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치질수술 체험기



치질 01.jpg

이미지출처 : ask.nate.com


 

놀라지 마시라.

내 사진은 아니고,구글에서 '치질'로 검색했을 때 나온 그림이다.

사실은 치질 걸린 똥꼬를 정면으로 보여주는 생생한 사진도 많은데, 그건 점잖은 내 블로그에 소개하기엔 너무 심하게 생생하니, 궁금하면 직접 검색해서 찾아보시길.

어쨌든, 치질이라는 상황이 내 신체에 발생했다. 그래서 수술 받았다.

무슨 자랑이라고 블로그에 쓰냐고?

안다. 그러는 당신도 사실은 신경쓰인다는 거. 현대인의 30%,성인 남성의 50% 이상이 치질 증세를 갖고 있다고 한다. 흐흐흐. 당신은 예외인가.

여름이었다. 몸도 나른하고 지쳐갔다. 그러다 열도 나고 좀처럼 피곤이 회복되지 않는게 감기몸살이 오는가 싶었다.

그러더니,이녀석이 밖으로 돌출되더니 들어갈 생각을 않는 것이었다.

앉아 있으면 신경쓰이고,슬쩍슬쩍 건드리면 움찔 놀란다.

하루종일 이것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으니,더 피곤했다.

지금까지 견뎌온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불길한 느낌에 처음으로 병원에 갔다. 10년만인가...

평소에 오가며 만일에 대비해 봐뒀던 그 병원으로 갔다. 대장과 항문을 전문으로 한다는 그 병원. 이 병원은 2002년에만 무려 6257명의 치핵환자를 수술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의사는 내 나이보다 2~3살 정도 더 들어보였다.

실제로는 그림과 달리,옆으로 누워 엉덩이를 깐 채 무릎을 가슴팍으로 끌어올리고 가만히 누워있는다. 의사가 잘 볼수 있도록.

잠시 들여다본 의사의 첫 반응.

"으음----."

신음을 뱉어야할 사람은 나인데... 하고 생각하는 순간,손으로 무지막지하게 그곳을 누른다. 들어가는지 안들어가는지 보는 것 같았다.

"으윽----."

내가 비명을 지르지 않을수 없었다.

내일 당장 수술,이다. 하아~. 이런 것인가. 10여년을 망설여온 그 일이,이렇게 타의에 의해 쉽게 단행되다니.

인생은 역시 혼자 살수 없는 것이다. 남에게 맡길 때가 차라리 편할 때가 있다.

수술에 앞서,몇가지 검사를 해야한다고 했다.

혈액검사

소변검사

X레이 검사

초음파 검사.

다른 건 뭐 이름만 보면 뭔지 알수 있겠는데,초음파검사란 뭘까? 임신한 것도 아닌데... 궁금해하며 검사를 기다렸다.

침대에 올라,아까와 같은 자세로 엉덩이를 까고 무릎을 가슴에 모은 채 다소곳이 옆으로 누웠다.

그곳으로 뭔가 차가운 것이 쑤욱 들어왔다. 너무나 쉽게. 이게 초음파 검사였다.

다행이라고 해야할까,쾌감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의 성정체성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 가외소득이라고 해야하나 흑흑.

크윽. 이런 농담을 해도 수술이 기다리고 있다는 현실은 변함이 없었다. 회사에 전화를 해서 휴가를 냈다.

집에 와서는 저녁을 먹고,두시간을 참은 뒤,병원에서 받아온 관장약을 먹었다.

이건 무슨 화학약품을 통째로 들이키는 기분이었다. 포도쥬스에 섞어 먹었지만 입안이 찝찝하기 이를데 없었다.

밤 12시가 넘으니 약효가 시작됐다. 화장실로 달려가 쏟아냈다.

밤새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다,새벽에 남은 관장약을 다시 먹고 병원으로 갔다.

짜잔.

내 앞에 던져진 것은 파란색 환자복. 옷을 갈아입으니 순식간에 내가 환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환자가 된 것이 실감이 났다고 해야겠다. 옷이 날개,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겠지만 하여튼 옷이 중요하긴 한 것 같다. 하여튼,이대로 영원히 환자복을 벗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해보는 컨츄리 킴이었다.

기다림도 잠시. 수술실로 내려오란다.

수술대 위에 누운 나를 의사와 간호사가 다급한 눈길로 살펴보며 급한 걸음으로 수실실로 향하는,그런 ER같은 분위기는 (전혀) 없었다.

내 발로 나 혼자 수술실로 내려가는 기분은 참 이상했다. 이게 현실일까,싶기도 하고.

역시 수술실에는 드라마에서 본 것 같은 수술대가 있었다. 거기에 누우니 척추에 마취주사를 놨다.

임산부들이 애 낳을 때 놓는 무통주사와 같은 것이라고 했다. 기분은 별로 좋지 않았다.

잠시 뒤 드르륵 바퀴가 기분나쁘게 굴러가는 소리를 내면서 수술대가 등장했다. ㅅ자 형태로 가운데가 볼록 솟아 있었다. 간호사들이 마취된 내 몸을 그곳으로 옮겼다. ㅅ자의 가장 높은 윗 부분에 아랫배를 걸치로 엎드리는 형상이었다. 환자복이 끌어내려지더니,(팬티는 안 입었음)한쪽 엉덩이에 테이프를 가로로 쫙 붙이고는,그 테이프를 수술대 옆의 무언가에다 붙였다. 엉덩이가 벌어지도록. 한쪽 엉덩이에 약 4개 정도의 테이프가 붙었다. 다른쪽에도 그만큼의 테이프가 붙었다.

이제 내 항문은 그 속까지 환히 볼수 있도록 활짝 벌어진 채 하늘을 향해 있을 터였다.

지금 생각하면 아윽,하는 소리가 나오지만 당시엔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마취된 하반신은 약간의 둔감만 있을 뿐,별 느낌이 없었다. 약간 초현실적인 상황에 처해 있는 느낌이었다.

드디어 의사가 나타났다. 수술 집도가 시작됐다.

2009022313_1.jpg

이미지출처 : blink.naver.com


 

hernia 008.jpg

이미지출처 : blog.ohmynews.com


 

지금 병원 홈페이지에 보니 "수술 중 잔잔한 음악을 들려 드리기 때문에 안정된 분위기에서 수술을 받으십니다"라고 설명해 놓고 있다.

거짓말이다. 그런 음악은 없었다.

그냥,문방구에 파는 커터칼. 또르륵또르륵 소리가 나는 그 칼. 그 또르륵 또르륵 거리는 소리만 줄창 계속됐다.

또르륵또르륵 (커터날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소리)

스윽스윽(칼로 베는 소리)

슈우우욱(뭔가 빨아들이는 소리)

조용한 수술실에,이런 소리가 계속 울려퍼졌다.

아프다거나 하는 느낌은 전혀 없었지만,아랫배 안쪽에서 방광을 쾅쾅 치는 듯한 느낌은 있었다. 혹시 이대로 방광이 터져버리더라도,난 아무런 느낌도 느끼지 못할 것 같았다.

살아있다는 건 별거 아닌 것 같다. 내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나는 전혀 알지도 보지도 못하는 채로 그냥 남에게 내 몸의 가장 부끄러운 그 부분을 드러내 놓고도,나는 그냥 살아있다. 내 몸을 아프게하던 그 부분이 피를 흘리며 잘려나가고 있는데도,난 아무런 느낌도 없다. 진짜로.

살아있는다는 게,참 잔인하단 생각.

"많아.. .많아..."

신음소리와 비슷한 의사의 말. 그래도 어쩌랴. 그게 당신의 일이고,이게 내 몸인걸. 크으.

30~40분쯤 그런 상황이 계속됐다.

"휴우. 끝났어."

내가 아니라 동료 간호사에게 하는 소리 같았다.

의사는 갑자기 스테인레스 그릇을 엎드려있는 내 눈 앞에 내 밀었다.

오돌뼈처럼,하얀 뼈처럼 생긴 둥근 물체 주변에 시뻘건 살코기 같은게 붙어 있었다.

그런게 금방 봐도 10여개는 돼 보였다.

"엄청 많이 나왔어요"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부끄러워하란 말인지,자랑스러워하란 말인지,아니면 수술비를 많이 내란 말인지.

아무리 그래봐야 의료보험공단에서 정한 지정수가 이상은 낼수가 없는 것을.

어떤 감정을 느껴야한다는 건지 잠깐 고민하고 있는 사이에,의사는 날름 그 그릇을 내 눈앞에서 치웠다.(아.. 내 몸에서 나온 그 고통의 덩어리들은,어떻게 처리됐을까.)

마취된 내 몸은 평평한 수술대로 옮겨졌고,이번엔 진짜 ER스럽게,수술대에 누운 채 들들들 거리며 입원실로 옮겨졌다.

수술 끝. 입원 시작. 이제 피를 본 내 항문은 어떻게 회복되는 것일까. 궁금하면서도,병원에서 알아서 해주겠지,하며 별 고민하지 않는 컨츄리 킴이었다.

 

정말 걱정이 되는 것은 수술후였다.

 

사람들이 얘기했다. 마취가 깨면 정말 아프다...던데. 잘못하면 괄약근이 조여주질 못해 똥물이 질질 흐른다....던데. 아니면 아예 항문이 꽉 막혀버려서 똥도 안나온다...던데....던데...던데...

 

그때문에 의료보험도 안되는 무통주사까지 맞고 다음날을 맞았는데, 다행히 별다른 아픔은 없었다. 옆 침상의 아저씨는 '고통과 직면하기 위해' 무통주사도 안 맞았는데 "견딜만하다"고 했다.

 

몸에 열이 나서 입원을 하루 더 연장하기는 했지만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병원에서는 항문을 넓혀주기 위해(!) 식이섬유를 섭취하고 수술 부위의 안정을 위해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당분간 관장약을 사용할 것을 권유했다. 한 이틀 정도 하다가 관뒀는데 별 이상은 없었다.

 

다만 항문을 넓히는 일은 약간의 수고가 필요했다. 좁아진 항문 틈으로 그놈의 DDong이 빠져나오니 굵기가 애기 손가락 만했다. 더 힘을 주자니 수술부위가 아물기도 전에 찢어지면 어떡하나 싶어서 걱정돼 그렇게도 못했다. 그렇게 이틀쯤 지나니까 답답했다. 내 마음이 아니라 내 대장이.

 

똥이 너무 안나와서 끙끙 힘을 주다가 "애라 모르겠다. 찢어지든 말든"하면서 끄~응 했더니 퍽!하는 소리와 함께 똥이 나왔다. 오! 항문이 넓혀진 것이다.

 

괄약근의 복귀를 축하하며, "이제 다시는 화장실에서 신문을 보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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