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을 그렇게 쉽게 버릴 수 있나요?

황석영씨가 이명박 정부와 협력하겠다는 것이 변절일까요? 우리나라의 대문호라는 양반을 한번의 인터뷰로 칼로 두부 자르듯 잘라서 판단하는게 과연 타당할까요? 저는 의문입니다.

 

황석영씨가 이명박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에 따라갔고, 거기서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만나서 이명박 정부를 돕겠다고 했다는데, 사방에서 비난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기사] 황석영 “난 중도론자…MB생각과 같은 부분 있다"

http://www.kukinews.com/news2/article/view.asp?page=1&gCode=pol&arcid=0921287850&code=41111111 

 

학계로 번지 황석영 변절 논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2661860

 

 

황석영씨 정도의 인물이라면, 한번의 언론 인터뷰로 그의 행동에 '변절'을 선언하고 '코미디'라거나 '귀순'이라는 식의 말을 쓰는 것은 성급하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좀더 그의 얘기를 귀 기울여 듣고, 그의 행동이 무슨 의미인지 곱씹어 볼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반드시 그의 '변화'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말이지요.

 

제가 황석영씨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삼포 가는 길'을 읽었을 때였지만, 고등학교 시절 학교 도서관에 있던 '장길산'을 읽으면서 그의 작품세계에 압도 당했습니다.

 

그 뒤 '객지'부터 그의 작품을 찾아 읽으면서 '무기의 그늘' '손님' '오래된 정원'까지 따라갔고, '개밥바라기 별'도 우연히 지나가던 서점에서 황석영씨의 싸인회가 있다는 얘기에 현장에서 사서 싸인을 받고 읽었지요.

 

다른 분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전 그의 작품에서 늘 사람 냄새가 나서 좋았습니다. 특히 방북 이후 독일 망명과 귀국후 수감, 그 뒤의 출감... 오랜 역경을 겪으셨으면서도 그 뒤에 내놓는 작품에서도 쉽게 자신의 과거를 훈장이나 실수로 삼으면서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고난 받는 인간, 그 자체를 충실히 드러내면서 우리 사회의 상처로 승화시키는 모습이 감명 깊었습니다.

 

 황석영씨가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이유도, 그가 이념적으로 진보적이거나 지난 대선에서 MB반대 선언을 했다는 이유는 아닐겁니다. 그의 작품에 인간의 보편성을 보여주는 어떤 면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의 순방길에 따라갔고 앞으로 같이 협력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또 광주민주화운동을 광주사태라고 했다고(명백히 폄하하려고 한 표현이 아니라 그냥 인터뷰중에 그렇게 표현한 것이었죠) 그를 '실망했다' '변절했다' '늙으니 권력을 쫓아간다'는 식으로 단언해도 되는 것일까요?

 

지난 대선 때 이명박 후보 반대진영을 대표했던 그가 이명박 대통령을 '중도'라고 표현하고 협력하는 것이 모순이라는 비판도, 언뜻 들으면 명쾌하지만 역시 단견이란 생각이 듭니다. 지난 대선 때야 어느 쪽에 섰던간에, 국민이 선택한 것은 이 대통령이었고 우리의 세금으로 정부를 운영하고 있는데, 그의 정치 노선에 다 동의하지 않는다고해서 그와 함께 일하는 것을 거부해야합니까?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에서도 '정부지원금'을 신청한 시민단체들이야말로 변절의 대명사가 되어야하는 것이지요.)

 

왜 그리 서두를까요. 앞으로 황석영씨의 행보를 좀 더 지켜보면서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 천천히 판단해도 늦은 것은 아닐텐데 말이죠. 어쩌면 그의 생각은 '넌 지금 어느 편이니?'라고 묻는 우리의 생각보다 더 큰 어떤 곳에 가 있는지도 모를텐데 말이죠.

 

이번 참에 말을 더하자면, 이명박 정부를 무슨 '악의 결정체'라도 되는 것처럼 보고 이 정부가 하는 모든 행동을 폄하하는 시각을 좀 비판하고 싶습니다.

 

자전거가 느린 삶의 대안이고 석유의존적인 문명의 전환을 가져올 상징처럼 여기던 사람들도 이명박 대통령이 "전국에 자전거 도로를 만들겠다"고 하면 갑자기 욕합니다.

 

황석영씨 말 마따나 이명박 정부가 북한의 핵개발 선언에도 불구하고 PSI가입을 늦춘 일은 전혀 평가하지 않고, 북한이 개성공단 특혜 무효를 선언한 어제 같은 날에도 오히려 이명박 정부의 반응을 조롱하면서 "니들이 언제 개성공단을 지킬 생각이나 했냐. 꼴좋다"는 식의 반응을 보입니다.

 

확실히 '외눈박이'입니다.

 

지난 노무현 정부 때에도 정반대 쪽에서 똑같은 현상이 있었지요. 노무현 정부를 반대하는 이들은, 참여정부가 미국과 FTA한다는 얘기,이라크 파병한다는 얘기, 용산 미군 기지 이전이 미국의 요청으로 이뤄졌다는 얘기 는 싹 무시하고 대통령의 말 몇마디로 "좌파 정부" "빨갱이 정부"라며 얼마나 조롱하고 폄하했습니까.

 

한 정부의 이념도 마찬가지지만, 한 인간의 이념도, 아니 인간의 생각을 이념이라는 잣대로 판단하고 편가른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현대사가 증언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념을 넘어 (사실 이념 차원도 아니죠, 그냥 한나라당 대 반 한나라 정도?) 인간을 바라보는 것, 또 설사 황석영씨가 바뀌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안정적인 말년'을 위한 육신적인 선택인지 아니면 사유와 경험의 확장에 따른 '성숙한 선택'인지 마음을 열고 지켜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재빠른 속도전보다 느리게 천천히 생각하는 것이 더 가치있다고 하는데, 황석영씨를 지켜볼 때에도 좀 그렇게 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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