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을 이명박이라고 하지 못하는 경찰들...

서울 혜화경찰서에서 촛불기도회를 한 목사님들을 불법시위 혐의로 조사한다는 기사('경찰, 시국기도회 참석 목회자 소환 물의')를 썼더니, 혜화경찰서에서 다음날 해명자료를 만들어서 배포했다.

 

해명자료에는, 목사님들이 기도회를 한게 아니라 대통령을 비난하는 정치적인 구호를 외치면서 가두행진을 했다는 내용을 구구절절이 써 놓았다. 해명자료 내용을 원문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

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들 13명 수사 관련 상황

 

□  관련 움직임

 ◎ 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들(대표 김경호 목사, 舊 광우병기독교대책회의<’08.6.5 결성, 250여명>),

   - 지난 6.11 19:00∼20:00 목회자 등 70여명, 연지동 기독교회관 2층 강당에서 ‘민중생존권 사회공공성 생태계 생명을 파괴하는 한미FTA 저지를 위한 기도회’ 개최 후

   - 20:00경 同 회원 40여명, 기독교회관 정문 앞 공터 집결, ‘ 000정부 실정 규탄 및 민주회복을 위한 촛불기도회’를 개최 후

 *참석자 전원 촛불컵을 들고 플래카드 2개(000정부 실정 규탄 및 민주 회복을 위한 시국기도회 4.5x1m, 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들 0.7x1m) 및 피켓 1개(정치검찰 국정조사 신대법관 탄핵소추 독재정권타도 0.7x0.5m)를 소지

 

<관련 상황(6.11)>

 사회자(김성윤 집행위원장)의 선창으로 구호 제창(살인마 ○○○을 규탄한다, 민주주의 파괴하는 ○○○ 퇴진하라) 및 정치성 자유발언 등의 순서로 불법집회가 계속되어, 종결선언(21:05)을 요청하자,

 사회자는 광고를 통해 “우리 모두 촛불을 들고 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 행진을 하자”고 선동,

 기독교회관 정문 앞에서 종로5가 방향 인도를 이용, 40여명이 촛불을 들고 행진(약 100m)하는 과정에서

 위 사회자가 선두에서 소형 핸드 마이크를 이용, “살인마 ○○○ 규탄한다. 민주주의 파괴하는 ○○○ 퇴진하라” 등의 구호를 선창하자, 그 뒤를 따르던 40여명은 위와 같은 구호를 제창함에 따라

 혜화서에서 同 사회자를 상대로 미신고 불법 집회임을 지속 고지하고 즉시 해산할 것을 경고하였으나 同人은 “잡아 가서 구속시키던지 마음대로 하라”는 반응을 보였으며,

 21:10경 종로5가R 부근 GS25 편의점 앞 인도상에서 대비 경력이 더 이상 행진하지 못하도록 제지하자

 同 사회자는 소형 핸드 마이크를 이용하여 위 내용의 구호 제창, 피켓, 정치성 자유발언(경찰이 우리의 행진을 막고 있는 것은 ○○○정부의 행태를 국민에게 알리고 있는 것이다) 등이 계속 되어

 혜화서에서 자진해산 요청(21:10), 1차 해산명령(21:17), 2차 해산명령(21:35), 3차 해산명령(21:45)을 발하면서 즉시 해산할 것을 지속 경고하였으나,
 

 해산명령에 불응하고, 각자 손에 촛불을 들고 재차 행진(종로5가R→효제초등학교→기독교회관) 하며 구호 제창(살인마 ○○○규탄한다, 민주주의 파괴하는 ○○○ 퇴진하라) 등을 한 후, 기독교회관 정문 앞에서 정리집회 후 해산

 

□ 조 치: 관련자 13명, 불법시위 등 혐의로 수사중

 

-----------------------------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기독교회관에서 종로5가로터리까지는 100미터도 채 안되는 거리다. 게다가 인도를 따라 걸었다. 그게 무슨 불법집회라고...

 

그런데 더 웃기는 것은, 해명자료 중에 틀림없이 '이명박'이라는 세 글자가 적혀 있어야할 부분이 모두 ○○○으로 처리돼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니, 대통령 이름이 무슨 해리포터에 나오는 볼드몰트(해리포터 소설에서 악의 마법사인 볼드몰트는 마법사들 세계에서 너무 무서운 존재여서 이름도 부르지 못하고 그냥 'You-Know-Who'라고 부른다)도 아니고, 성경에 나오는 야훼(성경에서는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감히 문자로 기록하지 못해 YHWH/יהוה라고 쓰고 '주님' 혹은 '거룩한 분' 이런 식으로 읽었다)는 더더욱 아닐텐데 왜 이명박을 이명박이라고 못하고 ○○○이라고 했을까.

 

물론 정부의 모든 문서에서 이명박이라는 세글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한국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한 결과를 발표할 때 청와대가 '대한민국 ○○○ 대통령과 미합중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라고 할 리 만무하다.

 

아마도 혜화경찰서에는 목사님들이 외친 '살인마 이명박' '이명박 퇴진하라' 같은 구호를, 차마 정부문서에 쓸 수 없어 ○○○이라고 표기한 것이리라.

 

헛웃음이 나오는데, 어, 그럼 노무현 대통령 때는 어떻게 했지?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런데 조금 생각해보니 부질없는 궁금증인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 때는 종로5가 골목이 아니라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목사님들 수백 수천명이 모여서 "노무현 빨갱이" "노무현을 규탄한다" 등등의 구호를 외쳤고 당당하게 도로로 내려서서 시가행진까지 했어도 경찰에서 '불법시위' 혐의로 소환하거나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니 이런 해명자료를 낼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은 마찬가진데 경찰은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세월호 7시간, 박근혜 청와대의 거짓말

아래한글로 전자책 만들기 hwp2epub

“저도 노래 잘하는 사람이 부러워요” 테너 박현재 서울대 교수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