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무역 제품은 커피 밖에 없나? - Fair Trade에 관한 더 깊은 이야기들

처음 블로그 이름을 '착한 경제 이야기'라고 정했을 때는, 막연히 '사람 자르고 공장 문 닫고 집값 올리는 나쁜 경제만 있는게 아니라 좋은 일자리 만들고 사람을 살리는, 경세제민이라는 말 그대로의 좋은 경제도 가능하지 않겠냐, 아니 가능해야 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으로 이름을 붙였다.

 

그동안 착한 경제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확산됐는데, 불행인지 게으름인지 이 블로그는 전혀 기여한 바가 없다. 블로그 이름만 '착한 경제 이야기'라고 해놓고 맨날 딴 소리만 늘어놓았다. 물론 정치나 사회 문제가 경제 문제와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요즘 이야기하는 착한 경제는 대략 3가지 정도의 장르(?)가 있다.

 

첫째는 사회적 기업

둘째는 사회 책임 투자와 사회 책임 경영

세째는 공정무역.

 

내가 맨 처음 관심을 가졌고 지금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두번째인데, 일단 요즘엔 세번째인 공정무역이 가장 대중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 같다.

 

소비 운동이어서 개인적인 차원에서 손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인 것 같다. 한겨레도 예전에 닷21인가 이코노미21인가 하는 경제잡지를 만들 때는 둘째와 첫째에 관심을 보였는데, 한겨레경제연구소 만들어진 뒤 이것저것 거론하다 공정무역이 가장 대중적으로 먹힌 것 같다. 한겨레21과 한겨레 신문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공정무역은 생산자들에게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혜택을 주는데다가 소비자들에게도 좀 더 능동적이고 대안적인 경제 활동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체험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좋은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해봐야할 것도 분명히 있다. 그냥 '소비자 운동이니까 한계가 뻔하잖아'라는 식의 '이놈의 개량주의자들!'이라는 성급한 비판이 아니라, 지금 우리나라의 공정무역(운동)이 제 방향으로 제대로 가고 있는지 점검하고 개선해 나가자는 측면에서 그렇다.

 

그래도 신문 기사를 쓸 때는, 아직 공정무역 자체가 우리 사회에 낯설기 때문에 기본적인 개념과 상품 설명에 치중할 수 밖에 없어 아쉬움이 많다.

 

공정무역 업체 '얼굴 있는 거래(http://www.efairtrade.co.kr/를 운영하는 2명의 청년들을 만났다. 구명기 대표와 김재규 과장이다.

 

얼굴 있는 거래 구명기 대표/김재규 과장

왼쪽 노란 옷이 구명기 대표, 오른쪽 하늘색 옷이 김재규 과장.

 

 어느 기독교계 모임에서 ‘얼굴 있는 거래’라고 쓰인 명함을 받았다. 회사 이름에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 우리가 그동안 얼굴 없는 거래를 해왔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이름을 잘 지었다.

 서울 청파동의 사무실에 들어서자 두 남자가 축구공에 바람을 넣고 있었다. 구명기(39) 대표와 김재규(35) 과장이었다. ‘얼굴 있는 거래’는 공정무역 상품과 사회적 기업에서 만든 물건을 판매하는 회사다.

 -공정무역 제품은 이미 여러 곳에서 팔고 있는데, ‘얼굴 있는 거래’는 어떤 곳인가요?

 “아직도 공정무역 제품이라면 커피 밖에 없는 줄 아는 분들이 많으세요. 사실 세계적으로 공정무역 제품은 3000 가지가 넘게 있거든요. 저희는 커피와 함께 축구공 초콜렛 옷 비누도 취급하고, 우리나라의 사회적 기업에서 만드는 위켄쿠키와 EM(유용 미생물)세제 등도 팔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2007년 기독청년아카데미의 공동체 지도력 훈련에서 만난 사이다. 이듬해 축구공을 수입하면서 거래를 시작했다.

 -원래 무역일을 하셨나요?
 “저는 학교 졸업한 뒤 개인 무역 사업을 했어요. 원단과 자동차 부품. 과장님은 유통 쪽 회사를 다니시다가 저랑 의기투합했죠.”

 -벌이는 어떤가요.
 “벌이로 치면 이걸 못하죠. 지금은 거의 수익이 없으니까요. 앞으로 3,4년은 버텨볼 생각이에요. 공정무역이라는 가치를 알려가면서 시장 자체를 키워가면 벌이도 될 거라고 생각해요.”

 -두 분은 좋아서 한다지만, 가족들은 어떡하나요.
 “둘 다 미혼입니다.”

-여자친구는 어떡해요?

 “이거... 녹음되나요?”
 

 -공정무역 제품은 어떤 분들이 사시나요?
 “아직은 호기심에서 사는 분들이 많으세요. 기독교계 행사에 다니면서 홍보를 하고 있어요. 그런 행사가 여름에 몰려 있다보니 바빠요. 9월부터는 새로운 물건을 추가해서 쇼핑몰을 새로 단장할 계획이에요.”

 

 얼굴있는거래의 경우 매출의 절반은 주변의 아는 사람들이 사고, 절반은 호기심에서 사는 분들이라고 했다. 세 사람(사무실 근무 인원은 위의 두명에 1명이 더 있음)의 인건비를 최소한으로 계산해서 BEP는 월 1000만원이라고 한다. 현재의 매출은 3분의1이 채 안된다. 그래도 매달 꾸준히 늘고 있다.


 -여기서 파는 축구공은 문방구에서 파는 축구공과 뭐가 다른가요.
 “전세계 축구공의 80%를 파키스탄의 시알콧이라는 동네에서 만들어요. 그 동네의 아이들이 학교도 못 가고 축구공 만드는데 매달리죠. 공정무역 축구공 조합은 우선 아이들은 학교를 보내고 어른들만 일해도 생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정당한 임금을 지불해요. 또 15%의 공정무역 부담금을 내서 마을의 학교를 돕고 식수 시설을 개선하죠.”

 파키스탄 시알콧은 1년에 3500만개의 축구공을 생산한다. 국제축구연맹(FIFA)에서 공인한 축구공도 대부분 여기서 만들어진다. 오각형과 육각형 가죽 32조각을 잇는데 1620번의 바느질이 필요하다. 축구공을 만드는 아이들은 하루 300원을 받는다. 축구공 1개의 가격은 3만∼15만원이다. 축구장 밖에서도 페어 플레이가 필요하다.

 “바나나도 공정무역 제품이 따로 있어요. 바나나 농장에선 농민들이 일하고 있는데 비행기가 떠서 농약을 확 친데요. 공정무역 바나나는 농약을 안 치고 농민의 건강과 환경을 생각해서 재배해요.”

 -비싸겠네요.
 “다른 바나나의 2배 값이죠. 우리나라엔 아직 안 들어와 있어요.”

 구 대표는 박스 안에 있던 옷도 보여줬다.
 “이건 캄보디아에서 만든 옷이에요. 100% 순면인데 직접 손으로 원단을 짜서 마 같은 느낌이 나죠. 디자인은 우리나라 선교사께서 하셨어요. 옷 한벌 만드는데 한달 반 정도 걸려요. 유기농 천연염색에 캄보디아의 전통적인 한방재료가 들어갔어요. 옷 값이 비싸도 이해가 되잖아요?”

 -그래도 아직 커피 말고 다른 공정무역 제품은 잘 팔리지 않는 것 같네요.
 “커피만 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일단 이윤을 남기기가 쉬워요. 또 아직은 공정무역 제품이 유럽에서 주문해서 제3세계가 생산하는 방식이니까 커피 외에 우리나라 사람의 기호에 맞는 제품을 찾기가 어려워요. 포장을 다시 하는 것도 공정무역 취지와는 어긋나거든요. 현지에서 포장한 그대로 판매하다보니 품질이나 가격에 비해 포장이 허술해서 ‘비싸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세요.”

 

포장의 문제는 심각해 보였다. 초콜렛의 경우 카카오 비율도 높고 완전 유기농인데다가 미국에서 최종 생산을 하기 때문에 모양도 세련됐다. 가격도 1만5000원으로, 제과점에서 파는 비싼 초콜렛에 비해 경쟁력이 있는 제품이었다. 하지만 누런 골판지 박스에 포장돼 스티커만 달랑 붙어 있어서 무슨 밀수품처럼 보였다.

 

축구공이라든지 다른 제품들도 포장의 디자인만 조금 럭셔리하게 꾸미면 충분히 제 값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공정무역 제품의 값이 비싸다고 하지만, 똑같은 품질에 나이키나 네슬레 스타벅스 등등의 세계적인 상표가 붙었다고 생각하면 결코 비싼 값은 아니다.

 

공정무역 제품 중 커피만 잘 팔리는 이유도, 커피는 생산지에서 최종 패키지가 별로 차이가 없고 소비지에서 다시 최종가공돼 음료로 팔리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확실히 커피만 잘 팔리는 공정무역 운동은 '스타일' 살리기 같은 잠깐의 유행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이 문제를 개선하려면 우리나라에서 직접 [공정무역] 인증을 해 줄 수 있는 기관이 있어야하고, 우리 기호에 맞는 패키지 디자인과 상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현지에서 직접 활동하는 '공정무역 디자이너' '공정무역 바이어'가 필요해 보인다.

 

아, 그리고 공정무역의 틀에 갇혀 더 큰 그림-유통의 문제와 국내 생산자의 문제, 생산자와 소비자의 연대-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해서도 안된다.


 -우리나라 농민들도 좀 생각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맞아요. 그래서 우리나라에 기존의 생산자가 있는 제품들, 예를 들어 비누 과일쨈 신발 같은 제품은 공정무역 제품이라도 수입하기가 곤란하죠. 저희가 파는 쿠키와 비누는 우리나라의 장애인 분들이 만든 제품입니다.”

 -두 분은 그럼 대기업에서 만든 과자는 안 먹고 장애인들이 만든 쿠키만 드세요?
 “제가 사 먹을 때는 이것만 먹어요. 다른 모음에 가면 다른 과자들도 주니까 그럴 때 먹죠.”

 -교회에서 단체로 사가면 좋겠는데.
 “시험적으로 한번씩 사가는 경우는 있으신데, 기존의 거래처가 있기 때문에 당장 바꾸기는 힘드나 봐요. 대학생 선교단체들도 관심이 많은데 가격을 부담스러워하고…. 그래도 매출은 다달이 늘어나고 있어요. 한동대 매점에서 저희 커피를 팔고 있어요.”

 -우리나라의 공정무역 운동은 소비자들에게 조금 더 비싼(정당한) 가격을 치르라는 점만 강조하고, 실제 생산자와 소비자가 연대감을 갖도록 하는 노력은 부족한 느낌이에요.
 “아직 공정무역 제품 시장이 작다보니까, 몇 곳을 빼고는 간접 수입해 오는 수준에 머물러 있어요. 저희도 지금은 기존의 생산자 조합 제품을 들여오는데, 앞으로는 직접 현지 마을을 찾아가 상품을 개발하고 싶어요. 지금은 공정무역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공부 모임을 운영하고 있어요.”

 -기독교인이 공정무역에 동참해야하는 이유, 설명해 주세요.
 “예수님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사랑하셨잖아요. 우리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을 하는 거죠. 공정무역 운동 자체가 유럽의 기독교인들이 시작했어요.”

 

 -공정무역 제품을 보면, 아직은 '좋은 뜻이 있으니까 돈 내서 사보자'라는 약간의 희생이랄까 명분을 거절하지 못해서 사는 수준이지 '야 이거 정말 좋네. 돈 낼 가치가 있어'라며 즐겁게 소비할 수 있는 수준까지 못 간 것 같아요.

 “저희도 느끼는 부분인데, 앞으로 노력해야할 부분이지요.어쨌든 공정무역 운동은 생산자를 알리고 이런 운동도 있다는 걸 홍보하는데 그쳐선 의미가 없고 직접 그 물건을 사고 소비하는 실천까지 이어져야한다는 점에 의미가 있어요.”

 

 -다단계회사인 암웨이를 보면 별의 별 물건을 다 다단계 제품으로 생산하잖아요. 자기네 제품이 좋다면서 비싼 값에 팔고... 근데 거기에 빠진 사람들은 집안의 모든 물건이 다 암웨이에요. 공정무역 운동하는 사람들도 다단계를 좀 배워야할 필요가 있겠어요.

 

 다 함께 웃었다. 웃고 말았다. 착한 경제는 결과 뿐만 아니라 방법도 착해야하니까.

 

 착한 경제에 형용사를 하나 더 붙여야 할 것 같다.

 

 '즐거운' 착한 경제... 이런 걸 만들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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