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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떠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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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문하고 있는 시민들. 국민일보 자료사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문하고 있는 시민들. 국민일보 자료사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문하고 있는 시민들. 국민일보 자료사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문하고 있는 시민들. 국민일보 자료사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문하고 있는 시민들. 국민일보 자료사진  2009년 5월 29일 아침 10시 지하철 시청앞역에 내려 가장 먼저 발길을 옮긴 곳은 대한문 앞 시민분향소였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그곳의 풍경이 있는데, 24일 아침 조문을 마친 한 남자가 서너살쯤 돼 보이는 아들 앞에 주저 앉아 울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주변은 경찰의 버스가 이중으로 ‘아늑하게’ 보호하고 있었고, 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전투경찰들이 다시 2중3중의 장벽을 치고 있었다. 그 풍경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권력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는지 너무나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한 사람 죽었다고 까불지마라’는 것.국민일보 자료사진
 거기서 가장 가까운 정동제일교회 주일예배를 취재하고 나오면도 계속 그 광경이 눈에 밟혔다. ‘나도 조문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이에 조문 행렬이 너무나 길어져버렸다. 5시간은 기다려야한다고 했다. 전경들의 대오 옆에 줄을 선 시민들은 하얀 국화를 들고 너무나 차분히 기다리고 있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어 그냥 지나쳤다. 그 뒤로도 1주일 사이 몇번 그곳을 찾았지만 조문 행렬은 점점 더 길어져 나는 그때마다 구경만 하고 돌아섰다. 바로 전날인 28일 밤에는 두줄의 조문 행렬이 한쪽은 정동길을 거쳐 경향신문사 앞을 지나 서울역사박물관까지 이어져 있었고, 다른 쪽은 조선일보사 바로 앞까지 가서 다서 대한문 앞으로 돌아오기까지 했다. 밤을 새워도 조문이 다 끝날 것 같지 않았다.덕수궁 대한문에 걸린 고흐풍의 노 전 대통령 초상
 장례식이 열린 29일. 이날은 마지막 날이니 분향소가 거둬져…

"존엄사는 존엄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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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누구나 삶의 한 순간에 맞닥뜨릴 수 밖에 없는 거대한 경험. 누구도 경험담을 들려줄 수 없는 인류의 미답지.대부분은 두려워하기보다는 그냥 잊어버리고 살려고 한다.사르다나팔르의 죽음》 - 외젠느 들라크르와 서울대와 대법원의 존엄사에 대한 판단이 내려진 것이 우리에게 죽음을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어야하지 않을까.사실 존엄사에 대해 뭐라고 찬반을 말하기는 지극히 조심스럽다. 환자나 가족의 고통을 감히 상상하기 어렵고, 또 모든 개별적인 죽음에 대해 어떤 보편적인 잣대(존엄사에 찬성을 하든 반대를 하든)를 갖다대는 것이 과연 인간의 능력 안에 있는 일인지도 의문이다.그러나 역설적으로 살아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도 이 문제에 '제3자'가 될 수 없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인간은 생명이 시작되는 그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삶과 죽음의 중간에 서 있는 존재일 수 밖에 없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예정된 것이고 그것이 어떤 형태로 올지는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존엄사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환자의 고통과 그 가족이 겪는 심적 경제적 부담을 이야기한다. 아무 의미 없는 생명의 연명은 길면 길수록 인간의 품격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그래서 환자가 원하고 의학적으로 회생 가능성이 희박하다면 죽음을 허락해야한다고 판단한다.인간이라면 누구나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생각이다.하지만 그게 또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식물인간 상태-의식은 있으나 표현할 수 없는-의 환자가 살고 싶어하는데 가족이나 의료진 누구도 그걸 알 수 없다면? 심각한 우울증 환자가 고통 속에 죽고 싶어하면?현재는 치료 불가능하나 유력한 연구가 진행중이라면?존엄사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한마디로 압축해 "존엄사는 존엄하지 않다"는 것이다. 반대하는 사람들도-심지어 신학자와 성직자들도- 무조건 "살 수 있는 한 살게 해야한다. 무조건 산소호흡기를 붙여서라도 살려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환자의 뜻에 …

공정무역은 과연 공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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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회운동으로서 경제활동이 주목받으면서 새삼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 ‘마이크로 크레딧’‘사회적 기업’ 그리고 ‘공정무역’입니다.
 ‘착한 경제는 가능할까’를 고민하는 저도 이런 현상을 눈여겨 봐 왔습니다. 오히려 이 분야들이 이미 서구에서는 70년대부터 시작된 운동인데도 마치 새로운 이야기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이 당황스러울 정도입니다.
 사실 저는 요즘 들어 ‘공정무역’이나 ‘마이크로 크레딧’의 한계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마이크로 크레딧 얘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공정무역에 관해서는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펴낸 한편의 논문을 소개하면서 그 한계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습니다.
 지난해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이정전 교수의 정년퇴임을 기념하는 ‘환경논총 47호’를 펴냈습니다. 여기에 상명대 강사이신 김윤성씨가 공정무역의 대표적인 사례인 커피 문제에 관한 논문을 수록했습니다.
 제목은 ‘커피 재배가 재배국 무역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논문 요약
 우리나라는 커피 수입에서 세계 16위(2006년 기준)를 기록할 정도로 많이 소비하는 나라다. 역대작물인 커피 생산과 무역에 대해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고, 생산과 판매 전 과정에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단일종만을 생산하는 플랜테이션 방식으로 재배되는 커피는 생태적으로 산림파괴와 토양유실, 종다양성 감소 등 여러가지 피해를 일으킨다. 여기에 커피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과잉생산 구조가 고착돼 커피 수출국의 빈곤도 구조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다시 말해 커피 생산으로 자연을 파괴하는 것만큼 경제적인 보상이 주어지지 않으면서 생태적 빈곤이 경제적 빈곤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원래 전통적인 커피 재배는 열대 우림의 높은 나무들 사이에 커피나무를 재배하는 방식이었다. 키큰 나무가 커피의 병충해를 막고 비가림 역할을 하며 땅이 척박해지는 것을 막아줬다. 커피 플랜테이션 방식이 도입되면서 사람들은 더 많은 커피 열매를 더 빨리 따기 위해 커피 나무보다 높은 나무는 다 베어버렸다. 커피나무의 높이는 3∼5미터로…

황석영을 그렇게 쉽게 버릴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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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씨가 이명박 정부와 협력하겠다는 것이 변절일까요? 우리나라의 대문호라는 양반을 한번의 인터뷰로 칼로 두부 자르듯 잘라서 판단하는게 과연 타당할까요? 저는 의문입니다.황석영씨가 이명박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에 따라갔고, 거기서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만나서 이명박 정부를 돕겠다고 했다는데, 사방에서 비난이 쏟아지고 있습니다.[인터뷰 기사] 황석영 “난 중도론자…MB생각과 같은 부분 있다"http://www.kukinews.com/news2/article/view.asp?page=1&gCode=pol&arcid=0921287850&code=41111111학계로 번지 황석영 변절 논란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2661860황석영씨 정도의 인물이라면, 한번의 언론 인터뷰로 그의 행동에 '변절'을 선언하고 '코미디'라거나 '귀순'이라는 식의 말을 쓰는 것은 성급하다고 생각합니다.오히려 좀더 그의 얘기를 귀 기울여 듣고, 그의 행동이 무슨 의미인지 곱씹어 볼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반드시 그의 '변화'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말이지요.제가 황석영씨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삼포 가는 길'을 읽었을 때였지만, 고등학교 시절 학교 도서관에 있던 '장길산'을 읽으면서 그의 작품세계에 압도 당했습니다.그 뒤 '객지'부터 그의 작품을 찾아 읽으면서 '무기의 그늘' '손님' '오래된 정원'까지 따라갔고, '개밥바라기 별'도 우연히 지나가던 서점에서 황석영씨의 싸인회가 있다는 얘기에 현장에서 사서 싸인을 받고 읽었지요.다른 분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전 그의 작품에서 늘 사람 냄새가 나서 좋았습니다. 특히 방북 이후 독일 망명과 귀국후 수감, 그 뒤의 출감..…

박쥐, 똥파리, 그랜토리노 그리고 구원 - 종교영화로 세 작품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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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본 영화들에서 종교에 관한 우리 사회의 사색을 떠올렸다. 아래 글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그랜토리노’, 양익준의 ‘똥파리’ 그리고 박찬욱의 ‘박쥐’. 3편의 영화에 대한 아래 글에는 영화의 결말에 대한 내용이 모조리 포함돼 있다. 스포일러를 밟고 싶지 않은 분들은 읽지 마실 것. 1.그랜토리노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유언과도 같은 영화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한국전쟁을 통해 삶과 죽음의 극한을 체험한 노인, 월트 코왈스키다. 영화는 그의 부인 장례식에서 시작되는데, 남편인 코왈스키는 젊은 신부가 장례미사에서 삶의 힘겨움을 끝낸 뒤에 올 안식에 대해 설교하자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린다. 코왈스키가 보기에 젊은 신부는 ‘삶과 죽음이 뭔지도 모르면서 입술로만 촐삭대는’ 인물이다.
 그렇다면 코왈스키에게 삶과 죽음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한국 전쟁에서 적을 무찌른 공로로 훈장을 받은 전쟁영웅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살기 위해 소년병의 얼굴에 총을 쏴야했던 경험 때문에 깊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그 ‘죽임의 상처’ 때문에 코왈스키에게 살아있다는 것은 늘 생존과 죽음 사이에 선 고통이었다. 그러니 코왈스키에게 삶과 죽음, 죽임과 생존은 젊은 신부의 생각처럼 분명하게 나뉘어질 수 없었던 것이다.
 그가 자신의 집 앞마당을 밟는 것조차 ‘침입’으로 생각하고 스스로 라이플을 들 정도로 서부시대를 살고 있는 이유도, 어쩌면 살기 위해 죽임을 선택해야했던 자신의 과거를 합리화하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그런 점에서 코왈스키의 트라우마는, 자신들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원주민들을 죽음으로 내몰아야했던 미국인들의 트라우마와 일맥상통한다. 더 나아가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트라우마도 건드린다. 오늘 우리의 삶 역시 코왈스키처럼 누군가의 희생 위에 영위되고 있는 것이란 걸, 이제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우리는 스스로 살기 위해 시키는대로 혹은 배운대로 열심히 살아왔고 매순간 가장 정당하고 성실한 선택을 해 왔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알 량한 물질의 만족과 육신의 안…

나의 블로그 순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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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나의 블로그 순례기'라는 글을 쓰는 것도 세번째다.첫번째는 블로그 정글. 두번째는 파란 블로그. 그리고 지금 텍스트 큐브.내가 처음 블로그 같은 내 홈페이지를 만든 것은,지금은 사라진 네띠앙이란 사이트였다.

시기는 대학 졸업반 시절이었으니 97년쯤. 형식은 블로그도,카페도 아닌 그야말로 내 마음대로 만드는 개인홈페이지였다. 자기가 html로 편집해 html파일과 그림 파일을 ftp로 전송하는 형식이었다.

내용은 별것 없었는데,지금 블로그에 한 게시판으로 만들어 놓은 '글쓰기 짬짜미'가 그때 있었고,전공 관련 레포트와 언론사 시험을 준비하며 끄적거린 시사적인 글 몇편을 올려놨었다.

하지만 지속적인 업데이트가 불편했고,나도 게을러 관리가 안됐고,결정적으로 네띠앙이란 사이트가 없어져 사라졌다.

그렇게 사라진 나의 첫 홈페이지,언젠가 인터넷 아카이브를 뒤지니 거기 보관돼 있었다. 감격적이었다.http://web.archive.org/web/20010616032349/my.netian.com/~fattykim/ (아카이브에 있는 그림과 글은 이렇게 몽땅 깨졌다. 알파벳만 빼고.)

 하여튼 여기서 얻은 교훈은,홈페이지는 처음 만드는 것보다 지속적으로 꾸준히 관리하는게 중요하다는 거.

 두번째가 아마 포털사이트 다음의 '칼럼'란이었던 것 같다. 지금의 블로그와 같은 형태인데 서비스명이 칼럼이었다. 서비스명에서 알수 있듯이,다음이 지금 밀고 있는 프래닛이나 싸이미니홈피보다는 원래의 블로그,그러니까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성격에 가까웠다.
 나도 기자질을 하고 있을 때였으니,시류에 편승에 시사적인 주제의 글을 썼다. 타이틀이 아마 '시사 뒷담화' 뭐 이랬을거다.

 그런데 칼럼 서비스에서 가장 인기있었던 칼럼은,이런 시사적인게 아니라 종교적인 글이나 생활 속의 글,가슴 따뜻하게 하는 글, 뭐 이런거였다.

 그때 빨리 눈치채고 감성마케팅,이런 말 써먹었어야했는데...

 그때 배운건 "아,인터넷에선 기자입네 하고 쓰는 글이 별…