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 염전을 가다

석양의 염전

해질녘이면 염전은 바빠진다. 국민일보 최종학 기자

 염전 취재를 위해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다는 전남 신안앞바다 증도의 태평염전에 다녀왔습니다.
 소금은 바다의 상처, 바다의 눈물이라고 어떤 시인은 노래했습니다. 태평염전에서 33년을 일해온 이문석(73) 선생님은 “소금은 염부(鹽夫)의 땀”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선생님의 말씀이 더 마음에 드네요.


 네비게이션에서 ‘지도읍사무소’를 찍어서 달리다가 신안군 지도읍 지신개 선착장에 도착했습니다. 낮 12시30분에 떠나는 철부선을 타고 뱃길을 10분 동안 달려 증도에 내렸습니다. 선착장 바로 앞이 염전이었습니다. 뜨거운 햇살 속에 소금 냄새가 섞여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 염부의 땀냄새였을까요.(사진은 모두 국민일보 최종학 기자의 사진입니다.)

 


 햇살은 따가웠지만 바람이 시원했습니다. “소금 내기에는 좋은 날씨”라고 누군가 말했습니다. 염전 입구에는 '소금박물관'이 있었습니다.

 1년 중 염전에서 소금을 내는 시기는 4월 중순부터 9월까지입니다. 그 중에서도 늦봄부터 여름 장마 직전까지인 요즘 생산된 소금이 가장 좋습니다. 이 시기가 넘어가면 “사람 먹기에는 좋지 않다”고 합니다.


 이 곳의 염전은 원래 바다였습니다. 6.25 전쟁이 끝난 뒤 피난민들의 생계대책으로 염전이 만들어졌습니다. 피난민들은 증도와 대초도 사이 바다를 가로 막아 460만 ㎡의 소금밭을 일궜습니다. 철부선 제1증도호 선장 남경조(64)씨는 “이북에서 온 사람들이 배급 받은 밀가루로 빵을 만들어 팔고, 남의 집 처마 밑에 나무 판대기를 덧대어 살면서 염전을 만들었다”면서 “그 사람들이 생활력은 엄청나게 강하드만”이라고 말했습니다.

위성사진에서 본 태평염전

두 섬 가운데 태양열판처럼 생긴 것이 태평염전입니다. 네이버지도 위성사진

 

 태평염전의 드넓은 염전에선 칸칸마다 1㎝ 안쪽의 높이로 깔린 바닷물이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유럽이나 아메리카 대륙 쪽의 염전은 보통 15㎝ 이상 깊이로 물을 깝니다. 햇살도 뜨겁고 바닷물의 염도도 높기 때문입니다. 염전에 소금도 엄청나게 두껍게 깔리지요. 불도저로 밀 정도니까요. 대신 염도가 높습니다. 97도, 즉 97% 이상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햇살도 상대적으로 약하고 바닷물의 염도도 낮아 1㎝정도로 낮게 깝니다. 자연히 염도도 85% 정도로 굉장히 낮고, 노동생산력도 낮습니다. 대신 바닷물의 미네랄 성분이 많이 들어가 세계에서 가장 좋은 천일염이라고 합니다. 얼마전까지만해도 이 ‘미네랄 성분’을 불순물이라고 천대하면서 천일염을 식품에 쓰는 것을 금지하기까지 했는데, 이제는 이것 때문에 오히려 건강식품, 세계 제일의 천일염 대우를 받고 있으니 바다가 염전이 된 것보다 더 큰 변화인 셈입니다.

 

 염전에 들어서니 가운데 소금 창고가 늘어서 있고, 양쪽으로 염전이 쭈욱 펼쳐져 있습니다.
염전은 소금창고 있는 반대쪽 바깥쪽부터 난치(1차 증발지·약 12칸), 누테(2차 증발지·약 4칸), 결정지(약 4칸)로 나뉩니다. 난치에서 결정지까지 약 20칸 정도 되는 것이죠. 한칸은 가로세로 약 14미터이며 한칸씩 옮길 때마다 바닥이 3∼7㎝씩 낮아집니다. 원래는 높이 차이가 7.7㎝인데, 염전을 오래쓰다 보면 높이 차이가 줄어든다고 합니다. 결정지에는 바닥에 검은 매트를 깔아 소금을 깨끗하게 거둬들입니다.


 바닷물에서 소금을 내는 과정은, 과학적으로 표현하면 바닷물의 염도(2도)를 27도 이상으로 끌어올려 염화나트륨의 결정을 거두는 작업입니다. 약 25일이 걸립니다.

 


 인류가 소금을 섭취하기 시작한 것은 수렵 생활에서 농경 생활로 넘어갈 때라고 합니다. 고기를 먹을 땐 따로 소금을 먹을 필요가 없었지만, 농작물을 먹으면서 소금을 따로 먹어야 했던거죠.

 재미있는 것은, 인류가 전세계로 흩어진 것도 소금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인류가 수렵 생활을 할 때에 최고의 사냥감이 바로 맘모스였다고 하는데, 이 맘모스가 이동한 경로를 ‘맘모스스텝’이라고 부른답니다. 맘모스는 바로 소금을 찾아 이동했기 때문에 맘모스스텝은 다른 이름으로 소금길이라고 부를 수 있답니다(태평염전 소금박물관). 자연히 인류도 맘모스를 따라 이동했구요. 짤쯔부르크, 할슈타트, 솔트레이크시티 같은 도시 이름도 소금과 관련이 있고, 솔져(soldier),샐러리(salary) 같은 영어 단어도 소금을 급료로 주던 때의 풍습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바닷물에서 소금을 얻기 시작한 것은 아까 말씀드렸듯이 농경 생활을 하면서 부터라고 추정되고, 처음으로 온전한 형태의 염전이 만들어진 것은 9세기경 대서양 주변 바다였습니다. 13세기에는 염전을 갖고 있는 프랑스 남부 지역의 제후들이 큰 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마녀사냥이 횡행하던 17세기 유럽에선, 마녀가 소금을 싫어한다고 생각해서 소금이 없는 집에 마녀가 산다고 여겼다죠. 소금이 귀하던 때였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이 더 많이 희생됐을 것 같습니다.

 중세 수도승들은 몸이 피곤할 때 소금물로 목욕을 했고, 세종대왕도 밤늦게까지 책을 읽다가 소금물을 마시곤 했답니다.

 

 소금을 만드는 일은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큰 사리 때부터 시작됩니다(반대로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조금 밖에 안 될 때를 ‘조금’이라고 합니다). 염부들은 사리 때 저수지를 열어 바닷물을 채웁니다.


 그런데 저수지에 바닷물을 넣는 이 일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정부가 ‘염수제조허가’를 준 사람만 할 수 있다네요. 사실 바닷물이나 저수지의 염수나 다를 것은 없지만, 예전에 나라에서 소금 전매제를 실시했던 것처럼, 지금도 소금 생산량을 조절하기 위해 ‘염수제조허가권’을 나라가 가지고 있는 것이죠.

 

 염부들은 염전에서 월급을 받고 일하는 사람보다는, 소작농이 논농사를 짓듯이 염전을 빌려 소금농사를 지어 염전에 되파는 사람이 더 많았습니다. 그러고보니 소금 캐는 일은 농사 짓는 것과 비슷했습니다. 소금에도 풍년과 흉년이 있는데, 햇살이 좋고 바람이 적당히 불면 맛좋은 소금이 많이 생산되니 풍년이고, 태풍이 오거나 비가 많으면 소금이 적게 나오고, 햇살이 너무 강해도 소금맛이 좋지 않아 흉년이라고 합니다.

 소금을 캐는 염부들의 정성도 농부 못지 않았습니다. 황사가 오면 염전을 덮어줘야하구요, 비가 오면 해주(낮은 지붕이 있는 염전)로 물을 옮겨놓아야합니다. 해주는 여름철에 비가 많은 우리나라에만 있다는데요, 1970년대에 염부들이 개발했다고 합니다.

 


 바닷물은 난치에 들어온 뒤 거의 매일 한칸씩 아래로 옮겨지는데, 보우메(염도계)로 염도를 재어서 8도가 넘으면 누테로, 다시 25도를 넘으면 결정지로 보내집니다. 바닥에 검은 매트가 깔린 결정지에 물을 넣는 것을 염부들은 ‘소금 앉힌다’고 합니다.


 한여름 뙤약볕의 염전일은 천하장사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22년 동안 염전 일을 해온 심만수(73)씨는 일을 하면서도 “이틀전에 온 일꾼 2명이 오늘 아침 도망가 버렸다”며 투덜거리시더군요. 그만큼 힘들다는 것이겠죠.

 심 선생님의 피부는 얼굴부터 발 끝까지 까만 색에 가까운 구리빛이었습니다. 햇볕을 많이 받은 뒷덜미는 가뭄의 논바닥처럼 말라 갈라져 있었지만 다른 곳은 소금처럼 반질반질했고,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온 몸이 근육질이었습니다. 다른 염부들도 마찬가지로 피부가 검붉고 반질반질했습니다. 한참 바쁠 때는 염부들도 염전의 숙소에서 같이 생활하면서 소금농사를 짓습니다.

 

 염부들은 햇볕이 뜨거운 한낮에는 작업을 하지 않습니다. 햇살이 약해지는 오후 3시 이후 염전에 나와 때론 밤늦게까지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한여름에는 새벽 일을 하기도 합니다.


 염도가 27도를 넘으면 ‘소금이 온다’고 하는데요, 염부들이 소금꽃이라고 부르는 하얀 소금 입자가 물표면에 맺히기 시작하는 것이죠.

 

소금꽃

소금꽃

 

 반나절에서 하루쯤 지나면 소금꽃이 살이 찌면서 작은 주사위 모양으로 가라앉습니다. 태초부터 바닷속에 녹아 있던 소금이 처음으로 우유빛 자태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 선생님은 “처음 염전에 나왔을 때, 점심을 먹고 나오면 소금꽃이 물위를 뱅뱅 돌다가 그늘에서 낮잠을 한숨 자고 오면 물 속에 딱 가라앉아 있는게 참 신기했다”고 합니다.

 


 한낮에는 한가로워 보였던 염전인데, 햇살이 한풀 꺽이고 소금이 가라앉기 시작하자 염부들의 움직임이 바빠졌습니다. 대파라고 부르는 큰 나무밀대로 하얀 소금산을 쌓고, 외발 수레에 실어 소금 창고로 옮겨놓아야합니다. 다시 결정지의 물을 뺀 뒤 보우메로 누테의 물을 측정해 결정지로 보낼지 결정해야 하겠지요. 야간작업을 하지 않으려면 해가 지기 전에 모든 작업을 마무리해야 하니 대파질을 쉴 틈이 없습니다.

 

 

 그래도 오늘은 햇살도 좋았고 바람도 적당해 보람이 있었습니다. 옛대초도 쪽으로 넘어가는 붉은 해를 배경으로 부지런히 대파를 미는 염부들의 얼굴에도 소금꽃이 피었습니다.

 


 소금창고는 바닥에 물길을 내고 나무판자를 깐 뒤 다시 나무를 세워 짓습니다. 큰 것은 260㎡ 규모라고 합니다. 30㎏짜리 소금푸대가 2만4000개까지 들어간다네요. 소금은 창고 안의 어둠 속에서 6개월 이상을 머물며 물기(간수)를 쏙 뺍니다. 포도주처럼 소금도 어둠 속에 더 오래 머물수록 쓴 맛은 줄어들고 짠 맛은 부드러워진다네요. 그래서 3∼5년쯤 묵은 소금이 더 좋답니다.

 

소금창고 안

소금을 창고에 쌓는 모습


 동의보감에 소금은 ‘본성이 따뜻하고 맛이 짜며 독이 없다. 귀사 고사증 독기를 다스리고 증오와 심통, 곽란과 심복의 급통과 하부의 익창을 고친다’고 적혀있습니다. 독기와 증오를 다스리는 효능이 있다고 하니, 요즘처럼 독한 말을 하기 좋아하는 세상이라서 사람들이 더 많은 소금을 먹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소금은 음식 맛을 내거나 썩는 것을 막는데만 쓰이는게 아니라, 도자기 만들 때, 폴리에스테르 같은 합성섬유를 만드는데, 치약, 아이스크림, 종이, 비료, 샴푸, 플라스틱, 유리를 만드는데도 쓰입니다.

 소금창고에서 묵힌 소금은 다시 공장으로 옮겨져 포장돼 시중에 팔립니다. 태평염전에서는 하루에 약 100푸대(30㎏기준) 정도 생산됩니다. 지금도 소금을 배로 실어 나르는데, 내년에 다리가 개통되면 차로 직접 나를 수 있게 되겠죠. 지금 같은 철부선도 없던 예전에는 나룻배를 타고 다녔는데, 증도에서 태어나신 분들 중에는 평생 목포에도 못가보신 분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전세계에서 연간 생산되는 소금은 약 2억6000만톤. 우리나라에서는 천일염만 30만톤을 생산합니다. 세계적으로는 60%가 암염이고, 천일염 중에서도 염전에서 순수하게 햇살과 바람만으로 소금을 만드는 곳은 아주 적은 편이라고 합니다. 프랑스 게랑드에서 생산하는 천일염이 연간 1만2000톤, 포르투갈에서도 7000톤 정도의 천일염이 생산되니 우리나라에서 꽤 많이 나오는 편이죠. 소금 1kg을 얻으려면 바닷물 33리터가 있어야합니다.


 염전은 환경오염이 없기 때문에 해조류나 갑각류가 많이 자랍니다. 여린 물풀도 많구요. 또 이걸 잡아먹고 사는 물새들도 일년 내내 모여듭니다.

 


 겨울에도 염부들은 쉬지 못합니다. 허물어진 곳은 다대기로 내리쳐가면서 메우고 허물어진 둑과 물꼬도 손보고 염전도 갈아엎어야합니다. 이씨는 “봄에 농사를 짓기 전에 농부들이 쟁기로 밭을 갈듯이, 난치와 누테의 갯벌흙도 한번씩 갈아엎어 줘야 미네랄이 풍부하고 맛이 좋은 소금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말 농사짓는 것과 똑같네요.

 

(참고 : 소금아, 고마워-나탈리 토르지만/영교/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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