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저널리스트에게

6001575.jpg

이미지출처 : www.yes24.com


 기자가 되고 싶어 다 합격한 대기업 자리도 포기했다는 녀석에게 주려고 이 책을 샀다가, 내가 홀라당 다 읽어버렸다. 그것도 줄까지 쳐가면서.

 저널리즘에 대한 회의와 불신이 팽배한 것은 미국도 마찬가지인가보다. 하지만 지은이는 저널리스트라는 직업과 직업윤리에 대한 강한 애착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그것이 좋았다.

 

  뉴욕타임스 기자 출신의 콜럼비아대 저널리즘스쿨 새뮤얼 프리드먼 교수가 쓴 ‘Letters to a young journalist’를 중앙일보 기자를 지낸 조우석씨가 번역했다.

 

 조우석씨가 중간중간 책에서 얘기하는 미국 언론과 한국 언론의 현실을 비교한 주석을 달아놓았다.

 

 읽으며 밑줄친 대목들을 소개하고 싶다. 까만색은 책에서 발췌한 부분이고 붉은 색은 내 생각이다.

 


 생물학적으로 나이 든다는 것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바로 지금 확신을 가지고 수행하는 글쓰기 행위야말로 자신을 곧추세우는 힘이다.(25쪽)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수준 높은 분석이나 의미 있는 새로운 사실을 편견 없이 맨눈으로 접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 분석과 사실이란 사람들이 품고 있는 고정관념 내지 신념이 혹시 잘못된 것일 수 있음을 식별해볼 수 있는 훌륭한 거울인데도 말이다.(29쪽)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런 것 아닐까? 자신의 고정관념이나 신념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식별해 줄 수 있는 '사실'을 '맨눈'으로 보는 것 말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실은 없다. 해석만이 있을 뿐'이라는 니체의 말을 신봉하고 있다. 심지어 기자들까지도.

 

 

 저널리즘이 편견과 고정관념에 불과한 허접한 정보들을 전하는 중계탑이 되어서는 안 되며, 그 이상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여기는 저널리스트들이 스스로 세워놓은 목표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당신만의 신념체계와 가치, 고정관념이 따로 있다 하더라도 그것과 상충되는 새로운 팩트, ‘불편한 진실’과 딱 마주쳤을 때는 기왕의 신념체계를 원점에서 검토하는 용기가 실로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것이야말로 저널리즘에서 요구되는 덕목이다.(34쪽)

 

 이것이 저널리스트의 기본이다. 하지만, 취재원을 만날 때마저도 '당신은 어느 편이오'하고 은연중에 묻는 태도를 느낄 때면 당혹스럽다. '나는 당신과 충분히 소통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여기 찾아왔다'고 호소하고 싶을 정도다. 물론 기자가 취재원을 배신해야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기자의 '독립적인 사고'의 결과이어야하지, 데스크의 주문이나 선입견 혹은 기자의 조급함 때문이어선 안된다. 또 그럴 때에도 충분히 인간적인 예의를 지켜야 한다. 그 점에 대해선 아래에 언급돼 있다.

 

 

 “그게 바로 취재라는 거야! 거울 대신 창을 들여다보고, 독백 대신 대화하는 것 말이야! 그걸 너희는 익혀야 돼.”(35쪽)

 

  과학 과목마져도 실험해서 익히기보다는 실험결과를 외워 답을 맞추도록 훈련 받았기 때문일까. 나 자신과의 독백에서 벗어나 세상이라는 우주에 나를 투신하는 것이 늘 어렵고 힘들다.

  

 

 지적 호기심이 살아있는 훌륭한 안목, 용기가 뒷받침된 취재와 탐사기획, 정확한 분석을 담보한 날렵하고 멋진 스타일의 글쓰기는 결코 낡아 빠지거나 유행을 타는 일이 없을 것이다. 아니, 그런 미덕을 두루 갖춘 취재와 보도는 더욱 가치를 인정받게 마련이다.(45쪽)

 

 아멘! 

 

 (일생의 공덕과 죗값을 재는 신 ‘토트Thoth’와 같은 일을 기자가 하고 있다며) 성실하고 정확하게 수행해야 한다. 세상과 남의 운명에 개입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렇게 엄중하게 일을 수행하지 않으면 세상과 우주는 작동을 멈추고 만다.(49∼50쪽)

 

 할렐루야!

 

 내가 요청하는 도덕적 저널리즘은 진정 그 사회와 시대의 증언자 역할에 성실하라는 주문이다. 인간이 연출해내는 위대한 성취의 순간을 함께하며, 사회 부패와 정치 부패에서 보이는, 즉 인간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타락 앞에 우뚝 서서 용기 있게 입을 열라는 것이다.(52∼53쪽)

 

 한마디 보태자면, 용기 있게 입을 열 수 있는 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 늘 안테나를 세우고 신중하게 판단하되, 명확한 것은 발언해야한다. 단, 저널리스트에게 그 발언은 팩트와 팩트가 연결된 문장이어야한다. 감탄사나 명령문이 되어선 안된다.

 

 

 스토리텔러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라. 당신이 본 것을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수준에서, 제3자에게 정확하고 정교하게 설명해줄 수 있어야 한다.(53쪽)

 

 중요한 것은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 과정을 생략하면 '리포팅 머신' 밖에 되지 않는다.

 

 

 증언자가 되는 것, 냉철한 관찰자 역할, 스토리텔러가 되는 것 그리고 각각의 행위에 따르는 테크닉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노력은 또 다른 자질을 전제로 한다. 무엇보다 기자 각자가 독립적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런 의무를 스스로 부과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결정적인 자질이다. ‘독립적인 사고’란 사회적 통념이나 대중이 좋아하는 신념체계에 안주하려는 자세를 거부하는 태도다.(54쪽)

 

 

 저널리스트들은 섣부른 공식을 대입해 눈앞의 현실을 놓고 억지 결론을 내리지 말라. 그건 판박이에 불과하다. (58쪽)

 

 그러나 판단을 미루고 현실의 미세한 결을 깊이 들여다보기엔 마감시간이 너무 임박하다. 언제나 그것이 문제다. 그것을 해결하는 기자가 유능한 기자다.

 

 

 (기자라고 해서) 연민과 동정 등 존엄한 인간으로 가져야 할 가치를 짓밟아서는 결코 안 된다. 그게 중요하다. 즉 저널리즘이란 인간의 풍부한 감성·감정을 꼭꼭 틀어막아버리는 것이 결코 아니다. 되레 거꾸로가 맞다. 감성·감정의 물꼬를 터주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도와야 한다.(64쪽)

 

 언제나 생각해왔던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너무나 상식적이지 않은가. 하지만 이걸 무시하고 놓쳐버릴 때가 얼마나 많은가.

 

 

 (기자는 취재원을 현혹시킨 뒤 결국 이용해먹는 사기꾼이라는 재닛 맬컴의 비난에 대해) 맬컴의 지적 앞에 자격지심 때문에 가슴이 뜨끔할 수 있다. 오해 마시라. 그것은 냉정한 자기 점검의 일환이지, 자기 직업에 대한 혐오는 아니다. 둘은 천양지차다.(90쪽)

 

 기자라는 직업을 혐오하면서 기자로 남아있는 사람=이해할 수 없다.

 

 

 (마이크 세이거의 인터뷰 노하우) 상내가 내 인터뷰에 응할 경우 내 작업의 목표란 너무도 자명합니다. 아무런 편견·고정관념 없이 그 사람의 가치와 신념체계를 드러내기, 바로 그것이지요. 만일 미리 입력돼 있는 고정관념 따위를 저편으로 멀리 밀쳐놓지 못한다면, 결정적인 핵심을 끝내 놓치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 결정적인 요소를 저는 ‘회색을 이루는 섬세한 차이’라고 부르곤 하는데, 그 미세한 그러데이션이야말로 저널리즘은 물론이고 우리네 삶 일반에서 가장 중요하고 풍부한 그 무엇이라고 생각합니다.(95쪽)

 

 그러나 한두시간의 인터뷰 속에 당신 인생의 섬세한 내면을 드러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또 얼마나 겸연쩍은가. 게다가 언론에 대한 불신과 기자가 취재원에게 갖는 원초적인 거리감까지 극복해야하니, 인터뷰란 어쩌면 우주정거장의 랑데부보다 더 어려운 것인지 모르겠다.

 

 도덕적 기자란 직업윤리에 충실한 뿐이며, 따라서 (종교나 민족, 친지 같은) 소속집단의 충성서약으로부터도 독립된 망명정부인 셈이다. 동시에 연민과 감정이입에 풍부한 인간적 품성을 유지하는 기자 상이야말로 젊은 언론인 지망생인 당신이 간직해야 할 모습이다.(98쪽)

 

 

 피트 해밀은 ‘기자는 신의 역할을 대신하는 직업’이라고 말했는데 그 이유가 경청할 만하다. 인간이라는 동물이 저지르는 바보짓, 그 무수한 범죄와 사건·사고 속에서도 놀라운 성취와 진보를 만들어낸다. 그런 드라마를 끈덕지게 확인하고 알려주는 직종이란 기자직 이외에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105쪽)

 

 기사의 사명을 얘기하는 놀라운 문장들.

 

 기자는 사건·사고나 인간 행위에 들어있는 본질적인 원소를 밝혀내야 한다. 즉 인간 행위의 주기율표를 탐구하는 것이다.(105쪽)

 

 우리가 쓴 기사가 단순한 흥밋거리-막장 기사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태도. 

 

 그런 본질을 발견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제대로 구멍을 잡은 다음 깊게 파내려가기, 바로 그것이다.(106쪽)

 

 

 저널리스트가 다른 무엇보다 중시하는 팩트는 소설가가 으뜸으로 삼는 동기, 즉 모티브와 생각 이상으로 밀접하게 엮여 있다. 기자가 갖는 취재 정신과 소설가만의 탐구에 대한 열정이 만나는 황금지대가 바로 그곳있다.(109쪽)

 

 

 (기자는 기사에 눈 앞의 현실 그 이상의 것을 담아야 한다면서) 현장의 어떤 분위기와 아우라, 그곳을 감도는 어떤 미묘한 정서와 텍스추어가 훨씬 중요하다.… “우리가 하는 기사쓰기란 어떤 것이어야 하느냐면 말이야, 기사는 TV에 비춰지는 이미지나 영상보다 훨씬 밀도 높은 정보가 담겨야 하고 쭉쭉 읽혀야 해.”(118쪽)

 

 

 한 사람을 찍은 인물사진 두 장이 있다고 하자. 하나는 얼굴로만 프레임을 꽉 채웠다. 다른 사진은 얼굴을 콩알만 하게 하고 그를 둘러싼 배경을 주로 잡았다. 이 두 사진이 갖는 상호보완적 측면이야말로 기사 쓸 때 항상 염두에 둬야 하는 것이다.(123쪽)

 

 

 이미 갖고 있는 노하우나 정보에 너무 의존해 그것에 근거 없는 확신을 품는 것, 통념이나 관례 따위에 너무 의지해 이 사안은 저렇고 저 사안은 이렇다고 재단한 채 새로운 의문 자체를 품지 않는 태도야말로 매우 위험한 집단사고다. 언론사 안팎에 존재하는 집단사고는 기자의 몸과 마음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우선 엉덩이를 무겁게 해 책상 앞에만 뭉개고 있도록 만든다. 또는 지적 호기심이 느슨해지도록 한다. 기자를 게으르게 만드는 주범이 바로 집단사고다.(127∼128쪽)

 

 바지 밑단보다 엉덩이 부분이 먼저 헤어지기 시작한다, 나도.

 

 당신이 백악관 출입기자이든 지방 소도시 관공서 출입기자이든 간에 세상을 당신만의 시선으로 바라보라. … 위대한 저널리즘, 진정한 기자란 고집불통의 ‘나 홀로 기자 정신’에서 비로소 나온다.(132쪽)

 

 그것은 또 얼마나 외롭고 불안한가. 비록 잘못된 고집이라도 그 자체로 존중해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기자의 감수성과 지적 탄력성이 발휘돼야 할 영역은) 선과 악,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를 나누는 이념 세계가 아니다. 열망이 발휘돼야 할 영역은 따로 있다. 포괄적으로 말해 ‘세상을 치유하기’다. 선과 악의 이분법에서 벗어난 그런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저널리즘의 임무다.(144∼145쪽)

 

 

 ‘고유한 특징을 지닌 세상사 하나하나’가 갖고 있는 섬세한 차이를 두루 살피는 게 중요하다.(145쪽)

 

 

 칼로 두부를 자르는 식의 이분법의 함정, 지나친 단순화의 오류를 경계할 경우, 또 사건·사고가 안고 있게 마련인 애매한 측면이나 섬세한 뉘앙스의 차이에 대해 충분히 열린 자세를 유지할 경우, 그때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을 것이다.(145쪽)

 

 

 탐사보도에서는 그 아이템에 관해 가장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취재원을 알아내고 섭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160쪽)

 

 

 잘된 글, 흥취를 돋우는 글은 얼핏 보면 극히 자연스럽게 샘솟는 창작 행위를 그대로 늘어놓은 결과이겠거니 하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분출하는 영감, 어느 순간 그 사람 머리 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신적인 능력의 결과가 아닌가 싶을 것이다. 특히 아마추어들이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글이야말로 의식적으로 노력을 기울이는 기술 연마의 게임이다. 또 엄격한 노동 윤리의 결과물이다.(172쪽)

 

 

 기자의 기본기란 무엇일까? 문법, 용례, 어휘, 기사의 유형별 포맷을 익히는 것이다.(175쪽)

 

 

 기사쓰기란 혼란스러운 현실이라고 하는 카오스를 정연한 질서의 코스모스로 바꿔주는 행위다. 정신없고 복잡다단하게 흘러가는 현실의 흐름에 기자가 개입해 설명을 찾아보려는 노력이자, 언론사 고유의 여과 과정이다.(193쪽)

 

 

 뉴스피처는 사건·사고의 한 단면을 드러내는 데 불과한 평면적인 스냅사진, 그 이상이어야 한다. 그게 핵심이다. 좀 더 큰 이슈까지 건드려야 한다. 마이크로한 소재나 일화에서 시작하지만 점차 매크로한 주제로 확장돼야 하며, 개인이나 지역사회의 일화에서 시작했다 하더라도 더 큰 어젠다로 연결돼야 한다.(200쪽)

 

 

 기사쓰기란 그럴싸한 어휘나 미사여구를 골라내는 작문과 달리 취재 결과 얻어낸 자료 중 어떤 것을 선택해 어떤 프레임으로 제시할까를 결심하는 끊임없는 고심의 연속이다.(200쪽)

 

 

 활력 넘치는 액션, 즉 지속적인 팩트와 정보를 던져줘 독자 마음을 낚아챈 뒤 당신이 원하는 쪽으로 신축자재하게 끌고 가야 한다. 그런 흐름 속에 정보를 리드미컬하게 보여주지 않는다면 독자들은 따라오지 않는 법이다.(201쪽)

 

 

 “작업 과정에서 제아무리 힘들었다 하더라도 작품에는 그런 티가 눈곱만큼도 나면 안 되는 법이다. 그럴수록 아주 편안하게 처리됐다는 느낌부터 줘야한다. 그게 고수의 작품이다.”(17세기 중국화가의 말·203쪽)

 

 

 고수는 자기 지문을 남기지 않는 법이다. 이야기를 잘 쓴다고 하는 것은 자기 목소리를 절제하는 것을 뜻한다.(212쪽)

 

 반대로 요즘에는 자기 개성을 드러내고 견해를 표출하는 기사를 쓰고 싶은 유혹에 시달린다. 진정한 소통이란 무엇일까. 기자에게 허락된 소통은 마치 신의 목소리를 대신 전하는 성직자처럼 지극히 절제되고 준엄한 것일 뿐일까. 

 

 취재원의 목소리를 전하기에 앞서 자기 이야기를 억지로 끼워 팔려는 이가 있다면, 그는 하수에 불과하다(212쪽)

 

 나는 하수? 

 

 하수들은 자기가 전하는 이야기를 통해 어떤 감정 상태나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전달하려고 안달이다. 그것이야말로 억지춘향이다. 그 반대로 해야 한다. 거의 눈에 띄지 않도록, 극도로 절제해야 한다. 기자가 원하는 감정이나 메시지를 독자 스스로 찾아 움켜쥐었다고 생각하도록 아주 조심스럽게 유도하기, 그게 바로 좋은 기자, 좋은 이야기의 정답이다.(212∼213쪽)

 

 그렇지! 그러나-. 

 

 멀쩡하고 구체적인 어휘를 놔두고 애매한 완곡 표현 따위가 교묘하게 득세하는 세상이 되면 종국에는 진리와 사회정의까지도 사라지게 된다(215쪽)

 

 기사에서 멀쩡하고 구체적인 어휘를 쓰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조지 오웰이 제시한 언어 사용의 6가지 법칙 중) 전문가인 척하는 헛소리 남발을 피하기, 자기 감정에 취해 흐느적대는 문장 피하기, 수동태 문장 대신 능동태 문장을 주로 구사하기.(216쪽)

 

 

 뉴스피처가 지켜야 할 가장 큰 규칙의 하나가 ‘있는 그대로 보여주라. 군더더기 설명은 하지 말라’다.(217쪽)

 

 

 탁월한 기사를 쓴다는 과제란 복잡하고 난해한 것만은 아니다. 명쾌할 것, 문법과 포맷에 잘 맞을 것, 군더더기 설명 대신에 눈으로 본 것을 그대로 보여줄 것-그것이 전부다.(220쪽)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디테일이다. 사건과 사건, 움직임과 움직임의 연속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전개가 제대로 살려면 꼭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살아있는 디테일이다.(225쪽)

 

 

 당파적 신념이나 이해관계에 당신을 갖다 맞추는 순간 기자는 이미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그때 기자 생명은 끝이 난다. 독립적 기관인 기자가 아니라 태엽이 달려 있는 자동인형으로 추락하며, 그 순간부터 정보 생산의 허브이기를 포기한 채 때로는 곡필과 곡학아세도 주저 않는 아첨꾼 기자로 주저앉을 것임을 유념해야 한다.(267쪽)

 

 

 “취재하고 기사를 쓰기에 겁부터 나는 큼지막한 아이템일수록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299쪽)

 

 그런 두려운 도전을 시도하느냐, 시도하지 않느냐가 기자와 리포팅머신을 구별해준다. 그리고, 그 도전은 의외로 성공 가능성이 높고, 실패해도 분명히 남는 것이 있다. 독자들은 그런 기사를 구별해 낼 줄 안다.

 

 

 저널리스트들이 맡는 일은 항상 낯선 것이다. 그게 우리의 숙명이다. 예전에 알던 것, 익숙한 것과 작별을 해야 한다.(299쪽)

 

 마감시간이 지나면 닥쳐오는 우리의 숙명, 내일은 뭐쓰지? 

 

 (언론사라는 보호망에서 언젠가는 나와야한다면서) 결국 남는 것은 당신만의 언어 혹은 당신만의 고유한 목소리다.(307쪽)

 

 

 저널리스트는 거의 매일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들고 나와 당신이라는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희한한 종류의 비즈니스를 하는 셈이다. 매일 죽고 매일 산다. 어제 특종을 했다고 희희낙낙하지만, 오늘은 낙종에 운다. 그게 기자의 삶이다.(308쪽)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세월호 7시간, 박근혜 청와대의 거짓말

아래한글로 전자책 만들기 hwp2epub

“저도 노래 잘하는 사람이 부러워요” 테너 박현재 서울대 교수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