치료 여부가 온전하게 결정되는 성숙한 의료문화가 형성된 상태도 아니며, 통증조절 완화치료나 호스피스도 아직 초보적 수준으로서 법제화 되어 있지 아니한 등 죽음의 문제와 관련한 사회적 기반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아니하므로, 의료문화의 전반적 성숙이 이루어지고 통증조절 완화치료나 호스피스와 관련한 사회적 기반이 먼저 갖추어지지 아니하는 한, 생명과 직결된 연명치료 중단 등 관련 법률의 제정은 이러한 면에서도 아직 시기상조입니다.

 

3. 위 제2항의 선결 조건들에 관한 문제들이 먼저 충분히 논의되고 사회적 합의를 거쳐 해결되는 것을 전제로, 생명과 직결된 연명치료 중단 등 관련 법률을 부득이 입법한다고 할 때, 향후의 입법 정책과 관련하여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합니다.

 

3-1. 말기환자의 범위 및 연명치료 중단의 요건에 대한 구체적 판정 기준을 법률로써 직접 규정함이 상당합니다.

이 법률안은 말기환자에 관하여 용어의 개념을 정의하고 있고(법률안 제2조 제1호), 연명치료의 중단을 요청할 수 있는 요건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으나(법률안 제8조 제2, 3호), 생명의 존엄성과 일회성, 생명의 기적적 소생 가능성과 신비성, 의사의 오진 가능성 등을 종합할 때, 이 법률안의 위 규정들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뇌사의 경우를 보면, 뇌사의 판정기관, 판정신청자와 판정신청절차, 판정절차는 물론 구체적 판정기준(별표)을 법률로써 직접 규정하고 있습니다(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제3장 제2절).

그런데 뇌사의 경우에 비하여 생명 보호 법익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는 말기환자의 단계에 있어, 말기환자의 범위 및 연명치료 중단의 요건(의학적 소생가능성 여부, 치료 불가능성 내지 치료의 의학적 무의미성 여부, 사망의 임박성 여부 등)에 대한 구체적 판정기준을 법률로써 직접 규정하지 아니하고 방치한다는 것은 존엄한 인간의 생명에 대한 국가의 보호 의무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2. ‘생명연장조치’라는 용어의 사용을 재고함이 상당합니다.

현재 많이 사용되고 있는 연명치료라는 용어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생명연장조치’는 연명치료와 비교하여도 ‘치료’의 의미가 빠져 버려 치료의 가치나 유익이 전혀 없고 그저 ‘생명연장’만을 목적으로 하는 부정적인 것으로 환자에게 받아들여짐으로써 편향적인 결정을 하도록 유도할 우려가 있습니다.

 

3-3. 연명치료의 시술 내용을 법률로써 특정함이 상당합니다.

이 법률안은 ‘생명연장조치’에 관하여 개념만 정의하고 있을 뿐(법률안 제2조 제2호), 생명연장조치의 시술 내용에 관하여 특정하고 있지 아니합니다.

연명치료(또는 생명연장조치)의 시술 내용도 의학의 발전에 따라 변화한다고 할 것이고, 의사나 의료기관의 치료 능력이나 시설에 따라 연명치료의 시술 내용이 달라질 수도 있으며, 실제로 임상 현장에서는 ‘중단할 생명연장조치’와 ‘계속하여 제공하여야 할 의료서비스’(법률안 제8조 제3항 제3호)의 구분이 모호해질 가능성도 큰 점 등을 고려하면, 생사의 기로에서 환자가 거부하거나 선택하여야 할 연명치료의 시술 내용이 외부적 사정이나 조건으로 제한되는 등의 위험이 예상되므로, 비록 의학의 발전에 따라 개정을 거듭하여야 하는 불편이 있다고 할지라도 존엄한 생명과 직결된 문제이므로, 연명치료의 시술 내용을 하위 법령이나 관계 기관의 심의에 위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아니합니다.

따라서 연명치료의 시술 내용을 법률로써 직접 특정하고, 의료현장에서는 개개의 시술 내용별로 각각 사전에 충분한 설명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끝.

 

2009. 7. 15.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상임공동대표 강재성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 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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