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실수 속의 진심

조지 W 부시가 미국 대통령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진두지휘할 때, 그는 한 연설에서 말실수를 했다.

 

 

 "우리의 적은 혁신적이고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다. 우리도 그렇다. 그들은 우리나라와 국민을 해치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끊임 없이 개발한다. 우리도 그렇다."

 

 미국 대통령이 "우리는 우리 나라와 국민을 해칠 방법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있다"고 대국민 '협박'을 한 셈이었다.

 

 부시의 비판자들은 "말실수가 아니라 맞는 말"이라고 비웃었다.

 

 프로이트 심리학을 믿어야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실수에 대한 그의 분석은 재미있다.

 

흔히 'Freudian slip'이라고 부르는 말실수(Fehlleistung 또는 parapraxis)는 정신분석학에서 '우연히 표출된 진심'으로 받아들여진다.

 

프로이트는 환자들을 상담하면서 그들의 기억이나 말실수 속에 무의식적으로 환자 자신의 숨겨진 마음이 드러나는 것을 자주 목격하면서 parapraxis라는 개념을 발전시켰다.

 

무슨 말이냐면, 평소에 슈퍼에고의 강력한 억압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던 에고, 즉 무의식적인 자아가 말이나 기억의 재조합, 혹은 순간적인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이 바로 'parapraxis'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내가 남편을 부를 때 무심코 옆집남자나 우유배달부의 이름을 말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라 아내가 옆집남자나 우유배달부를 각별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표출된 것이라는 해석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시 유난히 말실수가 많았다. "대통령 못 해먹겠다"든지 "이놈의 정부"라든지 하는 표현은 분명 당시 문맥으로 보면 농담이거나 가벼운 속어적 표현이지만 그 속에는 또 그의 세계관이나 자신의 처지에 대한 인식이 드러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오늘 사표가 수리된 임채진 (전) 검찰총장이 기자들과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눈 자리에서 말실수를 했다.

 

기자들이 "재임 기간에 수사와 관련해 청와대나 법무부에서 압박이 없었느냐"는 질문에 "노코멘트"라고 했다가 이렇게 말했다.

 

"법무부와 검찰은 긴장관계다. 청와대와는 직거래는 안하고. (법무부) 장관이 들으면 섭섭해하겠지만 사건 관계에선 법무부와 검찰은 항상 긴장관계다.

 어떤 바보같은 사람이 (검찰)총장으로 와도 발톱을 세운다. '외부에서 그러지 마라', '검찰 함부로 건들지 마라' 하고. 나만 하는 게 아니다. 수사지휘권 발동 같은 얘기 가급적 안나왔으면 좋겠네. 강정구 같은 경우 1건밖에 없다는 건 천만에 말씀이다.

 늘상은 아니지만 문건으로 발건되는 게 있다. 광고주 협박사건도 그랬고... 그건 검찰도 협의됐으니 큰 문제 아니지. 강정구는 못 받아들여서 문제가 됐지만. 문서로 내려오는 게 있지. 내가 검찰국장 할 때도 수사지휘 많이 했다. 시위 엄중대처 바란다, 같은 것. 그것도 수사지휘지."

 

이어서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에도 (법무부나 청와대의 수사지휘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허허. 사건에 대해선 얘기 안한다고 그랬다"고 말했다.

 

이 발언이 '청와대나 법무부에서 '조선중앙동아 광고주 불매운동'에 대해 수사하라고 지휘했다'는 것으로 해석되고, 또 노 전 대통령 수사에도 검찰 윗선이 개입됐음을 시사하는 발언으로 해석돼 언론에 보도됐다. 인터넷의 관련 기사에는 순식간에 수천개의 댓글이 달렸다.

 

논란이 커지자 대검찰청에서는 강한 '해명자료'를 내놓고 언론보도에 "법적대응"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 검찰총장과 대검 출입기자단 환송오찬에서 있었던 대화내용에 대하여 총장의 발언내용과 그 취지가 사실과 달리 보도되고 있는 부분이 있으니 바로잡아 주시기 바람.
 총장이 박연차 수사와 관련하여 청와대나 법무부의 압박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노 코멘트’ 라고 답한 부분은,
대화 처음에 구체적인 사건에 대하여는 일체 답하지 않겠다는 전제를 달고 오찬을 시작하였고, 따라서 그 연장선상에서 ‘노 코멘트’라고 답한 것임에도 마치 압박이 있었고 할말이 있는데 확인하여 줄 수 없다는 취지로 보도되고 있는 것은 사실과 다르며,  이는 기자가 녹취한 녹취내용 전체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으며, 다른 질문에서도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질문이어서 일체 답하지 않겠다는 사전 양해에 따라 ‘노 코멘트’ 로 답한 부분이 있음.
 수사지휘와 관련한 부분은, 강정구 사건 외에도 수사지휘가 있었고 이는 모두 문건에 의한 것이었으며, 그 내용도 총장께서 참여정부 시절 검찰국장으로 재직시 하였던 ‘시위엄단’(04.8.4.법치주의 파괴사범 엄정대처 지시) 등과 같이 구체적 사건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 수사지휘였음을 발언과정에서 명백히 하였음
 그러함에도 마치 구체적인 사건에 외압 또는 수사지휘가 있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보도하는 것은 발언내용과 명백히 다르며 이는 기자가 작성한 녹취록에 의해 명백히 나타나 있음.
 총장의 발언중 참여정부 시절 검찰국장으로 재직시 첨부하는 바와 같이 법무부가 총 10건의 수사지휘를 검찰총장에게 하였고 이는 모두 구체적 사건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 수사지휘였음. 총장 시에도 법무부가 첨부와 같이 총 3건의 수사지휘를 하였고 이는 모두 일반적 수사지휘였음.
 총장께서 언급한 광고주 협박사건 역시 구체적으로 사건을 특정하여 지휘가 내려온 것이 아니라 일반적 수사지휘인 ‘인터넷 유해환경 단속에 관한 특별지시’ 로 내려온 것이며, 이는 당시 언론에 공개되어 보도된 것임.
 사실과 전후관계가 위와 같음에도 마치 새로운 사실이 드러난 양 사실과 다른 보도가 계속될 경우 법적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음을 알려드림."


 그러고보니 이명박 정부에서는 유독 공직자의 발언에 대해 '오해였다'는 해명이 많았다. 표현상으로는 듣는 사람이 잘못 알아들었다는 것이지만, 말하자면 '단순한 말실수'였다는 것이다.

 

 그 중 최신판은 "경찰버스로 노 전 대통령 분향소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 아늑하다는 사람도 있다"는 경찰의 발언일 것이다.

 

그런 '오해'의 말실수들만 모아놓으면, 거기에는 이 정부의 무의식에 숨어있는 어떤 진심이 드러나지는 않을까 궁금하다.

 

물론 프로이트의 이론이 다 맞는 것은 아니다. 특히 듣는 사람이 확실한 근거도 없이 자기 맘대로 '그거 당신의 무의식적인 진심이지?'라고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약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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