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 지구를 뒤덮다



 2005년이었다. 케냐 나이로비에 갔다. 거기서 아프리카 최대의 슬럼가라는 키베라를 방문했다. 그 거대한 규모의 슬럼에 하수도도, 도로도, 골목도 없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길을 내고 식당을 내고 구멍가게와 당구장과 미용실을 내고 시장을 만들었다. 최악의 주거 상황에 왁자지껄함이 한데 어울린 그 풍경은 압도적이었다.

키베라

키베라 입구의 시장.



 키베라를 빠져나오다 시장 입구에서 신문을 팔고 있는 남자를 보았다. 영자신문을 팔고 있으니 영어가 될 것 같아 다가가서 말을 붙였다. 헬로, 하와유, 이렇게 말을 걸다가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여기는 아프리카 아닌가. 정글 속는 나무 열매가 있고 짐승이 있는데, 거기서 살면 최소한 굶어죽지는 않을텐데 왜 도시로 와서 이렇게 무지막지한 슬럼에 사는 것인가. 여기서 가난하게 사는 것보다 정글에서 사는게 더 낫지 않은가?”


 그 남자는 웃으면서 답했다.


 “아니다. 숲속에 살면 굶어 죽는다. 물도 없고 짐승도 잡기 어렵고 먹을 것도 부족하다. 만약 내가 계속 숲속에 살았다면 우리 아이들은 다 굶어죽었을 것이다. 그래도 키베라에 오면 최소한 굶어죽지는 않는다.”

 

키베라의 신문팔이 아저씨

바로 이 아저씨다. 앞쪽에 잠바를 입고 웃고 있는 아저씨.


 

 슬럼, 지구를 뒤덮다


 

 21세기 초. 인류는 어디까지 왔을까.


 유엔에 따르면, 2009년 현재 인류의 절반 이상은 도시에 산다. 이미 2007년에 전세계 도시 인구는 농촌인구를 넘어섰다. 수렵생활, 채집생활, 농경생활을 해온 인류가 도시라는 전혀 낯설고 새로운 삶의 형태에 들어선 것이다.


 수렵 시대의 인류는 생존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했다.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 지식과 정보를 동원해 채집 시대를 열었고, 다시 농경 시대는 열었다. 이런 인류의 역사를 자연의 도전과 인간의 응전으로 설명한 사람도 있다.


 이 모든 시대를 지나 도시 시대가 열렸다. 이제 인류는 자연의 도전을 완전히 극복한 것처럼 보인다. 목숨 걸고 사냥할 필요 없이 정육점에서 고기를 떼오면 되고, 힘겨운 채집과 농경 대신 대형 마트에서 카트에 물건을 실으면 되는 인류가 더 많아졌다는 뜻이다.


 그러나 전혀 새로운 도전이 인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도시빈민가, 슬럼이다.



 슬럼, 준슬럼, 수퍼슬럼. 이것이 도시 진화의 결과다 -페트릭 게디스(도시의 역사)


 


 2001년 슬럼 주민 수는 9억명이었던 것이 2005년 10억명을 넘어섰고 올해 이미 12억명에 다다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전체 도시 인구의 3분의1을 넘는 숫자다. 여기에 슬럼에 살지 않더라도 사실상 빈곤상태에 있는 도시 거주자의 숫자를 합치면, 도시 인구의 절반 이상이 빈민이다.


 슬럼은 이미 지구를 정복하고 있다. 유럽 북미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를 가리지 않고 전세계 거대도시마다 도시보다 더 큰 슬럼이 형성되고 있다. 거대 슬럼의 숫자는 20만개가 넘는다. 슬럼은 질병 범죄 기아 공해 아동학대 여성차별 마약 착취공장(sewatshop) 등 21세기 초 인류가 직면한 거의 모든 문제가 집약된 곳이다. 인간은 자연의 위협이 아니라 이제 인간 스스로 만들어낸 환경, 도시 슬럼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greport2003.gif

이미지출처 : www.unhabitat.org

 ‘슬럼의 도전(The challenge of Slums)’은 유엔해비타트가 2003년 펴낸 책의 타이틀이기도 하다.

 

 이 책에 따르면, 인류가 아무런 대책을 시행하지 않는다면 2030년에 슬럼 거주자는 20억명이 넘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세계 도시 거주자의 31.6%에 이르는 9억2398만6000명이 슬럼에 거주하며, 개발도상국에서는 도시거주자의 43%, 후진국에선 78.2%가 슬럼에 살고 있다고 통계를 냈다. 선진국에서도 도시인구의 6%가 슬럼과 같은 조건에서 거주하고 있다.


악명 높은 인도 캘커타의 슬럼가에서는 41%의 가족가 30년 이상 슬럼에서 살아왔으며, 아프리카에서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인구의 40∼70%가 슬럼에서 살고 있다. 이 인구는 향후 20년간 2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프리카 동부의 중심 도시인 나이로비의 경우 인구의 60%가 토지의 5%에 해당하는 슬럼에 살고 있다. 대부분의 슬럼 거주자들은 정식 직장 없이 일용직이나 가내수공업으로 연명하지만, 인도나 나이지리아 같은 곳에서는 대학 강사나 대학생, 공무원들도 슬럼에 거주한다.


 재미있는 통계도 소개하고 있다. 개발도상국에서는 4개 나라 중 1 나라 꼴로 여성의 토지소유와 주택담보대출을 규제하고 있다. 방콕의 슬럼가에서는 모든 집에 컬러 텔레비전이 있고, 재즈나 블루스, 레게와 힙합 등 다양한 예술적 표현이 슬럼에서 탄생했다.

200906442.jpg

이미지출처 : blog.jinbo.net

 UC어바인의 마이크 데이비스 교수가 쓴 ‘슬럼, 지구를 뒤덮다(Planet of Slums)’는 슬럼의 현실을 좀더 극명하게 묘사하고 있다. 마치 우리나라의 6.25 직후 달동네나 미국의 서부시대처럼, 제3세계에서 슬럼은 2차대전 이후 피식민지 국가들의 독립이 이뤄지면서 ‘빈 땅에 먼저 들어가 판자집 짓기’식으로 확산되었다. 경제성장기에는 산업화의 영향으로 농촌 인구가 도시로 몰려오면서 슬럼이 탄생했다. 80년대 이후 제조업이 약해지고 경제가 침체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제 도시로 인구유입이 중단되고 슬럼도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그 뒤에도 사람들은 도시로 몰려들었고 슬럼은 더 빠른 속도로 확장됐다. ”더 이상 농촌에 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내가 키베라의 시장 입구에서 만난 그 남자처럼.

슬럼은 왜 없어지지 않는가


 슬럼이 도시 외곽으로 확산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더 잔혹하다. 일단 슬럼이 만들어지면, 대부분의 언론과 정치가들은 “슬럼에도 사회기반시설이 필요하다”며 도로를 만들고 수도와 전기를 공급하라고 주장한다. 일부 가옥은 합법화하고 토지점유권을 허용하기도 한다. 이 때 슬며시 “슬럼 지역의 토지 소유권”을 주장하는 이들이 등장한다. 주로 고위공무원이나 경찰, 정치가, 혹은 대지주다. 이들은 슬럼에서 주민들을 내쫓고 ‘도시근교의 주택가’로 자기 땅을 개발한다. 떼돈을 벌고 돈방석에 앉는다. 공공토지를 오랫동안 점유해 자신의 토지점유권을 인정받은, 지극히 운 좋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쫓겨난다. 이들은 다시 더 바깥쪽에 새로운 슬럼을 만든다.



 이 뿐만이 아니다. 유엔은 도시빈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새천년 개발사업’을 벌이지만 그 돈은 대부분 건설업자나 중간유통업자, 슬럼에 진출한 선진국의 개발사업체, 후진국에서 선진국식 생활방식을 영유하는 NGO종사자들에게 들어간다.


 데이비스 교수는 전세계 곳곳에서 실제로 벌어진 사례를 동원해 이런 과정을 생생하게 설명한다.


 미얀마 정부는 1996년을 ‘미얀마 방문의 해’로 정하고 양곤과 만달레이에서 150만명의 주민을 쫓아냈다. 이 과정에서 슬럼가에 불을 지르는 일까지 지원했다.(세계에서 가장 화재 발생 위험이 높은 곳은? 지중해 관목지? 호주 유칼리 삼림지? 정답은 슬럼이다.) 쫓겨난 주민들은 도시 변두리에 대나무와 짚으로 판자집을 만들어 다시 슬럼가를 형성했다. 원래 살던 곳은 며칠 사이에 불도저로 싹 청소되고 그곳에서는 서양인 관광객이나 일본 사업가를 위한 골프장이 들어섰다.


 제3세계 슬럼가 전역에서 가장 유력한 성장 산업 중 하나는 유료화장실이다. 가나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화장실이 ‘민영화’되었다. 한 가족이 하루 1번 화장실을 이용하는 요금은 기본급의 약 10%다. 케냐의 민영화장실 1회사용료는 6센트다. 인도의 22개 슬럼을 조사한 결과, 변소가 전혀 없는 곳이 9곳이었고, 10개의 슬럼 10만2000명은 19개의 변소를 공공으로 사용했다. 키베라의 한 구역인 라이니사바에서는 1998년 4만명의 주민이 10개의 구덩이를 변소로 사용했다. 조류독감, 돼지독감 같은 신종 전염병이 등장하고 확산되는 곳도 바로 슬럼이다.

 


 

달동네가 사라진 한국, 장래에는?


 

 데이비스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국 도시의 역사도 간략하게 서술하는데 상당히 정확하다. 데이비스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근대 도시 가운데 서울만큼 극적인 변화를 겪은 도시가 없다”며 “국가와 기업이 사적 이윤을 위해 민중의 공간을 불도저로 밀어내고 부유층 문화를 확산시킬 때, 서울의 노동자주민들은 도시에 대한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진보적 학생운동 및 노동운동과 연대하여 국가와 기업의 철거 책략에 맞섰던 영웅적 투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는 서울의 역사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썼다.

 이 책의 말미에는 우석훈씨가 한국의 슬럼 상황에 대해 쓴 글이 덧붙어 있다. 그는 한국의 상황에 대해 데이비스보다 좀 더 비관적이다. 우석훈은 우리나라에서도 “본격적인 슬럼이 등장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그리고 이 슬럼에 거주하게 될 사람들은 부모에게 집을 물려받지 못할 지금의 10대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는데, 그 이유는 우리나라에서도 중산층과 도시빈민의 거주지역 격리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집값이 지나치게 빨리 올라가고 있다는 점이다.

 

쉽게 말하자면, 타워펠리스나 무슨 캐슬 파크처럼 아예 철옹성처럼 만들어진 고급거주지가 늘어나고 있고 동시에 쪽방·옥탑방보다 더욱 열악한 고시원이 급증하는 현상에서 과거 ‘판자촌’‘달동네’와 같은 슬럼이 다시 등장할 조짐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조짐으로는 경마 복권 바다이야기 같은 ‘카지노 경제’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인데, 이것은 정상적인 경제상황에서 이탈해 ‘모 아니면 도’에 목숨 거는 비공식경제의 규모가 커지고 있다는 증거로서 빈민층이 급증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k1l47AydMTr6u0FeMYOTJjnZcvdeVIdtIYFiG6MeF90,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세월호 7시간, 박근혜 청와대의 거짓말

아래한글로 전자책 만들기 hwp2epub

“저도 노래 잘하는 사람이 부러워요” 테너 박현재 서울대 교수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