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떠나던 날

 2009년 5월 29일 아침 10시 지하철 시청앞역에 내려 가장 먼저 발길을 옮긴 곳은 대한문 앞 시민분향소였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그곳의 풍경이 있는데, 24일 아침 조문을 마친 한 남자가 서너살쯤 돼 보이는 아들 앞에 주저 앉아 울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주변은 경찰의 버스가 이중으로 ‘아늑하게’ 보호하고 있었고, 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전투경찰들이 다시 2중3중의 장벽을 치고 있었다. 그 풍경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권력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는지 너무나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한 사람 죽었다고 까불지마라’는 것.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문하는 시민들

국민일보 자료사진


 거기서 가장 가까운 정동제일교회 주일예배를 취재하고 나오면도 계속 그 광경이 눈에 밟혔다. ‘나도 조문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이에 조문 행렬이 너무나 길어져버렸다. 5시간은 기다려야한다고 했다. 전경들의 대오 옆에 줄을 선 시민들은 하얀 국화를 들고 너무나 차분히 기다리고 있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어 그냥 지나쳤다. 그 뒤로도 1주일 사이 몇번 그곳을 찾았지만 조문 행렬은 점점 더 길어져 나는 그때마다 구경만 하고 돌아섰다. 바로 전날인 28일 밤에는 두줄의 조문 행렬이 한쪽은 정동길을 거쳐 경향신문사 앞을 지나 서울역사박물관까지 이어져 있었고, 다른 쪽은 조선일보사 바로 앞까지 가서 다서 대한문 앞으로 돌아오기까지 했다. 밤을 새워도 조문이 다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대한문 앞의 노 전 대통령 초상

덕수궁 대한문에 걸린 고흐풍의 노 전 대통령 초상


 장례식이 열린 29일. 이날은 마지막 날이니 분향소가 거둬져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조문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마침 줄은 거의 끝나 있어서, 나는 마침내 국화꽃 한송이를 받아들고 조문객의 대열에 섰다. 5분여를 기다린 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 앞에 국화꽃을 놓고 묵념을 했다.


 경찰들은 전투복을 벗고 얌전한 제복을 입고 있었다. 인도변에는 노란색 줄을 둘러 ‘도로에 내려서지 마라’는 표시를 해두었는데, 시민들은 노 전 대통령의 웃는 얼굴이 그려진 노란색 풍선을 감았다.


 

 신호등을 건너 서울광장으로 가니, 벌써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운구차를 마지막으로 보기 위해 인도와 도로의 사이에 앉아 있었다. 운구차가 이곳에 오려면 3시간이나 더 기다려야하는데도. 서울시에선 ‘아리수’를 나눠주고 있었고, 시민들은 얼음물을 나눠주고 있었다. 노란 모자, 노란 풍선도 “받아가세요”라며 나눠주었다. 18페이지짜리 위클리경향도 나눠주고 있었다. 표지에는 청와대 풀밭에 편히 앉아 있는 와이셔츠 차림의 노 전 대통령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편파/왜곡 보도를 일삼는 언론 반대 및 바른 언론을 수호하고 진실을 알리는 캠페인으로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금에 의해 무료로 배포합니다’라는 글귀가 찍혀있었다.

 

 

 

 서울시청 앞은 영결식이 시작되기 전부터 노란색의 물결이었다. 노란 모자와 노란 풍선이 길을 가득 메웠다. 시민들이 고인을 추모하는 검은색 대신 2002년 대통령선거 당시 그의 상징색이었던 노란색을 선택한 이유는 분명해 보였다. 그는 죽었지만, 그의 정신은 죽지 않았다는 것. 우리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라는 표시였다. 노란 모자와 카드에는 ‘내 마음 속 대통령 노무현’이라고 적혀 있었다.

 

노란 물결

시청앞을 온통 물들인 노란 물결


 경찰들은 도로변에 줄지어 서 있었다. “인도에서 도로로 내려 오면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입건되며 벌금형을 선고 받을 수 있습니다”라는 표정이었다. 간간이 사람들이 도로로 내려서면 얼른 위로 돌려보냈다. 답답함이 옥죄어 왔다. 그때 한 청년이 용감하게 도로에 내려서더니 큰 목소리로 외쳤다.


 “저는 지난 1주일동안 봉하마을에 있다가 오늘 노사모 회원 30여명과 함께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영결식에 참석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그냥 여기서 노 전 대통령의 주검을 실은 운구차가 지나가는 것을 구경만 하라는 것입니까. 정말 그렇게 노 전 대통령을 보내야하는 겁니까. 시민 여러분, 저는 보스턴에서 유학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현지 교포들의 추모의 뜻을 모아 날아왔습니다. 그것 때문에 왔습니다. 그런데 그냥 이렇게 구경만 하라는 것입니까. 여러분은 벌금이 겁나고 무서워 그렇게 서서 구경만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갈 것입니까.”


 

 별로 말은 안되는 내용이었지만, 그 답답한 마음은 모두가 같았다. 누군가 박수를 쳤다. 이대로, 무력하게, 그를 보내야하는 것인가.

 

 근엄한 얼굴들이 마련한 영결식은 11시부터. 10시45분이 지나자 태평로의 차량통행이 통제됐다. 그러자 10시50분경 덕수궁 쪽의 시민들이 먼저 도로로 내려섰다. 올타꾸나 서울시청 쪽 시민들도 말 없이 도로로 내려갔다. 의외로 경찰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순순히 철수했다. 이럴 걸 왜 무엇때문에 그렇게 겁을 줬던 것이냐. 노란 줄은 왜 쳐 두었던 것이냐.

 갑자기 사람들이 야유를 쏟아냈다. 얼굴을 들어보니, 시청 위에 걸린 대형화면이 이명박 대통령 내외가 영결식장에 입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옆에 있던 사람이 “개새끼”라고 말했다. 더 많은 사람은 우∼우∼라고 소리를 냈다. 나는 어떠한 상황에도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객관적인 위치에서 현상을 기록해야하는 기자로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수첩에 기록만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영정 앞의 이명박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정 앞에 조문하고 되돌아오는 모습. 국민일보 자료사진

 

 영결식이 시작됐다. 한승수 총리가 먼저 마이크를 잡고 애도를 표시하는 조사를 했다. 아무도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듯했다. 그때 어디선가 구슬픈 노랫소리가 들렸다

 ‘‘가지마오 가지마 가지마소서/내나라 내겨레 조국을 위하여/이 한몸 기꺼이 다바친님이여/ 대한민국을 영원히 영원히 지켜주소서”

 

 노사모 회원이면서 트로트 가수인 정원수씨가 만든 노래였다. 그는 서거 며칠 전 꿈에서 택시를 타고 공연장으로 가는데, 갑자기 공중으로 날아가기에 ‘천천히 갑시다’하는데 그 택시기사가 눈물 맺힌 얼굴의 노 전 대통령이었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 노래가 너무 구슬퍼 나도 모르게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따라갔다. 트럭에 실린 앰프가 그 노래를 틀고 있었다. 곧 이어 흰국화로 뒤덮힌 또 한대의 트럭이 왔다. 노 전 대통령의 영정을 실은 차였다. 그 뒤로 검은 만장 47개가 따라왔다. ‘금관의 예수, 시민의 대통령’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백척간두 진일보’ ‘짧고 굵은 노짱의 삶, 우리 가슴에 별이 되다.’ ‘마른 잎 다시 살아나 그대 뜻을 펼치라’ 등의 글귀가 적혀 있었다.

 

 근엄한 얼굴들이 얌전하게 조사를 읽는 경복궁 앞 영결식보다, 시민들이 스스로 만든 이 장례식이 훨씬 더 고인의 뜻에 맞는 것 같았다.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트럭의 뒤를 따르며 광화문으로 걸어 올라갔다. 그는 죽었지만 그를 보내지 못한 이들이 거리를 서성이고 있었다.


 무엇 때문일까, 사람들이 이곳을 아직 서성이는 것은. 덕수궁 담벼락에 붙은 수많은 글귀에는 누군가를 향한 원망이 가감 없이 드러났다.


 

 ‘털어서 먼지가 없으면 먼지를 만들어봐. 세상이 전부가 다 먼지 잖아 이놈아. 먼지를 만들어서 결국 죽였구나.’

 ‘산 송장 MB, 불멸 노짱’

 ‘칼로 일어난 자는 국민에게 망한다’

 

 한승수 총리의 지루한 조사가 끝나고 한명숙 전 총리가 조사를 했다. 마찬가지로 지루하겠지,라고 생각했으나... 영결식이 끝나기만 기다리던 시민들의 귀와 눈을 붙잡았다.

 

1.
노 무 현 대통령님.

얼마나 긴
고뇌의 밤을 보내셨습니까?
얼마나 힘이 드셨으면,
자전거 뒤에 태우고
봉하의 논두렁을 달리셨던,
그 어여쁜 손녀들을 두고 떠나셨습니까?

대통령님.
얼마나 외로우셨습니까?
떠안은 시대의 고역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새벽빛 선연한
그 외로운 길
홀로 가셨습니까?

유난히 푸르던 오월의 그날,
‘원칙과 상식’ ‘개혁과 통합’의
한길을 달려온
님이 가시던 날,
우리들의 갈망도 갈 곳을 잃었습니다.
서러운 통곡과 목 메인 절규만이 남았습니다.


2.

어린 시절 대통령님은
봉화산에서 꿈을 키우셨습니다.
떨쳐내지 않으면
숨이 막힐 듯한
가난을 딛고
남다른 집념과 총명한 지혜로
불가능할 것 같던 꿈을 이루었습니다.

님은 꿈을 이루기 위해
좌절과 시련을
온몸으로 사랑했습니다.
어려울수록 더욱 힘차게
세상에 도전했고,
꿈을 이룰 때마다 더욱 큰 겸손으로
세상을 만났습니다.
한없이 여린 마음씨와
차돌 같은 양심이
혹독한 강압의 시대에
인권변호사로 이끌었습니다.
불의에 대한 분노와
정의를 향한 열정은
6월 항쟁의 민주투사로 만들었습니다.


3.

그렇게 삶을 살아온 님에게
‘청문회 스타’라는 명예는 어쩌면
시대의 운명이었습니다.
‘이의 있습니다!’
3당 합당을 홀로 반대했던 이 한마디!
거기에 ‘원칙과 상식’의 정치가 있었고
‘개혁과 통합’의 정치는 시작되었습니다.

‘원칙과 상식’을 지킨 대가는 가혹했습니다.
거듭된 낙선으로
풍찬노숙의 야인 신세였지만,
님은 한 순간도 편한 길, 쉬운 길을 가지 않았습니다.

‘노사모’ 그리고 ‘희망돼지저금통’
그것은 분명
‘바보 노무현’이 만들어낸
정치혁명이었습니다.


4.

노 무 현 대통령님.

님은 언제나
시대를
한 발이 아닌 두세 발을
앞서 가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너무나 영악할 뿐이었습니다.

수많은 왜곡과 음해들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어렵다고 돌아가지 않았고
급하다고 건너뛰지 않았습니다.
항상 멀리 보며
묵묵하게 역사의 길을 가셨습니다.

반칙과 특권에 젖은
이 땅의 권력문화를 바꾸기 위해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았습니다.
화해와 통합의 미래를 위해
국가공권력으로 희생된 국민들의 한을 풀고
역사 앞에 사과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님이 대통령으로 계시는 동안,
대한민국에선 분명
국민이 대통령이었습니다.

동반성장, 지방분권, 균형발전 정책으로
더불어 잘사는 따뜻한 사회라는
큰 꿈의 씨앗들을 뿌려놓았습니다.

흔들림 없는 경제정책으로
주가 2천, 외환보유고 2,500억 달러
무역 6천억 달러,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열었습니다.

군사분계선을 걸어 넘어
한반도 평화를 한 차원 높였고
균형외교로
유엔사무총장을 배출해 냈습니다.

컴퓨터를 자유자재로 쓰는 세계 첫 대통령으로
이 나라를 인터넷 강국,
지식정보화시대의 세계 속 리더국가로
자리 잡게 했습니다.

이 땅에 창의와 표현,
상상력의 지평이 새롭게 열리고
아시아는 물론 아프리카까지 한류가 넘치는
문화르네상스 시대를 열었습니다.

대통령님이 떠난 지금에 와서야
님이 재임했던 5년을 돌아보는 것이
왜 이리도 새삼 행복한 것일까요.

5.

열다섯 달 전,
청와대를 떠난 님은
작지만
새로운 꿈을 꾸셨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와
잘사는 농촌사회를 만드는
한 사람의 농민,
‘진보의 미래’를 개척하는
깨어있는 한 사람의 시민이 되겠다는
소중한 소망이었습니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봉하마을을 찾는
아이들의 초롱한 눈을 보며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뇌하고 또 고뇌했습니다.

그러나 모진 세월과 험한 시절은
그 소박한 소망을 이룰 기회마저 허용치 않았습니다.

자신의 문제에 대해선
한없이 엄격하고 강인했지만
주변의 아픔에 대해선
속절없이 약했던 님.

‘여러분은 이제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는 글을 접하고서도
님을 지키지 못한
저희들의 무력함이
참으로 통탄스럽습니다.

그래도
꿈을 키우던 어린 시절의
자연인으로 돌아가겠다는 마지막 꿈만큼은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인 일입니까?
세상에 이런 일이 있습니까?
(잔인한) 세상은 ‘인간 노무현’으로 살아갈 마지막 기회조차도
빼앗고 말았습니다.


6.

님은 남기신 마지막 글에서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최근 써놓으신 글에서
“지금은 할 수 있는 일이
실패 이야기를 쓰는 것이 맞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남아 있는 저희들을 더욱 슬프고 부끄럽게 만듭니다.

대통령님.

님은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설령 님의 말씀처럼 실패라 하더라도
이제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제 저희들이 님의 자취를 따라, 님의 꿈을 따라
대한민국의 꿈을 이루겠습니다.
그래서 님은 온 국민의 가슴 속에
영원히 남아있는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대통령님.
생전에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분열로 반목하고 있는 우리를
화해와 통합으로 이끄시고
대결로 치닫고 있는
민족 간의 갈등을
평화로 이끌어주십시오.
그리고 쓰러져가는 우리의 민주주의를
다시금 꽃피우게 해주십시오.

이제 우리는 대통령님을 떠나보냅니다.
대통령님이 언젠가 말씀하셨듯이,
다음 세상에서는 부디
대통령 하지 마십시오.
정치하지 마십시오.
또 다시 ‘바보 노무현’으로 살지 마십시오.

그래서 다음 세상에서는 부디
더는 혼자 힘들어 하시는 일이 없기를,
더는 혼자 그 무거운 짐 안고 가시는 길이 없기를
빌고 또 빕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님을 놓아드리는 것으로
저희들의 속죄를 대신하겠습니다.
이제 마지막 가시는 길,
이승에서의 모든 것을 잊으시고,
저 높은 하늘로 훨훨 날아가십시오.

대통령님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행복했습니다.

대통령님 편안히 가십시오.


2009년 5월 29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장의위원회
위원장 한명숙

 

 

 그 뒤였을까. 고인 앞의 헌화가 이어졌다. 이명박 대통령이 꽃을 바치기 위해 부인과 함께 일어서는데, 백원우 의원이 일어나 외쳤나보다.


 “이명박 대통령 사죄하시오. 여기가...”

 경호원들이 얼른 백 의원의 입을 틀어막고 밖으로 끌어냈다. 밖에서 그는 기자들에게 “정치보복으로 살인한 것이다. 사과해야 한다. 사죄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떤 기자들은 백 의원이 “개새끼, 살인자, 살인마”라고 말했다고 전했는데, 백 의원 측은 “욕은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백 의원은 노 전 대통령과 1997년부터 정치를 함께 해온, 그의 보좌관 출신이다.

 

 휠체어를 탄 채 영결식에 참석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끝내 추도사를 하지 못했다. 그는 권양숙 여사의 손을 붙잡고는 입을 벌려 통곡했다. 그가 이렇게 우는 모습을 나는 처음 보았다.

 

권양숙 여사 앞에서 오열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

국민일보 자료사진


 시간이 갈수록 서울광장과 시청앞 거리는 사람이 늘어났다. 거리가 인파로 꽉 찼다. 지하철 입구마져 막혀버릴 정도였다. 영결식은 멀리서 있었고, 우리는 어떻게 추모할 수 있는지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모두들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답답해하면서 서성거렸다. 경복궁으로 가는 길은 막혀있었고, 돌아갈 길도 막혀있었다. 길을 만들어가야 했지만 서로 부대끼느라 길을 만들 엄두를 내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어쨌든 영결식은 끝났다. 운구차가 서울광장을 향해 천천히 움직인다는 소리에, 태평로를 가득 메웠던 사람들이 모두들 일어섰다.

 

광화문 떠나는 노 전 대통령

광화문 떠나는 운구차/국민일보 자료사진


 마침내 노 전 대통령의 주검을 실은 검은색 캐딜락 승용차가 서울광장에 이르렀다. 운구차에 얹힌 영정은 뜻밖에 작았다. 가로 1.1미터, 세로 1.4미터라고 했다. 검은색 띠는 없었다. 장례위원회에 따르면 영정에 검은 띠를 두르는 것이 아무 근거가 없고 또 고인을 처량하게 보인다는 의견에 따라 전국의 분향소에 설치된 영정에 띠를 두르지 않았다고 한다.

 

국민일보 자료사진


 

 라디오를 켰다. 휴대전화 뒷번호의 시민들은 문자메시지로 추모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고, DJ들은 느리고 슬픈 노래를 틀었다. 김광석의 ‘부치지 않은 편지’가 흘러나왔다.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꽃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사랑과 죽음이 자유을 만나/언 강 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꽃잎처럼 흘러 흘러/그대 잘가라/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되리니/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되리니/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뒤돌아보지 말고/그대 잘가라’

 

 김제동씨가 무대에 올랐고, 노래꾼들이 노 전 대통령과 그를 추모하는 무리를 향해 노래를 들려주었다. 양희은도 안치환도 윤도현도 너무나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들려주어 더 서러웠지만, ‘다시 한번 광화문에서 만나요’라는 노래 ‘광화문연가’가 제일 인상적이었다.

 김제동씨가 노 전 대통령의 유서에 그만의 주석을 달았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고 했지만 우리는 그 분에게서 사랑이 무엇인지를 배웠다.
 운명이다...라고 하셨는데 이 운명 만큼은 받아들이지 못하겠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라고 했지만 그 분에게 받은 사랑이 너무 크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고 했지만 우리가 기꺼이 나눠드려야 했다.
 슬퍼하지 마라, 미안해 하지 마라....라고 하신 것에 대해서는 죄송하다. 오늘은 슬퍼하겠다. 미안하다고도 하겠다. 지켜드리지 못했으니까.
 삶과 죽음은 하나다....라고 하셨는데 우리 가슴에 심장이 뛸 때마다 잊지 않겠다.
 누구도 원망하지 말아라....스스로를 원망하며 남은 짐은 우리가 운명을 안고 반드시 이뤄 나가겠다.
 화장해라.... 뜨거운 불이 아니라, 우리 가슴속에 한줌의 재가 아니라 영원토록 살아있는 열정으로 간직될 것이다.
 작은 비석을 세워달라....라고 하셨지만 우리 마음속에서 잊지못할 큰 비석을 세우겠다.
 마음의 뜨거운 열정으로 그 분을, 우리 가슴 속에 한 줌의 재가 아니라 영원토록 살아있는 열정으로 대하겠다.”

 

 운구차가 인파의 한 가운데에 섰다. 운구차 주위로 사람들이 몰렸다. 산 자와 죽은 자가 한데 뒤섞였다. 그 장면을 보고 있노라니, 이 모든 것이 왠지 현실이 아닌 것만 같았다. 갑자기 우리 모두, 삶도 죽음도 아닌 어떤 시공간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무엇일까, 이 느낌의 정체는.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는 노 전 대통령의 유서 한 구절. 산 사람이라면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그렇기에 삶은 이미 죽음을 향하는 것. 더욱이 죽은 이의 뜻이 그의 죽음으로 더욱 선명해지고 그 영상이 우리 안에 되살아날 때, 삶과 죽음의 경계는 희미해진다. 이것은 영원과 통하는 순간일까.


 

 그러나, 나는 믿는다. 모든 이들은 죽음 뒤에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는 성경의 기록을. 오늘 우리는 노 전 대통령을 하나님 앞으로 보냈지만, 내일은 우리가 그의 뒤를 따를 것이다. 한명의 예외도 없이.

 

 그러니 노 전 대통령이 옳은 것일지 모른다.‘아무도 원망하지 마라’는 그 말씀. 다만 잊지 말아야할 것은, 아무리 큰 권력을 가진 자라도 한명의 자연인이 되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는 것. 그때 하나님은 “너는 얼마나 높은 지위에 있었느냐. 너는 얼마나 많은 재산을 모았느냐. 나를 얼마나 열심히 예배하며 주여 주여 외쳤느냐”라고 묻지 않고 “내가 주릴 때에, 내가 목마를 때에, 나그네 되었을 때, 헐벗고 병들고 옥에 갇혔을 때에 너희는 어디에 있었느냐”(마 26:31∼46)고 물을 것이다.

 그러니 분명해진다. 우리가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을 두고 화해와 용서를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화해와 용서를 입으로만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그-혹은 그들, 그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자, 혹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질책을 받고 영원한 흑암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깨우치고 뉘우치고 사랑과 섬김을 실천하도록 인도하는 것이어야 한다.


 

 노란색의 인파가 검은 운구차를 감싸고 놓아주지 못하는 광경 속에서, 나는 삶은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민들은 운구차를 향해 노란색 종이비행기와 풍선을 던져올렸지만, 그것들은 날아오르지 못하고 자꾸만 땅으로 내려앉았다. 손을 내밀어 운구차를 만지려는 이들이 자꾸만 마지막 가는 길을 막았다. 그래도 천천히 천천히 그는 움직이며 멀리 멀리 떠나려 했다.

 어떤 사람들은 운구차를 따라갔고, 많은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갔고, 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여전히 인도와 도로 주변을 서성거렸다. 기타와 트럼펫을 들고 온 거리의 악사들은 아스팔트 위에 주저 앉아 노 전 대통령이 즐겨 불렀다는 노랠 부르고 있었다. 울분을 참지 못한 어떤 이는 트럭 위에서 마이크를 잡고 구호를 외쳤다. 덕수궁 앞에서는 여전히 조문객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고흐의 붓질처럼 그려진 노 전 대통령의 웃는 초상이 계석 대한문 앞에 걸려 있었다. 거리에 내려 선 사람들은 인도로 다시 올라가려 하지 않았다.

 여전히 광화문을 막고 서 있던 경찰은 이렇게 방송했다.


 

 “이제는 일상의 일터로 가정으로 돌아갈 때입니다. 그것이 고인을 바르게 추모하는 방법입니다. 도로에서 나가 인도로 가 주십시오.”


 

 시민들은 ‘고인을 추모하는 바른 방법’을 경찰이 가르쳐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한쪽은 막아 놓고 한쪽 길로만 가라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인권위원회 앞쪽에선 깃발을 든 대학생들이 자신들의 방향으로 나아가려 했고 그 앞에는 다시 검은색 전투복으로 갈아입은 전투경찰이 방패로 길을 막고 있었다.

 

 광화문에서도 전투경찰들은 오와 열을 맞춰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었다. 전투복도 없고 오와 열도 없는 시민들은 밤이 새도록 길을 찾아 광장을 헤매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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